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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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정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창덕궁
1)창덕궁 후원의 특징
일본정원과의 비교 분석
중국 정원과의 비교 분석

2.호암 미술관'희원'
1)연역
2)특징
3)전통적인 요소와 주변 환경의 조화에 대한 분석
3.소쇄원
1)역사적 의의
2)소쇄원이 한국정원사에서 갖는 존재론적 의미

본문내용

정원이다. 별서정원이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기 위해 지은 정원을 일컫는다. 스승인 조광조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와 과거에 응시해 합격의 영광을 얻었으나 지나치게 합격자를 많이 뽑았다는 여론에 밀려 두 사람을 낙방시켰는데 그 가운데 포함되어 고배를 맛보아야 했다.
바로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는 화순 능주로 유배를 가 결국 사약을 받고 죽자, 스승을 따라 갔던 양산보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쇄원을 짓고 55세로 1557년 죽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제월당에 앉아 달빛을 즐겨
소쇄원에는 대문이라 할 출입문이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만들지 않았다. 담장도 어른 가슴 높이로 흙담으로 쌓아 건물사이의 경계를 뜻할 뿐, 단절감을 주지 않는다.
별서정원이란 전원생활과 문화생활을 함께 한 공간으로 상주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소쇄원의 건물은 의외로 간소하다. 정자 건물을 가운데 두고 방을 만들고 주변에 마루를 개방한 형식, 온돌방과 마루가 함께 둬 기숙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지혜를 보여준다.
소쇄원은 시냇물을 중심으로 자연 지형을 잘 활용하여 가장 윗쪽에는 주인이 거처하는 제월당을 만들고 아랫쪽 시냇가에는 손님들을 위한 광풍각을 만들었다.
연못 아래에는 ‘봉황처럼 소중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라는 대봉대를 세워 이곳을 찾는 손님을 귀하게 여겼다.
제월당은 맑고 가지런한 달빛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월당은 사랑채와 서재를 겸하는 공간으로 항상 문을 열어두고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제법 넓은 마당이 있고 주변으로 숲이 우거져 늘 청량감이 느껴진다.
또 광풍각은 그야말로 풍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마련된 정자다. 미닫이문이 아니라 들어열개 형식으로 문을 모두 들어 처마 고리에 고정시키면 기둥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틔어 충분한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에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양산보는 이곳에서 주로 손님들과의 모임을 갖는 곳으로 경치가 좋은 이곳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고 문학은 논했다.
소쇄원에 관한 고서에 의하면 ‘성산별곡’을 지은 송강 정철을 비롯하여 당시 호남을 대표하던 석학 김인후,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송순, 그리고 영남지방의 이황 등이 이곳에서 자주 회합을 가졌다고 한다.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작은 폭포와 연못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 매화, 대나무, 소나무 등 온갖 나무를 심어 정원을 이루었다. 까치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을 정원을 지나 흐르게 해 자연미를 그대로 살렸다. 계곡물은 폭포가 되고 연못을 이루고 담장 아래 난 출구를 통해 큰 강으로 흘러가게 했다.
소쇄원을 조성할 때 양산보는 직접 지형에서부터 돌 하나, 기와 한장까지 간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로 팔지도 말라고 유언했고 오늘까지 잘 보존해오고 있다.
30대에 짓기 시작하여 40대에 완성하였다고 하니 10년의 그의 정성과 공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자연미를 그대로 살리면서 꼭 필요한 부분에만 인공의 요소를 가미한 조선시대 민간정원의 백미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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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4.06.02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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