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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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자본의 시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추세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서는 1874~1875년에, 에스파냐에서는 1877년에, 독일에서는 1879년에 역전되었고, 사실상 영국 이외의 어디서나 그러했다. 영국도 1850년대 이후 자유무역은 압력을 받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약자를 자본자로부터 보호해달라고 하는 아래로부터의 요구, 즉 실업대책이나 최저임금과 같은 사회보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 또한 그 소리가 높아져서 정치적인 힘으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이제는 옛 신분위계체제하의 귀족이나 새로운 부르조아들이 무상으로 시민이나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게 되었고, “아랫사람” 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권력이 위태로운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사태가 되자 국가는 커지기 시작했다. 종전에 간섭없고, 작은 정부는 소위 아랫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류계급은 점점 더 강력하고, 매사에 간섭하는 새로운 국가형태로 전개 되기 시작했다. 반 민주주의적인 사상가들이 근심스럽게 예상했던 새로운 정치 형태가 펼쳐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역사가가 말하기를 “인간의 권리의 현대판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을 원하면서도 그러한 그들의 요구가 국가의 강제 없이는 달성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제 가장 중요한 일들은 사회가 돌아가는 대로 내버려 두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얘기를 했다. 사람들에게는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바라는 가난한 자들의 소위 유토피아적인 요구만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요구를 관철시킬 가난한 자들의 역량 또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솔직하게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치 체제가 공화제건 사회주의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현대적 기준에서 볼 때 국가의 역할과 그 기능의 증대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시기에 거의 모든 나라에서 1인당 재정지출(즉, 정부의 활동)이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국가 채무가 급격히 누적된 결과였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다. 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나라인 영국과 벨기에, 덴마크등은 예외로 한다.)
어찌 되었든지 교육관계의 지출을 제외하면 사회적 지출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한편 새로운 경제적 불황기의 혼란과 긴장 속에서 세가지 새로운 정치동향이 나타났다. 새로운 경제적 불황기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회적 격동과 불만의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첫째 현상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적 경향을 가진 독립적 노동자 계급의 정당과 그 운동의 출현이었다. 독일사회민주당이 그 선구적 존재이자 또 가장 두드러진 예였다. 당시의 정부와 중산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정당을 매우 위험스러운 존재로 인식했지만, 실은 노동자 계급의 정당도 자유주의에 입각한 합리주의적 계몽사상이 주장하는 가치와 이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두 번째 현상은 합리적인 계몽사상 같은 것들을 믿지 않고 오직 정면으로 대립하여 움직이는 것만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움직인 것을 말한다. 1880년대 및 1890년대에는 반 자유주의와 반 사회주의적이었던 정당이 출현하여 대중을 선동하였다. 이들 정당은 전에는 자유주의적이었던 조직들에서 파생되거나 갈라져서 나왔거나, 지금까지는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지 않았던 교회 산하에서 나왔다. 전자의 예로서는 히틀러주의의 선조가 된 반 유대주의적, 범 게르만주의적 국가 주의자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예로는 오스트리아에서의 기독교 사회주의가 있다.
세 번째 현상은 민족주의적 대중정당과 그 운동이 자유주의적 급진주의라는 종래의 사상적 테두리에서 해방된 일이다. 민족 자치 운동 혹은 민족독립운동 가운데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사회주의적인 경향으로 기운 예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노동자가 국내에서 큰 역할을 한 경우에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제적으로서의 사회주의라고 하기보다, 민족적 요소가 사회주의적 요소를 압도 하여서 민족적 사회주의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밖에 운동들은 피, 토지, 언어와 같은 다름아닌 인종적인 요소를 전통으로 두고 있는 이데올로기들로 접근 되어져 갔다.
이와 같은 현상은 1860년대에 나타난 소위 선진국들의 정치가 지닌 기본유형(기본 요소)을 깨뜨리지 못했다는 데 기인한다. 즉, 마지못해 점진적으로 민주주의적 입헌제로 접근해가는 추세를 전환시키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대중정당의 출현은 정부로서는 이론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고 해도 일단 나타났고 당시 정부들에게 그 공포감은 크게 나타났다. 정부는 새로운 정치를 다루어나가는 요령을 알기 전에는 공포와 당황으로 허둥대거나 대세를 읽지 못해 강압으로 임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확실히 대불황이라는 불안한 시기로 빠져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불황을 너무 강조하다가 보면 사람들의 생각을 오도하게 될 것이다. 1930년대의 불황과는 달리 이 시기에 일어난 불황은 성격이 복잡하기도 하고 또 한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 책이 다루었던 시기를 지나서 나온 시기를 불황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어째든 1875년 이후의 승리한 부르조아들의 세계가 전과 다름없이 튼튼한 것으로만 보였으며 부로조아가 전에 비하면 다소 자신감은 잃었지만 자신감의 표현은 더욱더 심하게 했다. 많은 난관이 있는 새로운 시기에 적응하려는 부르조아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에릭 홉스봄 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시기에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엄청나게 발전했었다는 것과 그 발전의 결과로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끝났다는 것을 밝히는 지극히 역설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이시대의 모순은 자유주의 시대는 부르조아의 것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주귀족이 있었고, 그들이 최상위층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봉건귀족이 지배하는 시대를 자유주의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할 여지가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홉스봄이 얘기하는 자본의 시대, 부르조아의 시대라는 대 명제에 대해서는 고쳐야 한다고 얘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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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5.07.31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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