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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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에게 문명(Aegean Civilization)

미케네 문명(Mycenean Culture)

1. 티린스(Tiryns)의 성채, BC 1400-1200년

2. 미케네 궁전의 사자문, BC 1300년경

3. 미케네의 아트레우스(Atreus)의 보고(寶庫), BC 1300년경

본문내용

수 있을 것이다.
3. 미케네의 아트레우스(Atreus)의 보고(寶庫), BC 1300년경
고대의 원형(圓形)묘지는 옴팔로스(Omphalos)를 통해 삶이라는 일반 원형 주거지와는 달리, 죽음과 제사라는 종교적 특성의 상징성(象徵性)을 내포하면서 발전되었다. 특히 고대 그리이스 에서는 신격화된 인물이나 영웅의 성지(聖地)로서 톨로스(Tholos)를 건축하게 된다.
이와같이 그리스 시대에는 신화에 등장하는 神이나 반신반인을 위한 묘지로서 원형의 톨로스가 사용되어 아직까지는 신과 인간과 죽음과 제사라는 신비의 영역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이것은 가장 잘 보존된 `벌집형(beehive)'의 무덤이다. 무덤은 슐리만(Schliemann)이라는 발굴자에 의해 잘못 이름 지어진 것으로, 그는 이것을 아가멤논(Agamimnon)과 메넬라우스(Menelaus)의 아버지인 아트레우스(Atreus) 의 보물저장 창고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긴 통로는 드로모스(dromos)라고 불리우며, 이 통로가 끝나는 부분인 언덕속에는 톨로스(tholos)라고 불리우는 벌집 형태의 묘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축물은 원형의 기초위에 돌을 내쌓아서 만든 높은 돔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높이가 12m이고 지름이 14m인 이 훌륭한 공간은, 1500년 뒤에 로마의 판테온이 세워지기 전 까지는 고대의 전 건축물을 통틀어서 내부에 지지물이 없이 지어진 가장 큰 돔(dome) 구조물 이었다.
이 건물은 통로(通路)와 중심(中心)의 추상적 가치를 실체화시키고 있다. 이 무덤의 건축적 형태는 우리의 인생여정과, 이 여정이 극도로 아름답고 아늑한 중심공간에서 끝나기를 바라는 소망의 의미를 전달한다.
드로모스의 형태는 인간의 길고도 힘든 인생여정(人生旅程)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한다. 천국(天國)의 둥근 천정을 상징하는 톨로스의 형태는 보상, 평화, 영원한 행복을 나타낸다.
원 혹은 돔(dome)에 대한 상징성(象徵性)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동양인의 우주관(天圓地方)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인간의 궁극적 가치(價値)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형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평면상에서 직선을 점차 결합시키려는, 달리 표현하자면 직사각형의 긴 배치를 중앙집중적 배치와 결합시키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그러나 2개의 주요공간 사이에 위치한 좁은 연결부는 결합을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그 중요성을 깍아내리기까지 하였다. 이 좁은 연결부는 기능적으로 볼 때 중심공간(中心空間) 으로의 2차적인 출입문의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의 그리스도교 건축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이 장방향의 건축배치와 중앙집중적인 건축배치를 결합시키려는 시도였다.
매우 시험적인 첫 번째 시도가 AD 345년경 콘스탄티누스황제 치하때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 성당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AD 532년과 533년 사이에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St. Sophia)에서 처음으로 그 절정(絶頂)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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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7.19
  • 저작시기2002.07
  • 파일형식한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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