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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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거북선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거북선의 탄생
1) 이충무공 전서에 나오는 두 가지 거북선
2) 거북선 제작일지

2. 거북선의 구조

3. 임진왜란때의 거북선

4. 거북선의 화력

5. 거북선의 우수성

6. 거북선에 대한 논란

본문내용

흘수 4∼5자정도이고 80∼90톤의 배수량을 가지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그리 깊지 않은 바다에서도 항해할수 있고 길이 대 너비가 7.8 : 1(왜선은 2.5 : 1)로서 빠른 속도를 보장할 수 있는 선형으로 되여있었다. 게다가 노가 좌우에 10개씩 달려있고 노군이 한 노에 3명씩 총 60명씩(포혈수에 따라 포수 72명, 사수 약간명, 기타 총계 125명) 붙어있어서 돛을 달지 않고도 능히 일정한 속도로(약 7노트)기동할수 있었다. 철물, 무기, 탄약을 아래 선창에 두면 선체의 중량중심이 약 1.4∼1.5메터의 높이에 있었다고 보이므로 선박의 복원성도 대단히 좋았다고 볼수 있다. 정원 125명이면 노군 60명 포수 72명 계132명이므로 전시에는 150명정도 탄 것으로 인정된다.
6. 거북선에 대한 논란
거북선의 철갑설 이외에도 거북선 구조에 대한 논란은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선수의 용머리에서 대포를 쏘았다는 기록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정조대왕때 발간된 이충무공전서에는 용머리의 치수가 길이 133 cm, 내부 폭 93 cm로 나와 있는데 포를 설치하기에는 너무 좁다는 느낌이 든다. 충무공의 장계나 난중일기에는 용의 입으로 현자포를 치켜 쏜다고 되어 있으며 이에 의해 왜장을 사살한 전공도 기록 되어 있는데, 현재 모형과 같이 긴 목에 작은 머리를 가지고는 그 안에서 병사가 현자포를 쏘기에는 무리 인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충무공전서에 거북머리(용머리)에서 유황연기를 뿜어 적을 혼미케 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과연 용머리의 기능이 선수부 포탑에서 유황연기 방출용 굴뚝으로 바뀐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또다른 논란은 현재 각종 모형에 제시된 바와 같이 거북선의 용머리가 길게 위로 솟아 올라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김재근교수의 '우리배의 역사'에서는 임진란 당시 거북선의 용머리는 현재 모형 보다 크고 거북선 선수부에 밀착 되어 있으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다른 논란으로는 거북선의 노역에 관련된 것이다. 최초로 거북선을 연구한 연세대학의 언더우드박사는 거북선 선체 삼판에 노 구멍을 뚫고 서양식 노를 젖는 것으로 거북선 복원도를 지난 1934년 제시한 적이 있으며 우리가 흔히 보는 거북선 복원 모형들이 대게 이를 많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김재근 교수등은 전후 일본에 파견된 사신선의 전개도등을 증거로 거북선도 멍에뺄목위의 상장과 선체 사이에 조선식 노를 걸어 노역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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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07.04
  • 저작시기2006.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7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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