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 교회사] 기리시탄시대와 기리시탄다이묘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아세아 교회사] 기리시탄시대와 기리시탄다이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전국통일을 이루는 것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물론 그 당시의 수용에도 외래가 아닌 자생한 것처럼 여기는 자세가 있었다. 그것은 노부나가(織田信長)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국내통일 후 한반도, 중국, 인도까지 시야를 넓히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바야흐로 해양에 시선을 바뀌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을 따라 당시의 일부 다이묘우(大名)도 무역을 목적으로 기독교를 포용하기도 했지만 육지가 아닌 해양으로 다른 나라로 세계관을 넓힌 결과는 유사하다.
외부환경, 즉 사회,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내적 요소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 다름 아닌 ‘doctrina christa\'라는 기독교의 교리이었다. ‘doctrina christa\'를 통해서 불교와의 논쟁을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유용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당시의 신학교seminaryo, collegio Alessandro Valignano는 1580년 6월 24일에 “일본포교장규칙”을 규정하여 일본은 3개로 교구지역에 나누었다.(下,豊後,都). 각 지역에 Casa를 임명하고 그것으로 중심으로 작지에 Residencia(제사관)을 설치하였다. 교구장은 담당교구를 매년 순회(巡見)하여 포교장(布長)이 3년에 한번 전국의 수원과 제사관(祭司館)을 순회하는것, 그리고 일본수도자의 영적, 교육적 기관 Collegio, 일본인청소년의 위한 신학교 Seminario, 수도자와 제사영성의 위한 Noviciado, 유럽선교사에 위한 일본어학교의 설치를 결정하였다. 五野井隆史,『日本キリスト史』(吉川弘文館, 1990), p118.
는 근대교육의 초석이 되었다.
사상적인 측면으로 내면적인 요소(기독교 교리, 선교)로 인해 불교, 유교와 대립구조를 이루므로 중국사상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기리시탄 시대의 인식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의 면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가톨릭과 후의 기독교의 전래로 인한 서양문화의 전래로서 사람들의 세계관은 변했다. 사람들이라 함은 봉건적인 체제에서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층으로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지배계층은 주로 종교적인 힘이 갖는 세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구속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거나, 당시 포교활동이라는 전제하에 허락된 침략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영토를 규합하고 지배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추구해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정학적 인식의 변화, 즉 사람들은 중국과 한국으로 침략해도 된다는, 어쩌면 침략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지극히 국수적이며, 폐쇄적이고, 파괴적인 세계관을 형성시켰다. 그들은 충분히 종교의 전래를 잘 이용했고,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겼다. 일본을 제외한 땅에서 그들은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반면에 다카야마 우건은 종교의 힘이 주는 내적이며 개방적인 변화를 추구했고, 그것으로 인해 개인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게 된다. 일본에서 추방당한 다카야마는 일본, 당시의 봉건체제에서 걸러진 세계관이 아니라, 가톨릭 혹은 종교개혁 후의 기독교가 전하고자 하는 세계관의 본질이 그대로 인식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인식은 후에 오사카를 넘어 마닐라
, 로마에 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카아마의 순교는 1615년 ‘Society of Jesus\' 의 연보에서 자세히 기록되고 있다. J ラウレス,『高山右近の生涯(日本初期基督史)』(エンデル書店, 1948), p394.
 교황의 포교보호권에 따라 세계로 전파된 가톨릭, 추후에 종교개혁을 통해 변화된 기독교는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에 종교를 포함한 문화를 전파하게 되고, 당시에 육로가 제한되어 있던 일본은 그것을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환경에 맞는 세계관으로 만들어 간다. 개방적인 곳에서 바다라는 제한적인 환경을 가진 곳으로 들어온 사상은, 단지 거기에 머물러 있거나 단순하게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변질되거나, 취사선택 후에 폐쇄적인 세계관을 취한다면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고 만다. 하지만 다카야마 우건과 같이 개방에서 흘러들어온 세계관을 그 본연의 가치에 맞게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게 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전해준 곳으로 영향을 끼치는 상승효과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어떤 세계관이 전해지는 것에 못지않게 어떤 자세로 그 세계관을 받아들이냐가 발전과 쇠퇴라는 결과를 좌우한다.
Ⅷ. 참고문헌
단행본
末木文美士. 『日本宗史』. 東京: 岩波書店. 2006.
水 紘一.『織豊政とキリシタン ―日交の起源と展開-』. 東京: 岩田書院. 2001.
高弘一朗.『キリシタン時代の貿易と外交』. 東京: 八木書店. 2002.
高弘一朗.『キリシタン時代の文化と諸相』. 東京: 八木書店. 2002.
五野井隆史. 『日本キリスト史』. 東京: 吉川弘文館. 1990.
Michael, Steichen. 吉田小五. 『切支丹大名記』. 東京: 大岡山書店. 1930.
J ラウレス. 『高山右近の生涯(日本初期基督史)』. 東京: エンデル書店. 1948.
遠藤周作. 三浦朱門.『キリシタン時代の知識人 背と殉』. 日本新聞社. 1967.
ルイス,フロイス. 松田 毅一()川崎 桃太().『完フロイス日本史 4 豊臣秀吉篇I 秀吉の天下統一と高山右近の追放』. 中央公論新社. 2000.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편.『종교와 역사』(서울대하교출판부. 2008) .
루이스 프로이스.『도요토미 히데요시』. 서울: 부키.2005.
Boxer, Charles. \"The Christian Century in Japan 1549-165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7.
Ikuo Higashibaba. \"Christianity in Early Modern Japan Kirishitan Belief and Practice\". BRILL. 2001.
Sanjya Subrahmanyam, \"Explorations in Connected History : From the Tagus to the Ganges“.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논문
狹間芳樹. “キリシタン信仰におけるマルチリヨと「個」についての一考察,”. 現代キリスト思想究. 2008.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9.02.04
  • 저작시기201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195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