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 한국 무속신앙의 모태는 샤머니즘이다?
. 종교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무속신앙
. 종교적 입장에서 무속신앙의 올바른 명칭
.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롯된 무속의 잘못된 인식
Ⅲ. 결론
Ⅳ. 참고자료
Ⅱ. 본론
. 한국 무속신앙의 모태는 샤머니즘이다?
. 종교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무속신앙
. 종교적 입장에서 무속신앙의 올바른 명칭
.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롯된 무속의 잘못된 인식
Ⅲ. 결론
Ⅳ. 참고자료
본문내용
지을 때도 하늘님께 제사를 지냈고 추수를 할 때도, 또 기우제를 지낼 때도 우리 민족이 찾았던 것은 다름이 아닌 하늘님 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기독교에서의 여호와는 우리 민족에게는 친숙하게 다가왔고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는 더욱더 기반을 다지게 됐고 1950년 미 군정시대에 제 1종교로서 도약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로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독교가 무속적인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현재의 한국의 기독교의 일반 신자들은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나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차원 높은 결단이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생명적인 순종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적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신앙태도를 갖게 되며, 가정방문이나 안수기도 하는 교직자들이 샤만(shaman)적인 중재역할을 하도록 요청하며 기대한다. 결국 한국의 기독교는 전래된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국 고유의 전통 무속신앙에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것은 비단 기독교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에 전래되었던 불교, 도교 등 여타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비단 기독교만이 유별나게도 한국의 무속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배척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대표적 최근 사례 두 가지를 들자면 우선 2004년 9월 이천시에서 열렸던 도자기 축제에서의 해프닝을 들 수 있다.
국민일보, 2004년 9월 13일 기사
무속인들의 연합 기구인 (사) 대한경신연합회는 경기도 이천시 설봉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제 11회 전국무속예술대제전'을 개최할려고 시도했고 이에 대해 이천시 기독교연합회는 "공휴일에 많은 시민이 찾는 공공장소에서 대규모 무속행사를 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즉각 공연 취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천시에서 허가까지 받은 공연에 대해 딴지를 걸 수 있는 이유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공휴일에 많은 시민이 찾는 공공장소에서는 무속행사를 열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도대체 어떠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예로 2003년 1월 이기백
'단군 신화의 문제점' 이라는 글로 유명하며, 국내 대표적인 기독교 신자
14) 오마이 뉴스, 2003년 1월 23일 기사
서강대 교수가 자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
무술(무속)신앙은 거의 전적으로 기복신앙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종교가 아니며, 계승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사상체계와 생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풍수사상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퇴출돼야 할 유산으로 규정하는 한편 족보에 대해서도 '민주사회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족보를 통한 자기 신분을 과시 할려는 풍조가 사라지는 날이 곧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날이라고까지 하였다. 도대체 족보가 민주주의 발전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한국 기독교계가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까 하는 씁쓸함이 아울러 든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기독교는 많은 공헌을 남겼다. 우리 민족의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고 크게 부흥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다른 종교들이 퇴보내지는 답보 상태에 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기독교만은 교회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양적으로 놀라운 발전과 팽창을 거듭해왔다. 한국의 기독교가 어떤 질적인 성숙이나 근원적인 부흥 없이도 이렇게 양적으로 팽창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기독교의 큰 성공은 '한국의 기독교에 한국 고유의 무속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진 특이한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기독교인들의 권리와 이익만을 지키고자만 하고, 다른 종교의 다양성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데 앞장서는 보수적 기독교의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미래사회에서는 진정한 종교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Ⅲ. 결론
우리는 많은 종교를 접하며 이 땅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무교인 것 같다. 한국역사를 일일이 연구해보고 통찰해 보지 않더라도 고대, 중세 사회에 무교가 한국 민중들 곁에 있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최첨단 시대를 맞이한 지금에도 묘 자리를 알아볼 땐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고, 결혼을 한땐 궁합을 보고, 아들을 원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땐 무당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렇듯 가장 우리들 가까이 있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무교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의식변환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중심에는 기독교적 종교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간간히 벌어지는 무당들의 처방에 대한 부작용등도 한 몫 거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교는 비과학적이고 너무 미신적이다'라고 비판을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지금 어떤 종교가 과학적이고 미신적이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무교를 온 동네 구석구석 전파하고 알려나가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역사와 같이 했던 무교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만이 한국사회에서의 종교문화는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고 나아가 우리 모두를 살찌우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Ⅳ. 참고자료
<참고 문헌>
조흥윤, 『巫와 민속문화』, 민족문화사, 1991년
장헤영, 『한국을 해부한다』, 국학자료원, 2002년
박일영, 『종교간의 갈등과 대화』,종교신학 연구 2집, 1989년
『종교학 대사전』, 한국사전 연구소, 1998년
<참고 신문>
오마이 뉴스, 2003년 1월 23일 기사
국민일보, 2004년 9월 13일 기사
<참고 사이트>
네이버 지식인 검색
http://www.silsang.or.kr/buddhism-001.html
국민일보, 2004년 9월 13일 기사
무속인들의 연합 기구인 (사) 대한경신연합회는 경기도 이천시 설봉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제 11회 전국무속예술대제전'을 개최할려고 시도했고 이에 대해 이천시 기독교연합회는 "공휴일에 많은 시민이 찾는 공공장소에서 대규모 무속행사를 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즉각 공연 취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천시에서 허가까지 받은 공연에 대해 딴지를 걸 수 있는 이유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공휴일에 많은 시민이 찾는 공공장소에서는 무속행사를 열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도대체 어떠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예로 2003년 1월 이기백
'단군 신화의 문제점' 이라는 글로 유명하며, 국내 대표적인 기독교 신자
14) 오마이 뉴스, 2003년 1월 23일 기사
서강대 교수가 자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
무술(무속)신앙은 거의 전적으로 기복신앙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종교가 아니며, 계승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사상체계와 생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풍수사상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퇴출돼야 할 유산으로 규정하는 한편 족보에 대해서도 '민주사회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족보를 통한 자기 신분을 과시 할려는 풍조가 사라지는 날이 곧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날이라고까지 하였다. 도대체 족보가 민주주의 발전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한국 기독교계가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까 하는 씁쓸함이 아울러 든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기독교는 많은 공헌을 남겼다. 우리 민족의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고 크게 부흥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다른 종교들이 퇴보내지는 답보 상태에 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기독교만은 교회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양적으로 놀라운 발전과 팽창을 거듭해왔다. 한국의 기독교가 어떤 질적인 성숙이나 근원적인 부흥 없이도 이렇게 양적으로 팽창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기독교의 큰 성공은 '한국의 기독교에 한국 고유의 무속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진 특이한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기독교인들의 권리와 이익만을 지키고자만 하고, 다른 종교의 다양성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데 앞장서는 보수적 기독교의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미래사회에서는 진정한 종교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Ⅲ. 결론
우리는 많은 종교를 접하며 이 땅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무교인 것 같다. 한국역사를 일일이 연구해보고 통찰해 보지 않더라도 고대, 중세 사회에 무교가 한국 민중들 곁에 있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최첨단 시대를 맞이한 지금에도 묘 자리를 알아볼 땐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고, 결혼을 한땐 궁합을 보고, 아들을 원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땐 무당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렇듯 가장 우리들 가까이 있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무교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의식변환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중심에는 기독교적 종교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간간히 벌어지는 무당들의 처방에 대한 부작용등도 한 몫 거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교는 비과학적이고 너무 미신적이다'라고 비판을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지금 어떤 종교가 과학적이고 미신적이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무교를 온 동네 구석구석 전파하고 알려나가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역사와 같이 했던 무교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만이 한국사회에서의 종교문화는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고 나아가 우리 모두를 살찌우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Ⅳ. 참고자료
<참고 문헌>
조흥윤, 『巫와 민속문화』, 민족문화사, 1991년
장헤영, 『한국을 해부한다』, 국학자료원, 2002년
박일영, 『종교간의 갈등과 대화』,종교신학 연구 2집, 1989년
『종교학 대사전』, 한국사전 연구소, 1998년
<참고 신문>
오마이 뉴스, 2003년 1월 23일 기사
국민일보, 2004년 9월 13일 기사
<참고 사이트>
네이버 지식인 검색
http://www.silsang.or.kr/buddhism-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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