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정족산 전등사(傳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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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활산성(明活山城)과 같이 삼국시대 석성구조를 보이고 있다. 고려 고종은 1259년 풍수설에 따라 이 성내에다 가궐(假闕)을 지었다고 한다. 1660년(조선 현종 1)에는 마리산 사고에 보존해오던 《조선왕조실록》을 성내의 정족산사고로 옮겼다. 이때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譜閣)이 같이 건립되었다. 현재 사고와 선원보각은 모두 없어지고 전등사(傳燈寺)만 남아 있다. 삼랑성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계속적인 보수가 있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첩지로 유명하다. 사적 제130호.
5.명부전
「전등사본말지」에 따르면, 1767년(영조43)에 한영대사가 시왕을 다시 색칠하여 봉안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면 명부전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로도 명부전은 여러 차례 중수하거나 개금불사를 했다. 이곳에서 49재 등 망자를 위한 의식을 열기 때문에 건물안에는 망자의 영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시왕들이 본존인 지장보살 좌우에 즐비하게 서 있어 약간은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6.선원보각지 (향토유적 제 12호)
조선시대 왕실의 족보등을 봉안해 오던 곳으로 조선 현종 1년 (1660년) 정족산성내 장사각 북편에 강화유수 유념이 건립하였다.
선원보는 숙종 5년 (1679) 낭원군 이품이 "선원보략"을 올려 처음 간행한 이래 역대에 걸쳐 새로이 왕이 즉위할 때마다 중교(重交), 보간(報刊) 해 오던 것을 고종 34년(1897)에 합간 한 바 있다. 이 건물은 1900년대 초 일인(日人)들에 의해 무너진 것을 1998년 강화군에서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대조루 (인천 문화재자료 제 7호)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아담한 2층 건물이 대조루이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문루 역할을 하고 있으며, 2층에 傳燈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곳에 오르면 서해바다의 조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서 대조루(對潮樓)라 한다. 목은 이색이 누상에 올라 읊은 시가 액자에 담아져 걸려 있는데 그의 호쾌함 속에 잠겨든 스산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대조루는 영조의 시주로 대웅전과 함께 중수(영조25)했으나, 현종 7년(1841)에 다시 지었다. 그 후 두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날의 건물로 남아 있다. 대조루 안에는 지금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보각(譜閣)의 현판인 선원보각, 장사각(藏史閣), 추향당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8.양헌수 승전비 (인천 기념물 제 36호)
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것을 병인양요라고 한다. 저들은 강화도를 무참히 짓밟고 보물을 수도 없이 약탈하였다. 강화읍을 유린한 저들은 이번에는 정족산성을 정복하기로 마음먹고 광성보에서 산성으로 쳐들어왔다. 그런데 이때 양헌수 정군이 이곳에 몰래 군졸들을 매복시키고 있었다. 비록 하찮은 무기들이었지만 적의 침입로 곳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조선군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부랴부랴 배를 몰아 염하를 빠져나간 프랑스군은 더 이상 강화도를 넘보지 못했다.
이를 기념하여 1873년에 강화군민들이 양헌수 장군 승전비를 세웠다고 한다. 동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비각에 보관되어 있다. 비의 크기는 140㎝이다.
9.옥등 (성보문화재 성보문화재란 불교 문화재를 말한다.
)
고려 충렬왕의 정비인 정화궁주가 이 옥등(높이6㎝, 지름12㎝, 두께0,8㎝)을 부처님 전에 올려서 절 이름을 전등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의 옥등이다. 전통적인 사발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양쪽에 구멍이 뚫어져 있다.
●전등사를 다녀와서 느낀점
학술부로써 답사지를 만들 때 전등사에 대해서 조사하게 되었는데 답사지 만드는 과정은 적지 않게 힘들었지만 2박 3일의 답사를 다니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절실히 실감 하게 되었다. 전등사에서 특히 관심 있었던 것은 범종이었다. 범종은 중국에서 만들어 진 것인데 우리나라의 종과는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세월이 흘러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명문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처음 가본 전등사 였지만 가기전에 공부하고 가서 그런지 친근감이 들고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뿌듯한 답사였다.
참고문헌
우리사찰답사회, <강화 전등사 보문사>, 문예마당, 2001
한국불교연구원, <전등사 한국의 사찰15>, 일지사, 1978
<파스칼 세계대백과사전>, 동서문화사, 2000
문화재청 홈페이지
전등사 홈페이지 http://www.jeondeungsa.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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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4.23
  • 저작시기2005.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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