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사(언론 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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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해방 직후의 국내외 정세
1. 해방 직후의 국제 정세
2. 미국의 대한정책(對韓政策)
3. 국내, 그리고 언론의 분절

Ⅲ. 미군정기의 한국 언론
1. 해방 후 한국 언론의 큰 갈래
2. 해방 후 남한의 주요 사회세력
3. 미군정기 한국 언론의 한계

Ⅳ. 미군정의 언론정책
1. 언론정책의 기본 성격
2. 언론정책의 주요 내용

Ⅴ. 결론

본문내용

교섭을 통해 이를 접수하여『경향신문』을 창간했다.
② 귀속재산의 운영 개입
미군정은 귀속재산의 운영에 직접 개입하기도 하였다. 군정은 귀속재산 언론사의 시설을 보수언론이 적극 활용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한 것이다.『매일신보』나『경성일보』의 시설을 개방적으로 운영한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8.15직후 서울에서 한글로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신문으로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있었고, 신문사 시설을 갖춘 일문지로는 『경성일보』가 있었는데 미군정은『동아일보』와『조선일보』가 속간을 추진하자『경성일보』와『서울신문』의 시설을 이용하게 했다.
위의 귀속재산 처리에서 드러나듯 미군정은 공공 언론기관은 직접 접수하여 자주관리를 배제하고 군정의 직할매체로 이용하면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우익언론에 편익을 제공했다. 사유의 언론관련 귀속재산은 노동자의 자치는 물론 공산주의 세력이나 진보주의 세력의 관리를 배제하고 미군정의 협조적 인사 등에 관리권을 주거나 불하했다.
일반 귀속재산의 관리인은 대체로 귀속사업체의 직원이나 주주였던 자, 관련 거래상인, 또는 노동자 자주관리 조직의 초빙을 받아 관리책임을 맡았다가 미군정에 의해 정식 관리인으로 임명된 자로 구분된다. 그러나 군정당국은 상당수 귀속재산을 아무 연고나 관련이 없는 인사에게 넘겨주었다. 언론분야도 이런 경로를 거쳐 서울과 지방의 일인 소유 신문사나 통신사 인쇄소 등에 구성되었던 자치위원회가 해체되고 귀속재산은 결국 친일파나 친미세력에게 관리권이 넘어가거나 불하되었다. 이렇게 하여 미군정은 친일세력을 청산하기보다 오히려 성장의 조건을 갖춰주어 이들을 친미세력으로 형성했다.
Ⅴ. 결론
결론적으로 미군정기 미국의 언론정책이 우리 언론 발전에 미친 영향은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부분들이 더 많다.
긍정적인 부분은 현대 언론 기관의 기본적인 모양새도 갖추지 못했던 한국 언론에 미국식 선진기술을 전수해주었다는 점이다. 1946년 미군정의 공보기구의 활동목표 10개항 중에는 제6항 “부서내의 한국인에 대한 미국적 훈련 경험의 실시 (미군 철수 후 민주적 공보의 기술과 방법 활용 가능토록)”, 제7항 “한국인으로 하여금 자유롭고 지적인 신문의 기능을 수행토록 지원격려” 등의 사항이 들어있었다. 이때는 시기적으로 이미 미국의 대한정책이 명실상부한 봉쇄정책으로 바뀌어져 있을 때이며 그들의 대한언론정책은 완전히 정치 지향적이라 할지라도 기술 기능적 측면에서는 한국에 협조적인(물론 자기들의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것이었음에는 틀림없었다.
그 밖에도 정시방송제의 정착이나 미군정의 공보활동을 통해 기자회견을 정례화하고 언론인들의 자율적 규제를 유도한 것 등은 긍정적인 역할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국이익을 위한 정책집행에 초점을 맞춘 미군정의 언론통제는 한국 언론사에 지울 수 없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남겼다.
우선 여론의 자유로운 토론장으로써의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하였다. 무릇 민주언론이 제대로 자기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론이 존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있어야 하며 그 자유주의 경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은 언론이야 말로 비로소 그 시대의 진정한 여론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때 당시 우리나라에 존재하였던 세 가지 색깔의 언론들은 공정한 경쟁을 거쳐 조정된 것이 아니라 미군정의 외압에 의해서 강제로 조정이 되었으며 그 결과 현대 한국 언론은 불구의 모습으로 그 시작을 해야 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또한 미군정이 단독정부 추진을 위해서 집중 육성했던 보수언론들은 그 기원적인 독선의 그늘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오늘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친일청산의 민족적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부끄러운 짐은 미군정기를 지나 자유당 정권, 박정희, 전두환 군사 정권을 거쳐 짊어져 내려오면서 민족 언론으로써의 정당성 확보에 실패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되었다.
모든 사회문제에는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이 존재한다. 해방 후 우리 민족 앞에는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노리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커다란 외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경우 나라의 자립을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극히 제한적이었음을 간과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조의 견해이다. 이로 인해 한국 언론의 발전에 있어서 미군정의 정책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근간이 되어 한국 언론은 제대로 된 성장, 발전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그 시절의 언론인들이었다면 외압에 의해 사회 전반이 일방적으로 구조화되던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했을까하는 문제는 다음조의 논의가 끝난 다음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에 앞서 우리조의 발표를 통해 그 시대의 상황에 한걸음 다가가서 좀더 깊은 이해와 안목으로 그 당시를 돌아보는 시간이였기 바란다.
[참고문헌]
김민환 <한국 언론사> (나남, 1996)
김민환 <미군정 공보기구의 언론활동>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언론학 논선11, 1991)
김민환 <미군정의 언론정책> (언론과 사회8, 1995 여름)
김민환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나남, 2001)
김민환 < 『해방일보』와『노력인민』의 사회사상> (언론과 사회, 2001)
박용규 <미군정기 한국 언론구조의 형성 과정>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 1988)
안진 < 美軍政期 國家機構 형성과정에 관한 硏究 >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 1990)
이혜숙 <미군정기 한국의 정치사회적 변동> (한국사회사연구, 2003)
정진석 <해방공간의 좌익언론들> (관훈저널, 2000 겨울호)
차재영 <주한 미점령군의 선전활동 연구> (언론과 사회5, 1994 가을)
Ⅰ. 서 론
Ⅱ. 해방 직후의 국내외 정세
1. 해방 직후의 국제 정세
2. 미국의 대한정책(對韓政策)
3. 국내, 그리고 언론의 분절
Ⅲ. 미군정기의 한국 언론
1. 해방 후 한국 언론의 큰 갈래
2. 해방 후 남한의 주요 사회세력
3. 미군정기 한국 언론의 한계
Ⅳ. 미군정의 언론정책
1. 언론정책의 기본 성격
2. 언론정책의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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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3.27
  • 저작시기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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