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의 이해]일본의 씨름인 스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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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스모의 유래와 역사

3. 스모의 의식

4. 경기 방법.

5. 경기장과 심판

6. 스모의 기술

7. 스모의 개최시기 및 명칭

8. 스모의 순위

9. 스모오 선수들의 일생

10. 스모와 씨름의 차이점

11. 스모의 문화적 특성과 스모의 국제화

본문내용

봉급을 받기까지는 5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
ㄹ. 최고의 선수들은 결혼을 하여 헤야 밖에서 생활하기도 하지만 견습생 및 결혼전의 스모오선수들은 헤야를 유일한 집으로 생각.
ㅁ. 견습생들의 생활은 엄격하다. 그들은 새벽 4시경에 일어나 마와시(まわし)를 입고, 훈련(稽古/けいこ)을 시작한다. 또한 이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리키시들의 심부름도 해야한다. 훈련은 3가지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코(四股(しこ): 리키시가 발을 높이 들어 힘있게 땅을 구르는 동작), 텟포(鐵砲/てっぽう): 상대방을 떠밀어내는 동작으로 나무기둥을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때려야한다.), 마타와리(股割り: 가능한한 다리를 넓게 벌리는 동작)가 그것.
ㅂ. 일상적인 훈련은 정오경에 끝나며 선수들은 창코나베(ちゃんこ鍋(なべ): 스모오선수들이 먹는 요리로서 큰 냄비에 굵직하게 토막친 생선이나 고기/채소 따위를 넣고 끓인 고칼로리의 죽)라고 하는 독특한 음식과 양념장, 오이지, 많은 양의 밥 등을 아침 겸 점심식사로 먹으며, 간혹 맥주 1 2병을 마시기도 한다.이 엄청난 양의 식사가 끝나면 주로 낮잠을 자는데 많은 식사량과 식후 수면으로 체중이 급격히 증가한다. 이러한 훈련은 많은 선수들에게 질병과 부상 등을 유발시켜, 중도 하차하는 선수가 많으며, 30세 이상의 선수가 선수생활을 계속하는 경우가 드뭄.
10. 스모와 씨름의 차이점
씨름은 순수한 한국어이며, 이 밖에 각저(角抵)·각저(角)·각력(角力)·각희(角戱)·상박(相撲) 등의 한자어 별칭이 있다. 씨름은 원래, 원시사회에 있어서는 맹수나 타종족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살 수 있었으므로 생활수단으로서 투기(鬪技) 또는 자기를 보호하는 무술로서 행하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차차 인간이 지적(知的)·정서적·사회적 발달에 따라 무예로 발전하였다.
ㄱ. 씨름이 5판 3승으로 승자를 가리는 데 비해 스모는 단판 승부.
ㄴ. 씨름은 백두급,한라급등 이렇게 체급의 차이가 있지만 스모는 체중·체급별로 겨루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힘의 유효한 구사(驅使)로 승률이 높아지고 그 높은 승률을 꾸준히 유지할 때 스모계급이 차차 올라감.
ㄷ. 스모에서 심판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설사 그릇된 판정이 내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소곳이 따릅니다. 씨름에서는 왕왕 거칠게 어필하는 선수를 발견하는 수가 있음.
ㄹ. 씨름판에는 스모의 도효와 같은 경계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빙 둘러쳐진 구경꾼들의 울타리 넘어서면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경기를 함.
ㅁ. 스모는 씨름과 달리 의식을 중요시.
11. 스모의 문화적 특성과 스모의 국제화
ㄱ. 스모의 문화적 특성
악마를 쫓는 주술 등 종교적 의례 때문에「스모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론도 있다. 육체까지 변형시켜 종교적 양식으로 봉사하는 스모는 일본문화 고유의 신앙과 미의식을 표현하는 전통예술이며 스포츠와 달리 독특한 전통양식을 현대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전혀 별개의 문화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일본스모가 갖는 대중적 매력으로는 1928년부터 라디오로 1952년부터 TV로 중계방송이 시작하였다. 이는 스모바쇼의 확대를 의미하며 전국민이 즐기는 경기가 되었다. 현재진행되는 大相撲大會는 1931년개최된 大日本大相撲選手權大會부터이다. 스모가 갖는 대중적 매력은 다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음.
①일본문화를 잘 집약하고 있다는 점.
②경기가 갖는 즐거움
③인기있는 리키시를 보는 즐거움
④기록경기가 갖는 재미
ㄴ. 스모의 국제화
스모의 대중적인기는 열렬한 팬이었던 히로이토 천황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1955년 5월의 대회를 시작으로 히로이토 천황은 동경에서 열리는 각 경기에 하루씩 꼭 참석하여 귀빈석에 앉아 스모를 관람하곤 했다. 이러한 관습은 왕족들에게도 계승되었다. 외교사절이나 해외의 방분인사들은 종종 스모경기에 초대받는다. 스모는 해외의 일본단체들이 처음으로 외국에 선을 보였지만 수십년 전부터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1960년대 이래로 미국과 캐나나, 중국, 몽고, 태평양의 통고섬 등의 젊은 레슬링 선수들이 스모를 배우러 일본으로 왔는데 그 중의 일부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성곡하였다. 1993년에 하와이에서 온 아케보노는 요코즈나까지 오르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호주와 유럽, 미국 등 여러나라에서 열린 시범경기로 큰 선전효과를 거두어 스모는 해외에서도 서서히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아마츄어 스모 후원인들의 노력으로 스모는 올림픽에 시범종목으로 소개되었으나 그 채택여부는 아직 결정 되지 않았다.

키워드

일본문화,   스모,   일본,   문화,   씨름,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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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29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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