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義사상(의인(義認)의 의미를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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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바울의 의사상 - 의인(義認)의 의미를 포함하여

Ⅰ. 서 : `의롭다 함`의 진술

Ⅱ. 바울의 `의`개념
1. 바울이 사용한 용어로서 “의”
2. 바울의 “의”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Ⅲ. 하나님의 “의”
1.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2.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의

Ⅳ. 의롭다 함(의인)
1. 의인의 종말론적 의미
2. 법정적 의미에서의 의인
3. 의인(의인)의 근거와 수단

Ⅴ. 결 : 이신칭의(이신칭의)


`기독교 교육의 새 전망(Letty M. Russell 저)`을 읽고-

Ⅰ. 기독교 교육 :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

Ⅱ. 기독교 교육의 장(場) : 증인 공동체

Ⅲ. 기독교 교육의 구조 : 대화

Ⅳ. 기독교 교육의 방법 : 참여

Ⅴ. 기독교 교육의 목적 : 축하의 잔치


『신앙교육의 터전』을 읽고 나서-

Ⅰ. 전달의 개념과 내용

Ⅱ. 종교적 전통과 그 역동성

Ⅲ. 신앙과 가치인식

본문내용

움은 새로운 소속이다(Learning is first a new belonging.)"라는 말을 다시금 인용한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더욱 좋은 길을 찾고 실천하면서, 아울러 자신들의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의 형성을 위한 기독교공동체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저자는, 설교와 가르침을 강조한다. 설교는 기독교 메시지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노력보다 더욱 성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본다. 그는, 설교가 예배의 특징이라거나 아니면 설교가의 주된 활동이라고 간주하기보다는, 회중의 지속적인 삶의 일부라고 간주된다면 기독교인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더울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속해서 그는, 설교단의 자유를 주장하며 이것이 그 오용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예언적 음성이 들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준비하는 데 있어서나, 훈련을 받는 데 있어서 어떤 약점을 갖고 있든, 목사는 자신이 말하는 바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저자는, 설교가 전달된 이후에 토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기독교적 사고방식 형성의 일부분은 비평적 지성의 계발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회중의 모습을 결정짓는 성인들이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 - 회중이 원천사회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목적인 - 은 성인성도들이 모든 관계에 있어서 전달의 기관이 되어야 함을 요구하며, 삶의 인식과 질은 성인들의 영적인 분별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성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상황에 적합하도록 기독교 전통을 생활하고 점검하고 수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일학교의 전략과 자유, 종교, 교육운동의 전략을 뒤바꾸고 어린이가 아닌 성인에 초점을 두기만 한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신앙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중이 다른 곳에서 시행했던 것에 기초해서 성인교육을 시도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자신들의 상황을 간과한다면, 병은 모른 채 처방을 사용하는 격이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 고상한 감정이어서가 아니라 당시에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었기에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든 많은 예들은, 앞서 읽은 레티 러셀(Letty Russell)이 자신의 책("기독교 교육의 새 전망")에서 사용한 것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 때에도 그랬지만, 역시 아직은 한국 교회에 적용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남겼다.
회중에서의 신앙전달을 위한 지도력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지식, 기술, 그리고 신앙적 자질의 3가지를 강조한다. 세 가지 지도자의 자질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키고 이를 교회사명과 적절한 관계에서 유지하는 최상의 가능성은 지도력 개발을 회중적 삶의 부산물로, 특히 성인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는 길이다. 지도자는 더욱 성장하고, 자신의 종교적 문제를 탐구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이 배우는 자인 동시에 신자로서 교회의 신앙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신앙의 전달의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는 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서 영원히 교사와 지도자를 구하는 문제로 씨름해야 한다. 그 동기는 방어적이다. 즉, 우리는 자녀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침으로 기독교의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회중을 전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관으로서의 교회를 지역사회의 세속적인 일과 분리하는 것은 회중으로 하여금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에 대한 책임보다는 오히려 자기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적이고 사회적인 봉사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했다. 미래의 주된 과제는 이러한 태도를 바꾸는 데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 맺으면서 -
개신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교회들의 문제는 전통을 전달하고 있는 과정이 너무 잘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 문제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성인들이 실제로 믿고 있는 것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의 공동체가 아니라 배타적으로 개개인을 목적으로 개신교회를 개혁하려는 모든 시도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자연적 사회화의 주체 자들(성인들)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나 또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피하려는 노력은 실패하거나 적은 성공밖에 거두지 못할 것이다.
교회는 항상 회중 이상이었다. 신약은 지역 회중의 절대적 권위를 억제한다. 지역회중은 자체의 교제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어야 하며, 이를 일반적인 기독교 진리에 기초해서 행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회중은 신앙의 전달을 위한 더 나은 교재를 제공하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신앙의 전달이란 회중의 전체 삶과 필연적인 관련없이도 효과적이라고 가정한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 사람 중심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모든 교육은 사람 중심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교육이 어린이의 제한된 세계를 중심으로 하느냐, 아니면 어린이가 자기 발달단계에서 공동체의 책임있는 성인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성인들의 실제세계를 중심으로 하느냐이다.
종교교육에 있어서의 가정의 역할은 지난 세기 동안 여러 번 재평가되어 왔다. 호레스 부쉬넬 이후 종교교육가들은 대개 어린이 형성에 있어서의 가정을 존중하였으나 지난 25년여 동안 수정되어야 할 두 가지 경향이 있다. 하나는 인격의 형성에 있어서의 가정의 엄청난 능력으로 인해 가정을 이상화하고, 교회는 가정이 집안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에 기초해서 교육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경향은 가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East Harlem Protestant Parish의 목회자인 레티 러셀(Letty Russell)은 종교교육의 기관으로서 가정을 제외했다. 그 지역의 상황하에서는 그녀가 종교교육을 위해서 다른 방법과 기관을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는 가정의 강력한 양육의 과정을 이상화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성인들이 가정에서 신앙적 부모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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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3페이지
  • 등록일2002.10.17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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