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고전의이해 11장 쇼펜하우어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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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서양고전의이해 11장 쇼펜하우어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과제명]

교재 『동서양 고전의 이해』 1~15장 각각 장의 마지막에는 ‘3. 원문 읽기’가 있다. 이 중 인상 깊게 읽은 고전 원문의 장과 제목을 밝히고, 자신이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을 서술하시오. (50점)

※ 대상 고전의 원문은 한 편부터 세 편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제2장, 제4장, 제5장 세 편의 고전 원문을 선택해서 과제를 작성할 경우, 그 이상의 고전 원문은 선택할 수 없다.

- 각각 원문의 ‘장과 제목’, ‘읽은 원문의 전체 쪽수’를 글을 시작하는 맨 앞에 표기하여 밝히시오. ☞ 예시) 제4장 신채호 『조선상고사』, 91~93쪽.


목차

1, 저자 및 작품 소개
2,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우어가 고통의 주체로 파악한 것은 몸을 지닌 실존으로서 ‘몸의 현존재’이다. 노예는 노동력의 착취 외에 일차적으로 몸의 구속 상태와 배고픔이라는 가장 직접적인 고통을 받는다. 쇼펜하우어가 갈레선의 노예들을 통해 공감한 것은, 싯다르타 태자가 최초의 여행길에서 목도한 생-로-병-사라는 생의 계기적 사태들의 무상함이라기보다, 현존재의 가장 직접적인 실존조건인 몸을 통해 진입하는 생생한 고통 그 자체이다. 노예들은 몸의 구속 상태에서 몸을 침식하는 극한의 고통에 직접 노출되어 있으며, 게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러한 노예상태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전망 앞에서 죽음의 고통에조차 비할 수 없는 실존론적 절망을 느낀다.
칸트의 계승자로서 쇼펜하우어는『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2판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저작을 읽기에 앞서 칸트철학을 공부할 것을 요구하며, 칸트철학과 자신의 철학과의 연계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칸트의 학설은 이를 파악한 모든 사람들의 두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그 변화가 너무 커서 정신적 재탄생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말하자면 유일하게 그의 철학만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서, 지성의 근본적인 규정에서 비롯되는 실재론을 참으로 제거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버클리나 말르브랑쉬로도 충분치 않다. … 그 결과 정신은 근본적으로 미몽에서 깨어나며, 이제부터는 모든 사물을 다른 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래야 비로소 그는 내가 제시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해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와 반대로 칸트 철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은, 그 외의 그 무엇을 훈련했다고 해도, 흡사 무지한 상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와 같은 자연 그대로의 어린애 같은 실재론의 입장에 사로잡혀 있게 되고 다른 모든 것은 가능하나, 철학을 할 자질이 없다.
서양사상사는 존재와 생성, 본체계(noumena)와 현상계(phenomena), 형상과 질료, 정신과 육체 등의 이원론적인 구도가 지배했고, ‘무엇’-물음은 이 구도에서 전자에 치중한 질문방식이었다. 한 마디로 서구사상의 초점은 ‘근원적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한 마디로 압축된다. 그런데, 칸트는 참된 존재, 즉 물자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철학적으로 정립했다. 표상세계를 인과율의 사닥다리를 타고 역방향으로 아무리 나아가보더라도 표상세계를 넘어선 물자체가 ‘무엇’인지는 인간의 이론이성으로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론이성의 능력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후, 경계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정직하게 고백했다. 이것이 인간이성의 한계라고 정직하게 선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니체 이전에 칸트야말로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인정해야 한다. “‘무엇’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독단론을 펼친 전통형이상학은 칸트의 철퇴를 맞은 것이다. 아울러 칸트로 인해 이론이성의 대상으로서 신이 들어설 자리도 사라졌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불온서적으로 규정하고 금서목록에 등재시켰다. 종교인들이 볼 때 ‘망치를 든 철학자’ 칸트는 무신론자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물자체를 의지로 봄으로써,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던 근원적
세계를 명료한 세계로, 물리학적 세계를 생물학적 세계로, 실천이성의 도덕우주를 생명력이 약동하는 생명우주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요컨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생물학적 재전회’라 칭할 수 있는 철학사적 사건이었다. 칸트가 ‘이론이성에 대한 실천이성의 우위’를 표방했다면, 쇼펜하우어는 ‘이론이성에 대한 의지의 우위’를 천명한 셈이다. 쇼펜하우어는 생과 우주, 실존과 존재를 회통하는 생명력을 다루는 ‘생의 형이상학’을 천명함으로써, 전통형이상학을 파기하였다. 그러므로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은 ‘형이상학 아닌 형이상학’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식주관의 내면에서 물자체로서의 의지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발견한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곧 예지체일 수 있다는 칸트의 혁신적 사유를 온전히 계승함과 동시에 예지 체를 ‘사고의 주체’가 아니라‘의지의 주체’로 전회시킴으로써 칸트의 혁신을 진전시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칸트가 남긴 유산은 쇼펜하우어에 의해 그 핵심적 틀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동시에 풍성한 실질적 내용을 얻게 되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일상적 의미의 “결의”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의지, 즉 물자체로서의 의지를 말한다.
참고문헌
- 류종렬 외, 『동서양 고전의 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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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22.05.10
  • 저작시기202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68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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