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제기한 바 있다. 미국 캔사스 대학의 허스트 3세 교수는 "선인, 악인, 그리고 추인 - 고려 왕조 창건 속의 인물들"이란 논문에서 "고려 창건사에서 왕건은 선인(善人), 견훤은 악인(惡人), 궁예는 추인(醜人)의 배역을 받았으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기록된 것처럼 성스럽거나 악한 존재는 아니었다. 역사가들이 역사를 편찬하던 그 시점에 특수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배역을 맡게 된 것처럼 보인다."며 정사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허스트 3세 교수는 이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사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궁예에 대해 "큰 야심과 정치적 지혜가 있었으며, 개인적 권위가 있었고 사람들의 능력을 잘 판단할 줄 아는, 곧 인재를 볼 줄 알았던 인물이며 궁예 왕국의 정치적, 행정적 업적이 오로지 왕건의 탁월한 덕성의 결과였다고 생각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물론 궁예는 역사상의 기록과 같이 극악무도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슬픈 궁예>에서 작가는 궁예를 미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궁예가 악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 전에 있던 역사적인 사실과 비교하는 수법이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역사 속에 일어났던 사실과 비슷하게 궁예가 했다고 해도 궁예가 잘못한 것이면 잘못한 것이다. 작가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 궁예가 한 일은 문제가 되지 않다는 식으로 궁예를 미화시키는 것도 가끔씩 보였다. 예를 들어 궁예의 화려한 종교행렬에 대해 설명할 때 진표의 경우 궁예보다 더 화려하게 행렬을 했다는 예를 들어 궁예는 진표에 비하여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경우 그 당시 무리한 조세 제도와 가혹한 형벌에 의해 민심과 나라 사정이 안 좋았을 것이 뻔한데 진표가 더 화려했기 때문에 궁예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궁예를 미화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궁예에 대한 무조건적인 안 좋은 생각을 고쳐나가야 한다. 궁예의 이름 위에 덧씌워진 오해와 악의적 왜곡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궁예를 미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정당한 평가의 틀 밖에서 왜곡되어온 인물과 역사에게 정당한 제 몫을 돌려주기 위함일 뿐이다.
이 책은 다분히 궁예를 미화하는 듯한 느낌도 주지만 선악개념이 아닌 기능주의적 사관으로 궁예, 왕건의 관계를 분석해 역사산책의 흥취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궁예는 역사상의 기록과 같이 극악무도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슬픈 궁예>에서 작가는 궁예를 미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궁예가 악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 전에 있던 역사적인 사실과 비교하는 수법이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역사 속에 일어났던 사실과 비슷하게 궁예가 했다고 해도 궁예가 잘못한 것이면 잘못한 것이다. 작가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 궁예가 한 일은 문제가 되지 않다는 식으로 궁예를 미화시키는 것도 가끔씩 보였다. 예를 들어 궁예의 화려한 종교행렬에 대해 설명할 때 진표의 경우 궁예보다 더 화려하게 행렬을 했다는 예를 들어 궁예는 진표에 비하여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경우 그 당시 무리한 조세 제도와 가혹한 형벌에 의해 민심과 나라 사정이 안 좋았을 것이 뻔한데 진표가 더 화려했기 때문에 궁예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궁예를 미화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궁예에 대한 무조건적인 안 좋은 생각을 고쳐나가야 한다. 궁예의 이름 위에 덧씌워진 오해와 악의적 왜곡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궁예를 미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정당한 평가의 틀 밖에서 왜곡되어온 인물과 역사에게 정당한 제 몫을 돌려주기 위함일 뿐이다.
이 책은 다분히 궁예를 미화하는 듯한 느낌도 주지만 선악개념이 아닌 기능주의적 사관으로 궁예, 왕건의 관계를 분석해 역사산책의 흥취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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