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을 통해본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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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글

Ⅱ. 질그릇 만든 기술의 분석과 복원
1. 재료의 마련
2. 물그릇 만들기
3. 구운 온도와 가마의 추정
4. 질그릇 만든 시기와 만든 이

Ⅲ. 질그릇의 형식 분류
1. 그릇꼴 분류
2. 무늬의 분류

Ⅳ. 질그릇을 통해본 신석기시대의 살림
1. 세 유적 질그릇 갖춤새의 비교
2. 연장 갖춤새의 분석
3. 동식물 갖춤새의 분석
4. 세 유적의 자원영역과 살림 방식
5. 신석기시대의 살림살이

Ⅴ. 맺음말

본문내용

치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암사동주민들의 사냥대상은 뭍짐승에 국한되었고 민물고기와 민물조개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괭이농사를 짓던 이른 시기에는 보습농사로 발전한 늦은 시기에 비해 채집과 사냥 그리고 물고기잡이의 비중이 더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2) 동삼동
동삼동유적에서는 목도기부터 두도-영도기까지는 바다짐승이 뭍짐승보다 더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영도기에서는 뭍짐승의 비율(60%)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곧, 신석기시대의 이른 시기나 늦은 시기의 구분없이 거의 전기간에 걸쳐 동삼동주민들은 뭍짐승보다 바다짐승을 더 활발히 사냥한 것으로 나타난다.
3) 오산리
오산리유적에서는 동물화석, 물고기뼈화석, 조가비 등이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식물화석으로 도토리가 이른 시기인 제 1문화층에서 찾아졌다. 도토리의 존재는 오산리주민들이 생산활동의 하나로 나무 열매를 채집하였음을 보여준다.
오산리유적의 늦은 시기에는 남해안지역과 같은 형식의 질그릇이 사용되었고, 그물추가 많이 나오는 점에서 물고기잡이는 지속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동물분포계구가 같은 농포유적을 참고하면, 오산리유적의 늦은 시기에도 물고기잡이와 채집은 물론 짐승사냥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였을 것이다.
4. 세 유적의 자원영역과 살림 방식
1) 암사동
암사동유적은 임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부터 내륙으로 약 60여㎞ 들어온 한강가에 있어, 약 6천년전 이후 바닷물이 현재보다 2-4m쯤 높거나 또는 1-2m낮아진 변화에 따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으며, 유적둘레의 지세는 구릉저지대에 속한다.
암사동유적의 주민들은 강을 낀 비옥한 충적토와 구릉지대를 터전으로 곡물을 재배하며, 채집 및 사냥을 하고 물고기잡이를 일부 병행하여 살아갔으며 이러한 방식은 ‘강가 언덕 살림’으로 특징 지워진다.
2) 동삼동
동삼동유적은 동남해안가에 위치한 영도의 동쪽 편에 있는 1.1㎞쯤 되는 만의 남쪽 끝에 위치한다.
동삼동유적에서 난류성 어족의 뼈가 나온 점은 신석기시대에도 이 지역이 해류의 영향 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유적을 중심으로 반지름 5㎞의 원을 그려보면, 바다가 80%를 차지하는데, 동삼동주민들은 이 바다를 터전으로 물고기잡이, 바다뭍짐승 사냥, 굴따기와 조개캐기를 주로 하고, 식물채집도 하였지만, 농사에는 관심을 적게 기울였다. 이러한 살림 방식은 외해에 접한 바닷가 지역에서 나타나므로 ‘외해성 바닷가 살림’으로 나뉜다.
3) 오산리
오산리유적은 동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고, 서쪽은 태백산맥으로 가로막힌 지역의 바닷가 모래톱 언덕에 위치한다.
동삼동유적의 경우를 참고하면, 오산리유적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해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서포항과 농포유적의 동물 및 물고기뼈 갖춤새를 고려하면 당시에도 바다자원이 풍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회귀성 물고기들의 통로인 남대천은 안정된 식량 공급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식생은 낙엽활엽수림대에 속하여 다양한 식물성 먹거리가 있었으며, 동물분포계구가 동부해안소구에 속해 짐승들이 번성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산리주민들이 물고기잡이와 사냥 그리고 채집에 높은 비중을 둔 생산활동을 벌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바다와 뭍을 터전으로 물고기잡이, 조개따기, 식물성 먹거리 채집과 뭍짐승 사냥을 중심으로 살아간 방식을 ‘바다-뭍 살림’으로 가늠할 수 있다.
5. 신석기시대의 살림살이
남한학계의 일반 견해는 신석기시대 내내 사냥과 채집을 포함하는 물고기잡이가 주된 생계수단이었고 말기에 국한된 지역에서 농사가 지어졌으나, 북한학계의 견해는 신석기 중기부터 농사가 어느 지역에서나 기본이었다고 해 두 학계의 견해가 크게 다름을 보여준다.
그런 반면 지역에 따른 생산활동의 차이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는 공통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살펴보았듯이 동일한 시기에도 유적에 따라 생산활동 내용이 같지 않으며, 또 나중 시기로 오더라도 그 지역의 유리한 여건에 따라 힘쏟은 생산분야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두 학계의 주장은 획일화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터잡은 둘레의 자원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전략에 바탕하여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연장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먹거리를 얻었으며, 획득한 식량을 갈무리하고 요리하며 담아먹기에 알맞은 여러 꼴의 질그릇을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임이 명백하다고 하겠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석기시대 유적인 암사동, 동삼동, 오산리유적의 질그릇을 살펴보았으며, 아울러 질그릇을 통해 신석기인들의 살림살이를 살펴보았다.
세 유적의 신석기인들은 획일화된 삶을 산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주변 환경에 맞게 질그릇을 제작했고, 또 살림살이를 해갔다.
고고학이 후대에 남겨진 유물을 통해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시대를 밝히려는 학문이라고 한다면은 유물 그 자체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배후의 세계, 즉 그러한 유물이 누구에 의해, 무슨 필요에 의해, 얼마만큼의 노동을 들여서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고고학만으로는 어렵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류학, 자연과학, 지질학 등등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인류학에서는 대표적으로 여러 민족지 사례들의 도움을 받아야하며, 자연과학과 지질학 역시 말할 것도 없다. 현미경분석, X-선회절분석, 꽃가루 연구, 선사시대의 환경, 환경복원 등등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아야한다.
질그릇을 분석하고 또 그것을 통해 신석기인들의 살림을 밝힐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요컨대, 신석기인들은 획일화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변환경에 맞는 삶을 선택해서 살았으며, 그러한 생활에 맞는 질그릇을 제작해서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다.
참 고 문 헌
<조선고고학개요>,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도서출판 새날, 1989
<남경유적에 관한 연구>, 김용간석광준, 과학, 백과사전 출판사,1984
<조선의 신석기시대>, 서국태, 사회과학출판사, 1986
<고고학개론>, 이선복, 이론과 실천,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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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3.25
  • 저작시기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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