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이에 대한 반대의견(일제 수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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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이에 대한 반대의견(일제 수탈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식민지근대화론총설

1. 일본의 식민사관

2.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

3. 일제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본문내용

토지투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제 3기는 만주사변 이후부터 해방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일제는 조선을 대륙전진기지로 이용하기 위하여 조선의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조선의 공업화를 위하여 일본의 자본이 적극적으로 조선에 진출하였다. 표2는 조선내 공장경영자의 국적별 조사표이다.
<표2 조선내 공장의 경영자 국적별 조사표> 위 통계는 5인 이상의 직공을 사용하는 설비를 갖고, 또 5인 이상의 직공을 사용하는 공장주로부터 제출된
조사표에 의한 것임
연도별
공장총수
한국인
일본인
기타 외국인
공장수
퍼센트
공장수
퍼센트
공장수
퍼센트
1917
1,358
609
44.8
736
54.3
13
1.8
1931
4,656
2,424
52.0
2,182
46.9
50
1.1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제2기 이후에 한국인이 설립한 회사의 수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의 민족계 회사, 또는 공장들은 절대다수가 소농민, 소상인, 서민출신의 기업인에 의해 설립되고 경영되었기 때문에 기업의 크기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였다. 1931년 민족계 기업회사 445사 중 자본금 50만원 이상의 기업체는 38사에 불과하고 나머지 307사는 자본금이 50만원 이하의 중소기업체였다.
산업구조는 일제시대 후반으로 올수록 공업의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하기는 하였다. 시기별로 산업구조의 변화를 보면 표3과 같다.
<표3 산업구조의 변화> ①관영공장은 포함되지 않음
② 1939년 수치에는 정련공장도 포함되지 않음
③ 표 1과 약간의 차이가 있음
연 도
구 분
공산물생산액(A)
총생산액(B)
A/B × 100(퍼센트)
1911
43.5백만원
410.4백만원
10.6
1930
281.0백만원
1175.7백만원
23.9
1944
2000.0백만원
5882.4백만원
34.0
공업제품의 전체 생산물에서의 비중이 1911년 10.6%에서 1930년 23.9%로 증가하였고, 일제 말인 1944년에는 공업제품의 전체 생산물에서의 비중이 3분의 1을 상회하게 된다. 또한 1930년 이후 공업생산에서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의 비중도 변하고 있는데 1930년에는 미약하던 중화학 공업이 해방 직전인 1943년에는 경공업의 비중과 같아질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러한 공업화의 진전이 해방이후에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때의 공업화가 70년대 고도성장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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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09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9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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