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사상에 나타난 금강반야파라밀경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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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논
Ⅱ. 본 논
1. 원불교사상에 있어서의 {금강경}의 위치
2. 불교사상에 있어서의 {금강경}의 위치와 사상
1) {금강경}의 성립과정}
2) 대승불교사상 일반에서의 {금강경}의 위치
3) [A즉 비A 시명A]의 논리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반야바라밀 사상
3. {금강경}에 대한 원불교의 문제의식
Ⅲ. 결 논

본문내용

騰하는 『금강경』의 진리와 소태산의 覺魂이 상통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셋째로 지적한 「인과의 이치를 드러냈다」함은 『금강경』의 「應無所住」나 「無住於相」의 宗現을 소태산은 근본적으로 파악해보고 그 종현의 가능성은 인과의 이치가 필연적으로 존재함을 밝힌 것이며, 네째 「修行의 길을 갖추었다」 함은 아무리 불법이 좋다고 하나 그 법이 법되게 하는 自我自心의 수련 없이는 진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없음을 밝혀 斷惑의 수행을 소태산은 강조하고 있다고 말하고있다.
) 류병덕, 『원불교와 한국사회』, 시인사, 1986, p.311.
이러한 점을 통해 우리는 결국 불교와 원불교의 깨침의 세계가 같음을 알 수 있다 하겠다. 류병덕 교수는 「般若無可得空의 理」가 『금강경』의 핵심 내용이며, 그것이 결국 소태산의 大覺의 내용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더나아가 불법에 많은 경전이 있슴에도 불구하고 소태산이 『금강경』을 통해 불법에 연원을 댄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류병덕 교수는 교상판석의 입장에서 볼 때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1)모든 교리는 般若智로 통해야 하며, 2)大小乘의 모든 교법은 覺心을 가르치며, 不可得의 空을 체험하는 것이며, 3)모든 교법은 般若의 最終一道로 조화하자는 것이라고 하고서
) 류병덕, 『원불교와 한국사회』, 시인사, 1986, p.312.
, 한마디로 般若를 거치지 않으면 非佛說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금강경』이 반야의 지를 잘 드러낸 경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소태산이 覺魂에서 불법과 만나고, 『金剛經』으로 대표되는 불교경전의 수용은 소태산의 교판적 안목에서 볼 때, 般若의 空觀으로 투영된 세계요 불타의 正見에 의한 근본적 진리라는 것이다. 특히 여러 불경중에서 소태산의 『金剛經』 수용은 교판적 관점에서 볼 때 반야사상이 불교의 핵심교리이며 이에 바탕하고 있다고 한다.
) 上揭書, p.313.
다음의 문제 하나는 불교와 원불교의 차이점에 대한 문제이다. 비원불교인의 의문 중의 하나가 바로, 「불교와 원불교의 깨침의 세계가 같다면 왜 굳이 원불교를 개창한 것이며,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며 무엇때문에 불교에 대해 연원을 두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원불교도 비교도를 할 것없이 꼭 한번 가져보는 질문이다. 또한 대종사 재세시부터 지금까지 줄곳 문제되어져왔고, 또 지금도 문제되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문제되어질 것 같다. 예를 들면, 정산종사에게 물은 내용 중에,
「종래불교에서는 서가모니불이 本師가 되어 모든 신자들의 신봉하는 정성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사온데, 우리 회상에는 대종사에 대하여 봉사하는 정신이 더 깊사오니 서가모니불과 대종사와의 관계는 어떠하며 그 신봉하는 도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 『정산종사법어』 「예도편」 제12장.
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외에도 여러 부분에 있어서 이와 유사한 질문들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원불교전서』에서 볼 수 있다.
결국 『금강경』이 원불교에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불교와 원불교와의 같음과 다름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원불교의 입장은 위의 구절에 대한 정산종사의 다음과 같은 답에서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종사께서 대각을 하신 후, 모든 종교 가운데 불교가 제일 근본이 되고 모든 성현 가운데 부처님이 제일 거룩하신 것을 알으시고 당신이 스스로 부처님에게 연원을 정하셨고, 우리들은 또한 대종사의 회상을 만나서 대종사에게 법을 받았으니, 그 관계를 말하자면, 서가모니불은 조부님과 같고 대종사는 아버님과 같으며, 신봉하는 도에 있어서도 조부님은 조부님으로 받들고 아버님은 아버님으로 받드나 그 윤기와 인정이 직접 더 쏠리는 것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니라.」
) 상동.
이러한 정산종사의 대답도 어쩌면 비원불교인에게 불교와 원불교의 「같음」과 「다름」의 문제를 명쾌하게 이해시키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大同小異하다」는 말이 있다. 「크게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작게 다른 것을 생각하라」는 이 말이 어쩌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진 이야기 이지만, 普照 知訥스님이 돌아가실 때에, 새벽 목욕제계를 하고 법당에 올라 향을 사루고 큰 북을 쳐 송광사 내에 대중들을 법당에 운집시키고, 육환장을 들고 법상에 올라 일문일답으로 진리에 대한 대답을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한 제자가 바로 「같음」과 「다름」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옛날에는 毘耶 淨名(유마거사)이 병을 보이었고, 오늘은 조계 목우자가 병을 보이시니,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에 스님이 "너는 같고 다름을 배웠구나"하시고, 주장자를 내리 친 뒤에 말씀하시기를, "천 가지 만 가지가 다 이 속에 있느니라" 하셨다.」
) 김군수, 「불일보조국사비명」, 보조사상연구원, 『보조전서』, 1989.
p.421. 「昔日 毘耶淨名示疾 今日 曹溪牧牛作疾 未審是同是別. 師云 爾學同別來. 乃拈柱杖數下云 千種萬般摠在這裡」.
이러한 지눌스님의 마지막 모습에서 어쩌면 그 해답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Ⅲ. 結 論
이상으로 본인은 원불교 사상에 있어서 『금강경』의 위치에 대해 살펴본 후, 불교 사상에 있어서 『금강경』의 위치와 그 사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금강경』에 대한 원불교의 문제의식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물론 불교사상이나, 특히 원불교 사상에 대한 이해가 미천한 본인으로서, 이러한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상당히 주저되는 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불교학을 공부하는 본인으로서, 『불조요경』에 대한 좀더 광범위한 관심과 연구가 원불교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소견으로 미력하나마, 이러한 글을 쓰게 되었다.
류병덕 교수도 지적하였지만, 불교학 전반에 있어 반야사상으로 대표되는 空觀이 불교의 핵심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반야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般若智 = 쁘라쥬나 = 無分別智에 대한 이해와 체득은 그것이 곧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금강경』은 바로 그러한 般若智를 가장 잘 설하고 있는 경전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금강경』을 통해 불법에 연원을 댄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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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5.22
  • 저작시기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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