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후의 일본 외교
본 자료는 1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해당 자료는 1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냉전의 승자’ 일본의 패배
- 걸프 위기와 전쟁 -
- 한반도의 냉전 후 -

2. 냉전 후 외교의 모색
- APEC 탄생 -
- 캄보디아 PKO의 성과 -
- 우루과이 라운드 성립과 WTO 탄생 -
- 미.일 자동차 마찰 -

3. 위기와 안전보장의 계절
- 안전 신화의 붕괴 -
- 오키나와 소녀 폭행사건과 타이완 해협 미사일 위기 -
- 미.일 안보재정의 -

본문내용

과거의 사례에 얽매이지 않고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아시아·태평양으로서 구조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타이완 해협 위기 후에 정해진 미·일 안보의 취급이었는데 이에 양국은 두개의 대응을 공동으로 취했다. 하나는 '미·일 안보 재정의'였는데 96년 4월 도쿄에서 열린 양국 수뇌회담에서 미·일 안보조약을 존속시켜 실효화 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공동선언에서 양국은 오키나와 기지축소 정리 확인과 소녀 폭행사건에 대한 공동 대처를 약속하면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10만 명 수준의 미군을 아시아에 유지하며, 미·일 신 가이드라인을 책정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불만을 표시하였고, 양국은 중국을 봉쇄 또는 고립시키는 의미가 아니라 중국이 우호와 협조를 통한 국제사회의 건설적 참여라고 주장했다. 미·일 안보 재 정의는 미국의 냉전 후 '동아시아 전략'과 일본의 '신 방위계획 대강'사이의 긴밀한 대화와 협의가 그 토대가 되었다. 실무 레벨에서부터 준비된 미·일 안보 재 정의는 발표 예정 날이 연기되고 그 사이에 여러 위기가 발생하였지만 위기에 대한 양국의 정치적 공동 대처가 도리어 양국의 안보 재 정의에 힘을 실어 주었다.
  • 가격1,000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06.02.03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602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