[사르트르(Jean Paul Sartre) - 『실존과 자유』] / 간단한 논문형식 /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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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 『실존과 자유』] / 간단한 논문형식 /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썼습니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존재의 우연성
 ⅱ) 의식과 의식의 지향성
 ⅲ) 무와 무화작용
 ⅳ) 즉자존재와 대자존재
 ⅴ) 실존의 불안과 자기기만
Ⅲ. 결론

본문내용

이다. 이것은 의식의 특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의식의 지향성 개념을 설명하면서 의식은 존재로서의 실재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에 잇는 사물존재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의식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지향성을 이 세계에 펼쳐 보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은 가능성 그 자체이다. 사르트르는 ’죽음‘을 ’자기 스스로를 변화시킬(se metamorphoser)' 수 있는 능력이 완전히 박탈된 상태로 규정한다. 즉자존재의 상태이다. 의식은 그 자체로 자유를 갖는다. 하지만 의식은 그것이 의식으로 기능하는 한,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자유를 발휘하여 자신의 지향성 구조를 채워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라고 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바가 이와 같은 대자존재로서 인간존재의 자유인 것이다.
ⅵ) 실존의 불안과 자기기만
인간존재는 계속해서 자신의 의식의 지향적 구조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존재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인간 존재는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혼자 주관하고,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데서 오는 엄청난 ‘불안(angoisse)'을 겪게 된다. 인간존재가 자신을 미래를 향해 투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 앞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앞에서, 결국 무 앞에서 느끼는 불안이다. 존재와무, 변광배, p.168
사르트르의 사유 체계에서 인간존재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투기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가치 체계에도 의지할 수 없다. 사르트르는 신의 부재를 가정했기 때문이다. 인간존재는 자신의 ’본질(essence)'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채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자기 투기, 곧 창조(creation)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미래를 향한 투기와 창조, 이것이 ‘실존(existence)'이다. 실존이란 말은 ’ex-sistere', 즉 ‘거기에서 벗어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라틴어의 파생어이다. 실존의 참된 의미는 탈격(奪格), 곧 벗어남에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신으로부터 아무런 본질을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그러니까 실존을 통해 자신에게 결여된 본질을 만들어가야 한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L' existence precede l'essence.)" 인간은 모든 결단을 스스로 내린다. 그러므로 미래 결정되지 않은 무엇에 대한 두려움, 즉 ‘현재 있지 않음의 방식 위에 자기 자신의 장래로 있는 의식’을 ‘불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존의 불안에서 벗어나려 모습, 자기 자신을 즉자존재와 동일시하려는 모습이 있다. 이를 ‘자기기만(自己欺瞞)’이라 설명한다. 자기기만은 불어 ‘mauvaise foi'의 번역어인데 ’mauvaise'는 ‘나쁜’, ‘악의 있는’ 등의 의미를 지닌다. ‘foi'는 ‘믿음’, ‘신뢰’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직역하면 ‘잘못된 믿음’, ‘불성실’, ‘악의(惡意)’ 등이 된다. 속임수는 내가 남을 속이거나 남이 나를 속이거나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속임수에서 핵심은 내가 남을 속이거나 남이 나를 속이거나 속는 사람은 자기가 속는다는 사실과 속임수의 내용을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속임수가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속임수를 상정할 수 있는데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행위, 곧 자기기만이다. 자기기만도 속임수이기 때문에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속이는 자는 속이는 내용, 곧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속는 자는 속임수의 내용을 몰라야 한다. 자기기만은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동일한 모순된 개념이다. 자기기만 개념은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중에 애인에게 손을 잡힌 정숙한 처녀의 예로 설명할 수 있다. 정숙한 처녀는 혼전에 남자에게 손을 잡힌다거나 하는 행동을 통해 얻는 쾌락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그녀의 애인이 데이트를 하는 중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손을 마주 잡는 행위가 나쁜 행위라고 여기고 그녀는 애인의 손에서 자기의 손을 빼내려고 한다. 하지만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것은 즐거운 행위이다. 따라서 처녀의 마음의 또 한구석에는 애인과 손을 잡은 상태로 계속해서 있고 싶어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애인과 손을 잡고 있으면서 쾌락을 느꼈다면, 그것은 그녀가 애인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이나마 의식했었다는 것이 반증이 된다. 처녀는 데이트가 끝난 후에 자기는 데이트를 하는 동안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는 자기에게도 또 남들에게도 그녀의 손이 애인의 손에 의해 잡혀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고 믿고 싶어 하고 또 믿게끔 하려고 한다. 즉 그녀는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 죄의식을 무릅쓰고 자기의 책임 하에 자기의 자유를 행사여 자기가 원해서 애인의 손을 잡았다는 것을 부정하고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애인과 데이트하는 동안 자기의 손이 사물존재와도 같은 즉자존재였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기기만은 대자가 자유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자기기만은 의식이 스스로 대자임을 부정하고 또 이 부정하는 사실을 알면서 스스로를 즉자, 곧 의식이 없는 사물존재, 곧 즉자존재로 바꾸어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Ⅲ. 결론
무신론을 상정한 사르트르는 인간을 우연적 존재, 즉 던져진 존재라 하였다. 아무런 개연성이 없이 그 자리에 있는, 그냥 있는 존재로서 인간은 있다고 하였다. 의식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않은 사물은 존재 양태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자존재인 인간은 개개인의 의식을 가지고 세계를 정립적·조정적 태도를 취해 인식한다. 즉자존재, 사물은 그 자체로 있으며 외부의 세계와 스스로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한다. 대자존재인 인간은 각각의 의식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자유가 있다는 증거이다. 이 자유는 절대 포기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각각 의식의 지향성을 통해 매 순간 세계를 인식한다.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죽음만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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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4.18
  • 저작시기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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