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정책 특징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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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서론

II.본론

(1).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
1) 총노선 제출의 역사적 배경
2) 사회주의 건설 총노선의 제출

(2).대약진 운동
1)"대약진" 초기의 사상동원
2) 대약진의 전국적인 전개

(3).인민공사 운동
1)인민공사운동의 형성
2)인민공사의 특징
3)"공산주의 바람"에 의한 최후의 결과

(4)."대약진"시기의 경제
1)좌경사상의 발전
2)빈궁한 과도기
3)관리권한의 성급한 하방
4)경제관리체제 개혁중의 과오

<1>.국민경제
<2>.기업관리

III.결론

(1)."대약진"시기 국민경제의 총결산

1).국민경제 일부 영역에서 얻은 진전
2).비례관계의 심각한 균형 상실

(2)."대약진"의 경험과 교훈

1)생산력의 성질
2)경제 규율에 따른 경제건설
3)인민 내부의 모순과 각종 모순의 처리

본문내용

년 동안 국가의 재정수입은 1957년의 310.2억원에서 1958년, 1959년,1960년에느 각각 387.6억원, 487.1억원, 572.3억원으로 증가되었다. 그러나 재정지출의 증가폭도 1957년의 304.2억원에서 1958년,1959년, 1960년에는 각각 409.4억원, 552.9억원, 654.1억원으로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3년동안 재정적자의 누게는 169.4억원이나 되었다. 이러한 대규모의 지출과 적자는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래 전무한 일어었다. 이 3년 동안 은행신용대출의 증가폭도 저에 없었던 일이었다. 은행의 대공업 대출금은 57년의 33.4억원에서 58~60년에는 각각 91.9억원, 258.3억원,399.6억원으로 급증하여 60년은 57년의 13배에 달하였다. 은행의 대상업 대출금도 2.3배가 증가하였다. 제정적자와 신용대출의 팽창은 은행으로 하여금 화폐발행으로 압박하였다 58년부터 3년 동안의 투자는 회수보다 월등히 커서 화폐 유통량은 81%가 증가되었다. 이것도 50년 재정의 통일 이래 전무한 일이었고, 총수요의 팽창은 구매력을 대폭적으로 증가시켜 놓았다. 또한 동기 시장의 상품공급량이 심각하게 부족하였으며, 특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의 상품은 크게 부족하여 재고품을 대량으로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57~60년에 식량 및 솜과 솜실 등 주요 소비품은 재고의 약 1/3을 동원하였다. 이로 인하여 60년의 상푸 구매력은 여전히 소매상품 공급원 74.8억원 보다 컸으며, 연말의 구매력은 198억원에 다다랐다. 상품의 공급부족은 물가상승을 야기시켰고, 소매물가 총지수가 60년에는 전년대비 3.1%가 상승하여 1954년 이래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을 나타냈다.
(2)."대약진"의 경험과 교훈
3년 동안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주의 건설을 실천하는 가운데 많은 경험과 교훈을 주었다. 이러한 경험과 교훈은 다음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생산력의 성질
대약진시기 소유제 문제에 있어서는 맹목적인 "一大二公"의 추구와 "과도기"라 ㅏ여 개체경제와 개체경영을 취소하면서 되도록 빠르게 과도기를 거쳐 단일된 전인민소유제인 국영경제와 국가경영에 이르고자 하였다. 결과가 증명하듯이 이러한 것들은 비단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시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고 훼손시켰다.
소유제 개혁의 형식과 구조가 커질수록 또는 공유회될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생산력 수준의 수요에 부응되어야만 하는 거시지 사람들의 주관적 의지와 소망만으로 결정될 수 는 없었다. 분배제도에서는 "一平二調".성과급의 폐지.공급제.식당제 등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보기에 따라 선진화된 것으로 공산주의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가 뒤섞여 있어 실제 생산력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동에 따라 분배한다"는 사회주의 원칙이 파괴되면서 기업과 노동자는 생산경영의 적극성을 잃음으로써 노동생산성의 저하로 이어져 국민경제에 큰 곤란을 야기시켰다.
중앙과 지방의 관계에서는 대약진시기 주요 관리권의 지나친 하방으로 하방해서는 안될 권한까지 하방하였는데, 특히 국민경제와 전반적으로 관계있는 권한까지 지방에 하방하였다. 나아가 국가와 기업의 관계에서도 과거 국가는 일률적으로 너무 융통성 없이 과다하게 관리하였지만 기업에게 이정한 주주권으 줄 필요성은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기업에게 정확한 계획지도를 못해 당시에는 층층히 가중되는 고지표가 성행하였다. 나아가 기업의 권한이 확대된 이후 필요한 규정과 제도는 문란해지고 훼손되었으며, 경제적 효율은 큰 폭으로 하락되었다. 이것이야말로 교훈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2)경제 규율에 따른 경제건설
대약진 중 경제건설의 속도를 확정할 때 사람의 적극성은 빈곤하고 낙후된 면모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농업은 이미 어려운 고비를 넘겨 공업건설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고 오판하면서 "하루는 20년과 같다"는 기적을 만들려고 기도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높은 속도를 가져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에 엄청난 손실만을 가져왔다.
경제의 발전속도는 사람들의 능력만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기반과 기술조건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했다. 사회주의 경제발전은 균형적인 발전과 종합적인 평형계획을 세워 발전시켜야 했다. 대약진의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는 당시 "철강생산을 기간산업으로 삼는다"와 "한사람이 대주의 앞장을 서면 모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라는 것 강조하였지만, 실제적인 결함은 국민 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경시하였다는 점에 있었다. 이러한 결과 축적과 중공업의 건설에만 치중하였고 소비,농업,경공업,시장,인민생활은 경시함으로써 경제를 심각한 곤경으로 몰아 넣었다. 사회주의 건설의 가속화는 경제적 효율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경제적 효율은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타난 문제점은 미래 청사진의 제정까지 예상해서 예상과 어긋나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고, 계획을 세울 때 여유를 두고 세웠어야 했는데 여유가 없었던 결함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 요인이 되었다. 경제적 채산을 향상시키려면 경제적 효율향상에 노력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이 전정한 사회주의 건설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3)인민 내부의 모순과 각종 모순의 처리
사회주의 경제발전은 정치상에서 민주를 충분히 발휘시키고,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건전한 법제와 각 방면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수렴하여 관료주의와 주관주의를 교정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개혁과 건설이라는 문제를 처리하면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다. 결과가 증명하듯 대약진 중 좌경사상만을 가지고 반모험주의를 지속적으로 바판하면서 우경사상을 금기시하고, 좌경이 절대적으로 좋다는 편견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었다. 좌경과 우경의 서로간의 양면투쟁을 전개했어야만 했다. 투쟁방식은 일반적으로 토론과 논쟁의 방법을 취하고 설득과 교육의 방법으로 시비를 분명히 하여야 했는데, 징소리 한번으로 가락을 정하거나 소수의 의견으로 결정되는 그런 방법을 취해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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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10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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