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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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순서■
(1) 한국인은 잘 생기고 건장한 민족이다
(2) 춤추고 shfoigjkf 움운명을 타고난 민족
(3) 조선이 망한 이유는?
(4) 조선은 궁사의 나라
(5) 또 하나의 소포츠, 석전!
(6) 흰 옷의 나라
(7) 조선은 거대한 빨래터
(8) 가련한 여인들의 삶
(9)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인들
(10)위대한 발명품, 지게
(11)온돌, 감자를 굽듯 사람을 굽다.
(12)술독에 빠진 민족

본문내용

에 차가 귀해 백성들이 제례에 차를 사용할 경우 막대한 양이 필요했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생긴 일이다. 차가 많이 재배되지 않았고, 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숍 여사는 한국의 경우 물이 아주 깨끗해서 끓이지 않고도 마실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 차 문화나 음료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러다 보니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신식 주막(1900). 개다리 소반 위에 양주병이 놓여 있고, 주모가 손님에게 술대접을 하고 있다.
... 한국인이 술을 좋아하는 첫 번째 원인은 아마 도시에서조차도 차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과 사치스러운 청량음료들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듯하다. 아마도 식수로 쓰는 물이 훌륭해서 대부분 그냥 먹을 수 있는 탓일 것이다. 농부들은 식사 후에 뜨거운 숭늉을 마시며, 꿀물은 사치품으로 생각하고, 잔치 같은 경우에는 귤껍질이나 생강에서 우려낸 액체를 마신다. 귤껍질을 말리는 것은 한국 주부들의 큰 일 중의 하나이다. 모든 초가집 지붕에는 말린 귤껍질들이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1897 )
이상스럽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조선의 농민들을 세계의 양대 차 생산국인 일본과 중국의 중간에 살고 있는 동시에 위도상으로도 차의 생산권에 살고 있으면서도 차의 맛을 거의 모르고 있다. 조선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것은 숭늉이다. 말린 인삼과 귤껍질 또는 새앙을 섞어서 끓인 차는 잔치 때나 마시며, 이것을 만들 수 없을 때는 꿀을 쓴다.
(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한국』, 1882)
한국인들은 왜 술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는가? 차 문화와 음료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실 것이 없어)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식으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최근 한국인의 이런 유별난 관습을 한국 무교의 영향으로 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이대 최준식 교수는 여러 저서를 통해 무교가 한국 문화에 끼친 광범위한 영향을 설명했다. 흥미로운 주장이라 인용한다.
나는 한국인들이 노래나 춤, 그리고 음주를 좋아하고, 그것도 신바람이 나서 카오스 상태까지 치닫는 것은 한국 무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무교의 핵심은 바로 노래와 춤이다. 신령이 내려오길 기원하고 신이 오르면 또 노래와 춤으로 신령을 즐겁게 하고 신령을 보낼 때도 노래와 춤으로 한다. 그러니 굿판은 온통 노래와 춤판이다. 우리는 이게 좋아서 굿판에 간다. 그리고 같이 춤추고 마셔댄다. 이런 굿판은 한마디로 원초적인 난장판이다.
(최준식,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1997)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미친 듯이 술을 마셔댈까? 방금 말한 것처럼 한국인들은 일상의 질서잡힌 딱딱한 세계를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려 한다. 그래서 자유로운 무질서 상태로 치달으려고만 한다. 그러니 술을 마셔도 적당히 마시고 그치지 않는다.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셔서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망아경 상태까지 가야 술 잘 마셨다고 한다. 또 술판은 싸우느라고 엉망진창이 되어 난장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망아경과 난장판. 한국인의 술판에서는 다시 굿판이 반복되는 것이다.
(최준식,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 2000)
(13) 골초의 나라
세계에서 어떤 국민이 담배를 가장 많이 피울까. 1997년 10월 22일자 미국의 전국 일간지 USA투데이지는 한국인이 한 사람당 연간 4천1백 53개비의 담배를 피워 세계 제1의 골초라고 보도했다. (1997. 10.24 조선일보)
"만약 당신이 폭풍으로 한국인과 함께 에베레스트산에 갇히게 된다면, 한국인만큼 믿음직스럽고 용감한 친구는 없을 것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가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댈 것이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얼어죽지 않는다면 담배 연기에 질식해 죽을 것이다."
(마이클 브린, 『한국인을 말한다』, 1999)
김홍도 풍속화 중의 한 장면. 10대 중반의 아이들이 태연하게 말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위의 자료는 우리 한국인이 술뿐만 아니라 얼마나 담배를 좋아하는 민족인지를 보여준다. 담배는 대체로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일본을 통해 들어왔거나 중국 베이징을 왕래하던 상인들에 의해 도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담배는 우리 나라에 전래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기호품이 됐는데, 담배가 소화를 돕는다고 하여 식후에 남녀 노소가 즐겼던 모양이다. 17세기 중반 우리 나라에 표착했던 하멜의 기록에 보면 "지금 담배는 널리 사용되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피우고 심지어는 너댓살 먹은 아이들도 피웁니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사람은 발견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라고 기록했을 정도이다. 실제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런 사회 현실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100년 전 우리 나라를 찾은 서양인들은 한국인들이 담배를 매우 즐겨 피운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 여인들은 노새보다 나을 게 없다. 말하자면 남자들은 노예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이름도 없이 무시당하고 법이란 자체는 여자들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여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는 아마도 담뱃대인 것 같다. 이곳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남녀를 불구하고 담배를 많이 피운다.
(헤세 바르텍 1895년)
대한 제국의 남자들이 얼마나 골초인가 하면, 그들이 50여년 일생 동안 피우는 담배 연기만으로도 우리 나라 베를린의 국립 보건소 인원 전체를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죽게 할 만하다. 그런데도 조선 남자들은 모두가 팔팔하고 건강하게만 보인다.
(1902년 애쏜 써드의 『서울 견문록』중에서)
여러 세기 동안 조선 사람들의 정력은 담배 연기 속에서 헛되이 소모되었으며, 조선이 국가적으로 쇠퇴한 시기는 담배가 소개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한국』, 1882)
1894년 영국 신문에 실린 그림. 한국인들이 처음보는 양담배와 성냥을 호기심있게 쳐다보고 있다.
프랑스에서 발행된 엽서에 소개된 그림. 긴 담뱃대를 지게와 함께 한국의 상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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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3페이지
  • 등록일2004.07.07
  • 저작시기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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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59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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