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예악의 정의
Ⅱ. 여러 사상가들의 예악사상
Ⅲ. 결론
Ⅱ. 여러 사상가들의 예악사상
Ⅲ. 결론
본문내용
초기에는 음악제도가 문란해져서 당상에서도 양율의 음악이 연주되고 당하에서는 음려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으므로 박연은 이를 바로 잡도록 임금께 간곡히 상소했던 것이다.
박연의 상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향악의 음악절차를 시정토록 건의했고, 조하(조정에 나아가 임금께 하례함)때의 용악에 대해서 상주했으며, 임금의 좌전때의 음악문제까지 언급했다. 그런가하면 흙으로 굽던 와경을 석경으로 대체하자고 건의했으며, 훈이나 축이나 생황같은 악기를 고제에 맞게 제작하자고 했고, 제례악(종묘, 문묘의 사대찰에 쓰는 음악)에 곁드려지는 일무(사람을 여러 줄로 벌여 세워서 추게 하는 춤)는 바로 잡자고 했다. 한편 악기의 배치법 즉 악현법을 시정하고자 했고, 악공의 복식을 개수하자고 했고, 가동을 설치하자고 했고, 악가를 마련하고자 했고, 악보를 간행하자고 했다. 그밖에 건고, 대고, 뇌고, 영고 등을 제작하거나 개조하자고 했으며, 편종을 주조하자고 건의하는 등 대소 40항목에 이르는 음악관계의 내용을 임금에게 주청했다.
지금까지 적시한 박연의 상소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박연의 음악세계와 악제의 정비를 위한 그의 집념을 십분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박연은 음악 전반에 걸쳐서 두루 통달하고 있었으며 음악의 고법을 숭상한 나머지고 법에 어긋나는 모든 음악제도를 철저하게 바로 잡으려 했다. 흔히 음과 양이 비견해서 예와 악이라는 뜻의 예악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음악은 일찍부터 동방문화권 속에서는 인간과 사회와 정치, 심지어는 우주론적인 지평으로까지 연결되어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론적인 성격을 뛰우기까지 했었다. 음악의 고법이란 바로 이같은 관념적이고도 철학적인 성격이 농후한 음악관과 음악론을 지청하는데, 박연은 바로 이같은 전통적 음악의 맥에 충실하려 했고, 그같은 음악관을 바탕으로 조선 초기의 음악을 크게 정비하려고 진력했던 것이다.
Ⅲ. 결론
한 나라의 음악 소리를 들어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따라서 그 나라의 음악이 바르면 정치는 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 그 속에 담겨있다고 한다. 예악사상에서 '예(禮)'는 상당히 많은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속에 정치도 들어있으며, '악(樂)'은 소위 '악가무 일체'라고 하여 요즘으로 말하면 노래와 연주와 춤을 모두 가리켰다고 한다. 결국 예와 악은 서로 달라 보여도 실은 같은 것이라는 말이고, 이를 요즘 말로 의역하면 정치경제와 예술이 모두 하나라는 뜻이 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의 '정(政)'과 '치(治)'가 따로 놀고 경제의 '경(經)'과 '제(濟)'가 따로 돌아간다. 종교도 그렇고 예술이나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에서 음과 악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오늘날의 실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음악이 '바로' 서면 정치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는데, 과연 거기서 말하는 '바로'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음악이 바로 섰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도 실은 음악의 문제가 아니다. 소리로서의 음악 이전에 그 소리를 만들어 내기 전 단계에서의 '마음'의 문제이다. 음악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음악이 곧 마음이다. 그러므로 음악이 바로 선다는 것은 마음이 바로 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양심을 버리면 안된다는 믿음, 아무리 급해도 도덕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신념, 내가 행한 선이나 악은 돌고 돌아 그 결과가 다시 나에게 미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태도, 내가 먼저 겸손해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겸손이라는 미덕이 설 자리가 없으리라는 생각, 내게 이익을 주는 일보다 옳은 일을 더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으로부터 음악이 우러나올 때 정치는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
박연의 상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향악의 음악절차를 시정토록 건의했고, 조하(조정에 나아가 임금께 하례함)때의 용악에 대해서 상주했으며, 임금의 좌전때의 음악문제까지 언급했다. 그런가하면 흙으로 굽던 와경을 석경으로 대체하자고 건의했으며, 훈이나 축이나 생황같은 악기를 고제에 맞게 제작하자고 했고, 제례악(종묘, 문묘의 사대찰에 쓰는 음악)에 곁드려지는 일무(사람을 여러 줄로 벌여 세워서 추게 하는 춤)는 바로 잡자고 했다. 한편 악기의 배치법 즉 악현법을 시정하고자 했고, 악공의 복식을 개수하자고 했고, 가동을 설치하자고 했고, 악가를 마련하고자 했고, 악보를 간행하자고 했다. 그밖에 건고, 대고, 뇌고, 영고 등을 제작하거나 개조하자고 했으며, 편종을 주조하자고 건의하는 등 대소 40항목에 이르는 음악관계의 내용을 임금에게 주청했다.
지금까지 적시한 박연의 상소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박연의 음악세계와 악제의 정비를 위한 그의 집념을 십분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박연은 음악 전반에 걸쳐서 두루 통달하고 있었으며 음악의 고법을 숭상한 나머지고 법에 어긋나는 모든 음악제도를 철저하게 바로 잡으려 했다. 흔히 음과 양이 비견해서 예와 악이라는 뜻의 예악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음악은 일찍부터 동방문화권 속에서는 인간과 사회와 정치, 심지어는 우주론적인 지평으로까지 연결되어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론적인 성격을 뛰우기까지 했었다. 음악의 고법이란 바로 이같은 관념적이고도 철학적인 성격이 농후한 음악관과 음악론을 지청하는데, 박연은 바로 이같은 전통적 음악의 맥에 충실하려 했고, 그같은 음악관을 바탕으로 조선 초기의 음악을 크게 정비하려고 진력했던 것이다.
Ⅲ. 결론
한 나라의 음악 소리를 들어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따라서 그 나라의 음악이 바르면 정치는 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 그 속에 담겨있다고 한다. 예악사상에서 '예(禮)'는 상당히 많은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속에 정치도 들어있으며, '악(樂)'은 소위 '악가무 일체'라고 하여 요즘으로 말하면 노래와 연주와 춤을 모두 가리켰다고 한다. 결국 예와 악은 서로 달라 보여도 실은 같은 것이라는 말이고, 이를 요즘 말로 의역하면 정치경제와 예술이 모두 하나라는 뜻이 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의 '정(政)'과 '치(治)'가 따로 놀고 경제의 '경(經)'과 '제(濟)'가 따로 돌아간다. 종교도 그렇고 예술이나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에서 음과 악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오늘날의 실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음악이 '바로' 서면 정치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는데, 과연 거기서 말하는 '바로'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음악이 바로 섰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도 실은 음악의 문제가 아니다. 소리로서의 음악 이전에 그 소리를 만들어 내기 전 단계에서의 '마음'의 문제이다. 음악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음악이 곧 마음이다. 그러므로 음악이 바로 선다는 것은 마음이 바로 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양심을 버리면 안된다는 믿음, 아무리 급해도 도덕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신념, 내가 행한 선이나 악은 돌고 돌아 그 결과가 다시 나에게 미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태도, 내가 먼저 겸손해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겸손이라는 미덕이 설 자리가 없으리라는 생각, 내게 이익을 주는 일보다 옳은 일을 더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으로부터 음악이 우러나올 때 정치는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