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언
1. 생태학적 신학의 배경과 태동
1)역사적 배경
2)신학적 태동
2.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1)기독교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
2)다른 근본원인들
3. 새로운 창조신학
1)`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2)하나님의 형상
3)안식
4)자연과의 운명공동체
5)그리스도의 우주적 구원과 화해
결언
1. 생태학적 신학의 배경과 태동
1)역사적 배경
2)신학적 태동
2.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1)기독교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
2)다른 근본원인들
3. 새로운 창조신학
1)`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2)하나님의 형상
3)안식
4)자연과의 운명공동체
5)그리스도의 우주적 구원과 화해
결언
본문내용
하고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몰트만 교수는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세계열강들의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팽창욕을 제어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3) 자연과학의 연구방법
많은 학자들은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서 자연과학의 연구방법에 있다고 지적한다. 자연과학은 연구의 대상 곧 자연을 객관화시키고 분석하며 개체화시키고 가장 작은 부분으로 환원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의 방법은 대상에 대한 "지배"와 대사의 이용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에 있어서는 각 대상은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존제,삶의 과정으로부터 추상화된 존재로 파악된다. 그것은 분석되고 파악될 뿐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느냐, 그것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의 관점에서만 분석되고 파악될 뿐이다. 사랑과 사귐의 관심이 아니라 소유와 지배의 관심이 지배한다.
4) 이원론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주객도식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데카르트,베이컨 등 근대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이원론적,주객도식적,인간중심적 자연관 속에 그 원인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자연관 내지 세계관에 있어서 인간은 인식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 그가 속한 자연의 세계로부터 분리되며 자연의 세계는 인간에 의하여 자유롭게 처리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목적을 부여하며 자연을 변형시킨다. 자연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바의 기준과 양을 인간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 결정한다. 소위 말하는 '진보의 신앙'에 매료되어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하여 자연의 세계를 점점 더 인공적인 세계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 데카르트의 정신적 인간(res cogitas)과 연장적 물질(res extensa)의 인간중심적 이원론적 실재관은 근대 과학문명의 철학적 근간이 되어 왔으며 기독교가 이러한 인간중심적이고 자연파괴적인 근대 기술과학 문명을 창출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자연파괴와 생태계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방관하거나 기술과학주의의 주객 이분법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에 휩쓸려 들어갔다.
위에서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을 몇가지 고찰해 보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없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이 소유하며 소유를 통하여 자기를 확장하려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그 근본 원인이다. 인간의 본성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 욕망은 소유와 소비와 향락과 힘의 소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대인의 가치관에 나타나며 기업과 국가들의 팽창욕에 드러난다. 어떤 이데올로기,정치 경제체제를 채택하든 하나님 없는 인간의 무한한 이기적 욕망이 방치될 때 생태계의 위기는 자명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III. 창조신학에 대한 재고찰
위에서 생태계의 위기와 그것의 사상적 요인들, 곧 생태계에 대한 기독교의 관심들이 대두될 수 밖에 없었던 근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생태계 위협의 한 위치를 담당했던 기독교는 전통적 창조신학 속에 나타나 있는 인간의 위치를 재조명해보아야 하며 다스림과 정복, 번성의 의미를 새롭게 재고해야 한다. 이에 성서속에 나타나 있는 창조 신학에 대한 이해를 재고하고자 하며 이를 근간으로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입장을 고찰하고자 한다.
1)창조 질서 속의 인간
- 하나님이 창조한 생태게를 파괴한 장본인은 인간
- 창조의 순서 중 일련의 순서가 피조물의 우열을 구별하는 것은 아님
- 창조시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평가는 창조된 모든 것은 나름대로 피조물의 존재기능과 가치를
갖고 있음을 말하는 것임.
-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음의 의미는 인간이 자연을 잘관리하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질서를
잘보존하고 보살필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의미라는 것임.
2)다스림에 대한 의미
- 이는 생물을 보호하고 보실피라는 뜻
- 동물의 다스림은 인간의 규정에 따라 다스림이 아니라 규정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다.
-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창조세계에 살아가는 생
물들이 인간에 의해 영속히 보호되고 잘 보존되도록 보살핌울 받도록 함에 목적이 있음.
3)정복에 대한 의미
- 땅의 정복이란 하나님에 의해 점유획득이란 의미의 정복을 말함.
- 땅의 이용 규칙울 준수하며 땅을 개간하고 경작하여 땅에서 식물을 재배하여 더욱 더 땅에 충
만함을 누리는 것을 뜻함.
- 다스림과 정복은 땅을 착취하고 학대 이용하라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계속해서 창조의 일익을
담당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인간의 책임이며, 사명.
IV. 마치면서
위의 것들을 종합해서 기독교인의 입장을 재고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생태계의 위기는 절대로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는 자연을 잘 다스리고 창조질서를 잘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데서 온 것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로 인간의 편익만을 위해 기술과 과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자연을 파괴한 결과 오늘과 같은 극심한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 오염에 직면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기도교의 자세는 더욱 명확해야 하며, 깊은 각성과 더불어 실천적 자세로 이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태계의 문제는 상황의 절실한 요청이며, 하나님의 창조를 보존해야 할 책임적 사명을 지닌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과제이다.
먼저 우리는 과학 기술로 인간이 편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편한 만큼 자연이 파괴되고 훼손되고 위험과 오염이 발생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자연순환되므로 공해가 없으나 인간이 만든 것은 자연 순환 되지않고 환경오염과 공해가 양산되어 생태계의 생명의 망을 끊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성장발전에만 골몰할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집안운동으로 자연과 공종의 인식을 통해 세제 줄이기, 1회용쓰지않기, 공해제품 사용하지 않기, 폐휴지 분리 수거 등 여러 작은 일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생활 습관을 버리는데 주력해야 하며, 교회는 지역사회의 환경 개선과 인식의 전환을 위해 여러 실천적 행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살림의 하나님의 일이며, 우리에게 위임된 창조사업의 한 부분인 것이다.
3) 자연과학의 연구방법
많은 학자들은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서 자연과학의 연구방법에 있다고 지적한다. 자연과학은 연구의 대상 곧 자연을 객관화시키고 분석하며 개체화시키고 가장 작은 부분으로 환원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의 방법은 대상에 대한 "지배"와 대사의 이용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에 있어서는 각 대상은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존제,삶의 과정으로부터 추상화된 존재로 파악된다. 그것은 분석되고 파악될 뿐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느냐, 그것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의 관점에서만 분석되고 파악될 뿐이다. 사랑과 사귐의 관심이 아니라 소유와 지배의 관심이 지배한다.
4) 이원론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주객도식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데카르트,베이컨 등 근대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이원론적,주객도식적,인간중심적 자연관 속에 그 원인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자연관 내지 세계관에 있어서 인간은 인식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 그가 속한 자연의 세계로부터 분리되며 자연의 세계는 인간에 의하여 자유롭게 처리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목적을 부여하며 자연을 변형시킨다. 자연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바의 기준과 양을 인간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 결정한다. 소위 말하는 '진보의 신앙'에 매료되어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하여 자연의 세계를 점점 더 인공적인 세계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 데카르트의 정신적 인간(res cogitas)과 연장적 물질(res extensa)의 인간중심적 이원론적 실재관은 근대 과학문명의 철학적 근간이 되어 왔으며 기독교가 이러한 인간중심적이고 자연파괴적인 근대 기술과학 문명을 창출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자연파괴와 생태계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방관하거나 기술과학주의의 주객 이분법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에 휩쓸려 들어갔다.
위에서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을 몇가지 고찰해 보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없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이 소유하며 소유를 통하여 자기를 확장하려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그 근본 원인이다. 인간의 본성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 욕망은 소유와 소비와 향락과 힘의 소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대인의 가치관에 나타나며 기업과 국가들의 팽창욕에 드러난다. 어떤 이데올로기,정치 경제체제를 채택하든 하나님 없는 인간의 무한한 이기적 욕망이 방치될 때 생태계의 위기는 자명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III. 창조신학에 대한 재고찰
위에서 생태계의 위기와 그것의 사상적 요인들, 곧 생태계에 대한 기독교의 관심들이 대두될 수 밖에 없었던 근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생태계 위협의 한 위치를 담당했던 기독교는 전통적 창조신학 속에 나타나 있는 인간의 위치를 재조명해보아야 하며 다스림과 정복, 번성의 의미를 새롭게 재고해야 한다. 이에 성서속에 나타나 있는 창조 신학에 대한 이해를 재고하고자 하며 이를 근간으로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입장을 고찰하고자 한다.
1)창조 질서 속의 인간
- 하나님이 창조한 생태게를 파괴한 장본인은 인간
- 창조의 순서 중 일련의 순서가 피조물의 우열을 구별하는 것은 아님
- 창조시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평가는 창조된 모든 것은 나름대로 피조물의 존재기능과 가치를
갖고 있음을 말하는 것임.
-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음의 의미는 인간이 자연을 잘관리하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질서를
잘보존하고 보살필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의미라는 것임.
2)다스림에 대한 의미
- 이는 생물을 보호하고 보실피라는 뜻
- 동물의 다스림은 인간의 규정에 따라 다스림이 아니라 규정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다.
-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창조세계에 살아가는 생
물들이 인간에 의해 영속히 보호되고 잘 보존되도록 보살핌울 받도록 함에 목적이 있음.
3)정복에 대한 의미
- 땅의 정복이란 하나님에 의해 점유획득이란 의미의 정복을 말함.
- 땅의 이용 규칙울 준수하며 땅을 개간하고 경작하여 땅에서 식물을 재배하여 더욱 더 땅에 충
만함을 누리는 것을 뜻함.
- 다스림과 정복은 땅을 착취하고 학대 이용하라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계속해서 창조의 일익을
담당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인간의 책임이며, 사명.
IV. 마치면서
위의 것들을 종합해서 기독교인의 입장을 재고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생태계의 위기는 절대로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는 자연을 잘 다스리고 창조질서를 잘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데서 온 것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로 인간의 편익만을 위해 기술과 과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자연을 파괴한 결과 오늘과 같은 극심한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 오염에 직면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기도교의 자세는 더욱 명확해야 하며, 깊은 각성과 더불어 실천적 자세로 이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태계의 문제는 상황의 절실한 요청이며, 하나님의 창조를 보존해야 할 책임적 사명을 지닌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과제이다.
먼저 우리는 과학 기술로 인간이 편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편한 만큼 자연이 파괴되고 훼손되고 위험과 오염이 발생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자연순환되므로 공해가 없으나 인간이 만든 것은 자연 순환 되지않고 환경오염과 공해가 양산되어 생태계의 생명의 망을 끊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성장발전에만 골몰할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집안운동으로 자연과 공종의 인식을 통해 세제 줄이기, 1회용쓰지않기, 공해제품 사용하지 않기, 폐휴지 분리 수거 등 여러 작은 일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생활 습관을 버리는데 주력해야 하며, 교회는 지역사회의 환경 개선과 인식의 전환을 위해 여러 실천적 행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살림의 하나님의 일이며, 우리에게 위임된 창조사업의 한 부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