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설화와 그에 대한 견해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온달설화와 그에 대한 견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온달설화의 내용


2. 온달설화의 순환구조와 병립구조
1) 순환구조
2) 병립구조
3. 온달설화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
4. 온달설화를 바라보는 다른 견해들
1) 온달설화는 희극이다. -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평강공주의 강인한 여성상)
(1) 윤경수가 본 「온달전」의 구조
(2) 온달전의 허구성
(3) 평강공주
가) 공주의 반항
나) 욕구충족
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영혼적 결합
2) 온달설화는 비극(悲劇)이다. - 최인훈의 「온달」
(1) 온달중심의 「온달」
(2) 온달의 능력
(3) 꿈
3) 온달은 민중이다.
(1) 온달의 순박함, 민중의 순박함
(2) 온달의 죽음은 민중의 한계


5. 온달을 바라보는 많은 견해들과 온달의 의미이해

참고 자료

본문내용

설화는 민중들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이다. 민중이 지어내고, 민중이 전하고, 민중이 시대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기호에 맞게 수정하면서 완성된 이야기이다. 이는 온달설화가 민중의 이야기이며, 민중들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증언한다. 민중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 온달설화로 나타난 것이다. 신분상승이라는 그들의 욕망은 매우 강했고,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공주라는 신분의 평강공주가 필요했다. 또 민중들 자신을 표현한 온달은 그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뛰어난 능력을 갖추어 신분상승이라는 민중의 욕망을 이루어 내나 한계에 부딪치게 되어 죽음으로 좌절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면들을 살펴보았을 때 온달은 민중들의 꿈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민중을 표현한 대표적인 인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온달전>에는 당대 민중들의 낭만적인 꿈이 반영되어 있다. 이 꿈이 낭만적이라는 것은 평강공주처럼 지배층 가운데 예외자를 통해서만이 민중들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그리고 있는데, 현실세계에서는 평강공주와 같은 인물은 실질적으로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 민중들의 결집된 역량이 그만큼 허약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고전문학회, 한국고전문학연구 19집, <온달전>의 갈등구조와 소설사적 의의, 이상구, 2001
(2) 온달의 죽음은 민중의 한계
온달은 어렵게 귀족사회로 진입하였으나, 스스로 자원해서 전쟁에 나가 죽음을 당했다. 온달 그는 왜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갔을까?
온달은 본래 미천한 신분의 태생이었다. 평강공주와 혼인을 하게 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공을 세우고, 부마로 인정받고, 벼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온달의 귀족사회 편입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온달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공을 세우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만큼 신분상승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던 시대였다. 이상구는 자신의 기사에서 온달이 귀족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후주의 침략을 물리친 후 전공을 논하는데, 다들 온달의 공이 제일 크다고 말한다. 여기서 온달의 공이 제일 크다고 말한 자들은 누구이겠는가? 그들은 당연히 왕의 측근에 있던 봉건적 귀족들이었을 것이다. 후주의 침략은 사냥대회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이것은 고구려가 몰락할 수도 있는 국가적인 위기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의 당사자가 귀족이냐 일반 민중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는 봉건적 귀족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위기는 실질적으로 고구려 귀족사회의 위기를 의미하는바, 온달은 고구려의 귀족사회를 위기에서 구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고구려의 귀족들은 온달이 귀족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용인한 것이며, 평강왕은 이들의 용인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온달을 사위로 인정한 셈이다. 요컨대 온달이 부마로 인정을 받고 또 고구려 귀족사회에 편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기에 처한 고구려의 귀족사회를 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동
이렇게 어렵게 신분상승을 이룬 온달은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야 했다. 본래 출신이 미천한 온달이 귀족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은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위해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일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달이 한 번의 戰功으로 내내 고구려의 귀족사회에 존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戰時가 아닌 평상시에 대다수의 귀족들은 미천한 출신인 온달을 질시하거나 따돌렸을 것이다. 따라서 온달이 지속적으로 귀족사회에 남아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長技인 탁월한 전투력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전공을 세워야만 했으리라. 특히 온달을 지지했을 평강왕의 죽음은 그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평소 온달을 질시하거나 따돌렸던 고구려의 귀족들이 평강왕의 죽음을 계기로 온달을 귀족사회에서 완전히 배척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동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온달이 신라 공격을 자원해서 나갔을 것이며, 옛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을 것이다. 신분유지를 위한 온달은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또한 온달의 죽음은 언젠가 찾아올 신분유지를 위한 대가로 신분적 한계에 따른 운명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소박하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가치를 억압하는 현실적인 사회적 통념에서 비롯된 일반 민중들의 욕망 표출이 온달설화라는 이야기를 통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난 것이다.

5. 온달을 바라보는 많은 견해들과 온달의 의미이해
온달설화를 바라보는 견해는 매우 다양하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희극성을 지닌 것으로 보는 견해, 비극성을 지닌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는 크게 나누어 본 것이지만, 실제 위에서 살펴본 것은 하나의 온달설화에 대한 해석적 차이의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또 온달이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온달설화를 해석하는 많은 입장중의 하나이다.
온달설화를 바라보는 견해들은 이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크게는 온달이 실존인물이냐, 설화 속 인물이냐 하는 것부터 해서 온달을 마구간지기로 보는 견해, 고승으로 보는 견해, 몰락한 귀족으로 보는 견해, 하급 귀족으로 보는 견해 등 매우 다양하다.
이렇듯 다양한 온달을 해석하는 것과 그러한 견해를 아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그러한 것보다 우리가 온달을 알고, 느끼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다.
참고 자료
참고 논문
○ 한국교육대학교, 온달설화의 구조와 의미 및 교육적 활용에 관한 연구, 이강문, 1992
○ 연민학지, 1집, 온달전의 현대적 고찰, 윤경수, 1993
○ 한국한문학연구 제 12집, 한국한문학연구회, 「삼국사기열전의 문학성」, 임영택, 1989
○ 한국한문학연구 제 12집, 한국한문학연구회, 「한국문학에 있어 “傳”과 “小說”의 관계양상」, 박희병
○ 한국문학논총 27집, 한국문학회, 온달 설화의 현대적 변용-최인훈작 「온달」과 「온달설화」의 대비적 고찰, 정찬영
○ 한국고전문학회, 한국고전문학연구 19집, <온달전>의 갈등구조와 소설사적 의의, 이상구, 2001
참고 서적
○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임기환 기획, 이기담 지음, 푸른역사출판
  • 가격1,5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6.06.05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334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