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시인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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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일찌기 나는(시와 해설)

한국 여성시의 특징 (페미니즘과 여성시)

매저키스트의 치욕과 환상-최승자論

1. 과연 페미니즘인가?
2. 폭력적 세계의 공모자, 혹은 희생자
3. 존재의 치욕과 소외
4. 타락한 관계의 표상으로서의 왜곡된 性
5. 연대성 회복을 위한 매저키즘적 전략
6. 허무적 자기 응시

본문내용

거절한다. 대신 기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사랑, 증오와 욕설이 난무하는 사랑, 버림받 은 사랑, 끊임없이 아이를 사산하는 사랑, 즉 「의도적 매맞기로서의 사랑 」을 선택한다. 매저키스트로서 「님」으로부터 버림받기를 간청하고 매저 키스트로서 「나」의 신체를 매질하도록 요구며 스스로 비천해지기를 작정 한다.
他者와의 관계 속에서 철저하게 자기를 축소하고 분해시키는 이같은 사랑의 방식은 부조리한 세계의 폭력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무가치해진 주체의 삶 을 회복하기 위한 詩人의 의지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詩人에게 있어서 매 맞기의 반복은 자신을 「치욕」과 「소외」로부터 해방시키는 아이러니적 행위이며, 새로운 삶을 향한 에너지의 발현인 것이다. 이같은 詩的 맥락은 「님」으로 상징되는 타자와의 유대성 회복만이 유일한 삶의 희망이라는 강렬한 전제를 내포한다.
그러나 최승자 시의 맥락 속에서 매저키스트로서의 치욕과 그 안에 꿈꾸었 던 환상이 과연 세계와의 화해라는 보다 큰 가치에 도달하고 있는지는 회의 적이다. 시 「昏睡」에서 세계의 거대한 핏덩어리를 태초의 남편에게 받으 라고 명령하는 태초의 아내의 단호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의 울림 은 왠지 공허하고 허무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약 20년에 걸쳐 출간해낸 다 섯 권의 시집 속에서 他者와의 진정한 화해나 행복한 교감을 찾기란 좀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아니 믿어야 하는 당위가 그를 꿈꾸게 하고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숲은 없는데,
숲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아는데,
오늘 아침 창 밖에서 느닷없이
터지는 도시 새들의 울음 소리가
내 눈앞에 천연덕스럽게
숲을, 숲의 배경을 구성해내고
미처 깨어나지 못한
내 머릿속 공장에서는 뇌세포들이
샛된 새소리들을 실(絲) 삼아
꿈과 생시를 넘나드며
황홀한 환상의 숲을 짜고 있다.>
「없는 숲」 전문
불가능한 세계,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며, 그런 것을 꿈꾸는 자의 허무 를 견디며 그는 다만 순교자처럼 고통이 깊을수록, 그리고 그것을 반복할수 록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질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이 는 「황홀한 환상의 숲」이 우리에게 불가능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믿음조차 없다면, 우리에게 「희망의 감옥」마저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소외의 房」을 탈출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병든 세계 속에서 「황홀한 환상의 숲」을 꿈꾸는 이 진실의 포즈는 그런 의미에서 비극적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포즈조차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 최승자 詩의 변화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서 출간된 두 권의 시집 「내 무덤, 푸르고」(1 993, 문학과지성사), 「연인들」(1999, 문학동네)에서 시인은 1980년대적 서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동시에 세계와 자아와의 치열했던 관계가 매우 허무적으로 잦아들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한없이 외롭다. / 입이 틀어막혔던 시대보다 더 외롭다」(중구 난방이다)에서 보여지는 뭔가 석연치 않은 허탈감이라든가, 「내 영원의 집 쇼 윈도는 / 텅 텅 비어 있다」(너에게),「일생토록 점점 더 탱탱하게 불 어난 내 빈 몸」(상경)에 암시되어 있는 존재의 근원적 허무감이라든가, 「 나는 내가 써왔던 텍스트를 모두 지워버렸다」(빈공책)라는 진술에서 읽을 수 있는 자기 무효화 등은 세계와 섣불리 화해할 수 없는 의식의 상태를 반영한다. 아울러 최승자는 이제 세계 보다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 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한 여자가 제 삶의
가로수 길을 다 걸어가
소실점 바깥으로 사라진다.
소실점이 지워진다.>
「둥그런 거미줄」 부분
이 詩에서 보여지는 소멸의 의미는 1980년대 詩에서 빈번하게 보여지던 擬似 죽음과는 그 의미가 분명 다르다. 이는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실존적 허무의식을 의미한다. 이제 그의 詩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비 중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나」라는 존재의 무상성에 대한 인식이 부각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여자」가 사라지고 「소실점」마저 사라진 공백의 공간을 시인은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상의 공간 속에서 세계와 역사는 「우수수 무너져」(둥그런 거미 줄)내린다. 이처럼 허무의 심연에서 뒤척이고 있는 詩人의 詩的 인식은 그 만큼 이 詩人의 詩가 완숙한 경지에 접어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 된다. 그런데 그 허무가 시를 쓴다는 행위조차도 덧없는 것으로 몰고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저 물(物)만이 아닌 심(心)이 보태진 유카 꽃, / 자웅동체의 유카 꽃이」(유카 나방이)된다는 의식처럼 그의 존재 탐구의 문제가 이질적인 것을 하나로 묶는, 즉 삶과 죽음을 한 몸으로 인식함으로써 총체적 인생의 문제를 천착하는 데 이르게 되리라 기대한다.
당선 소감
한낮에 당선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고 그렇게 저녁이 오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나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내 원고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진정한 논객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불필요 한 글들이 마구잡이로 출판되는 이 물량주의 시대에 진정 필요한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는가. 이 출발의 지점에서 무엇보다 스 스로에게 정직하고 엄격한 논객이 될 것을 다짐한다.
詩에 대한 감격이 없었다면 내 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에게 무한한 상상의 즐거움과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이 땅의 詩人 들께 빚진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오 랫동안 고통스러운 詩의 언어에 나를 붙들어 놓았던 최승자 시인께 감사를 드린다.
나에게 최초로 詩가 왜 우리 마음과 삶의 근원인가를, 그리고 詩가 왜 궁극 적으로 존재인가를 가르쳐주신 권영진 선생님과 詩를 정치하게 볼 수 있는 心眼(심안)을 키워주신 김현자 선생님의 은혜에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 를 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자식처럼 가르쳐주신 숭실대 국어국문과의 모든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미숙한 글을 심사해주신 심 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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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9.04
  • 저작시기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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