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신비 서평 - 칼빈의 성찬론 회복 - 키이스 A 매티슨 - 한국 교회를 위한 성례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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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찬의 신비 서평 - 칼빈의 성찬론 회복 - 키이스 A 매티슨 - 한국 교회를 위한 성례전 개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백서와 요리문답서에 반향된다. 신앙 참여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것이 완전히 변호될 수 있는가에 관해서 제기된 질문들을 좀 더 철저히 다룰 필요가 있다.
부록
종교개혁 이전의 성찬론
성찬론은 9세기까지 열정적 신학적 논쟁의 구심점이 되지 않았다. 견해의 일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학적 개념들은 여전히 발전 초기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은 제기 될 수 없었다. 교회들은 불분명함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었다.
1세기 및 2세기의 발전
속사도 교부들 : 그리스도의 죽음에 뒤 이은 세기에 작성되었다. 클레멘트전루서, 이그나시우스의 서신, 디다케와 같은 중요한 문서이다.
순교자 저스틴과 이레니우스 : 디다케와 이그나시우스에 의해 설명되지 않았던 희생제사의 개념은 순교자 저스틴과 이레니우스에 의해 다시 다루어진다. 말1:11의 완성으로 칭찬한다. 떡과 포도주가 ‘감사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으며 따라서 봉헌물로 명명되기에 이르렀다. 성찬은 성도들이 함께 모이고 하나님께 공적으로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성찬이 감사제(eucharist)로 알려지게 된 주된 이유이다. 헬라어 단어 eucharisteo는 단순히 감사드리는 것을 뜻한다.
3세기의 발전
동방과 서방에서 접근에 있어서 차이가 발견될 수 있지만, 3세기에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동일시하는 초대 기독교의 실행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성찬의 제사에 대한 더욱 고찰된 신학에 대한 개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서방의 히플리투스, 터툴리안, 키프리안, 동방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등이다. 이들의 글에는 아주 일찍부터 감사의 개념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여기에 희셍제사 용어의 정규적 적용이 추가되었다.
4세기와 5세기의 발전
306년 발생했던 큰스탄틴 대제의 기독교로의 회심은 교회에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어거스틴, 암브로스, 힐러리, 아타나시우스, 키릴, 바실, 그레고리, 니사의 그레고리, 요한 크리소스톰 등이 아리우스주의, 사벨리우스주의, 아폴리나리우스주의, 네스토리우스주의, 유티키스주의에 대항하여 정통 기독교를 변호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그리고 킬케톤과 같은 위대한 교회 연합적 공의회들은 이 기간 동안에 개퇴되었는데, 이는 모든 세대를 위한 삼위일체론적이며 기독론적 정통 교리에 대한 기초를 놓았다. 성례의 특정한 측면에 대해서 여전히 모호하였다는 것이다. 동방이나 서방에서 체계적인 성례신학을 강구하는 시도가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황금의 입 크리톰은 희생제사를 더 많이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어거스틴은 성찬에 대한 그의 주장이 매우 중요하다. 그는 표징과 이에 의해서 상징되는 것에 대해 가장 명확히 구별했다. 그는 이들을 분리하기 않지만 이를 구별한다. 그는 “내가 당신에게 어떤 신비를 권하는데, 이는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비록 이것이 가시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는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비록 이것이 가시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는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고 말한다. 4-5세기에 시작된 또 다른 흥미로운 발전은 ‘거룩한 두려움’의 태도를 예전에 삽입한 것이었다.
후기 성찬론
그리스도의 임재 : 그들의 선임자들의 실제적 언어를 계속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성례의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동일시했다. 이 동일시는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성례전적 견해, 영론적 견해, 그리고 변환적(물질적) 견해. 성찬의 요소들을 ‘상징’으로 간주하는 견해는 동방보다 서방에서 더 오래 지속되었다. 어거스틴의 실재적 임재설은 정확히 범주화하기에 가장 어려운 이론에 해당된다. 그는 “성찬에는 사람이 보는 것과 사람이 믿는 것 모두가 존재한다. 인식에 해당하는 물리적 대상이 있으며, 믿음에 의해 파악되는 영적 대상이 존재하며, 영혼을 먹이는 것은 후자이다”라고 믿었다.
성찬론적 희생제사 : 이 기간 동안, 성찬은 계속해서 희생제사로 불리워졌다.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이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성찬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께 연합된 자들은 이에 의해 하나님께 연합된다.
9세기의 발전 : 라트베루투스 vs 라트람누스 :
11세기의 발전 : 베렝거 vs 랑프랑 :
토마스 아퀴나스 : 13세기 화체설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믿었던 것을 설명했다. 한편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었고 떡과 포도주의 우유는 요소의 축성이 있기 이전의 상태와 동일하게 남는다고 주장했다. 그와 갗은 스콜라 신학자들은 화체설을 조심스럽게 정의했다.
<성찬의 신비를 읽은 후에>
보이는 설교인 성찬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살펴본 이 책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현대 교회의 잘못으로 느끼지도 않고 있는 성찬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나도 놀랐다. 칼빈의 주장이 매주 성찬을 하려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었으며 성경적이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성찬을 집례하는 사역자의 행위나 자격에 상관없이 성령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에 성찬에 대한 기대가 한없다. 떡과 잔을 나눌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나를 위해 희생당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며 흘렸던 눈물이 나왔던 부분적인 은혜가 부끄럽다. 감사와 천국의 잔치에 연합하여 참여하게 되는 기쁨의 성찬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랑의교회에서 몇 가지를 고쳐야 할 것 같다. 먼저 매주 성찬을 할 수 없다 하여도 최소한 매달 성찬이 베풀어 져야 한다. 둘째로 성찬과 설교가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다는 생각으로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 셋째로 성찬을 통해 교인들 사이의 사랑이 회복되어야 한다. 넷째로 성찬에 대한 교리적 가르침을 시행하여야 한다. 제자훈련만 행할 것이 아니라 교리적 가르침도 시행하여야 한다. 다섯째 칼빈주의 회복을 하여야 한다. 이상을 최선을 다해 고쳐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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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1.08
  • 저작시기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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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76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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