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형법 종류및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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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의 형법 종류및 제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과 훈련도감의 도감선(都監船)이 주로 담당하였다. 한편, 육상교통으로는 역참제(驛站制)에 의해 서울에서 지방 각지로 역로(驛路)가 마련되었고, 역로에는 대략 30리에 역(驛)을 설치하여 역마와 숙박시설을 갖추어 놓고, 공문전달 ·공물수송 및 출장 관리의 편리를 돕도록 하였다. 이때 출장관리는 역마를 이용할 수 있는 마패(馬牌)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교통의 요지, 인가가 적은 곳에 원(院) 또는 관(館)을 설치하였고, 민간인들의 숙박을 위해 주막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원에는 원주(院主)가 있고, 원주전(院主田)이라는 토지를 받아 경비에 충당하였는데 세조 때에 전국에는 1,220개소의 원이 있었다. 또한, 통신시설로서 봉수제(烽燧制)가 운영되었는데,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다른 봉수대에 서로 연락하는 것으로, 각 지방 또는 국경에서의 변보를 서울의 목멱산(木覓山:南山) 봉수대로 알렸다. 신호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로 하여 식별을 용이하게 하였고, 봉수대마다 10명 내외의 봉수군(烽燧軍)을 두었다. 신호 방식은 횃불 하나면 평시에 무사함을, 둘이면 적의 모습이 나타남을, 셋이면 적이 국경에 접근해 옴을, 넷이면 적이 침공해 옴을, 다섯이면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뜻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파발제(擺撥制)를통한 직접통신의 방법이 쓰이기도 하였다. 즉, 변방과 서울을 오가는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을 위하여, 30리 내외에 1참(站)을 설치하여 릴레이식 전달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는 말을 타는 기발(騎撥)과 걸음이 빠른 사람을 통한 보발(步撥)의 방법이 있었다. 교통 ·통신시설은 개항 이후 크게 변모되었다. 교통 ·통신시설은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당시 일반 국민에게는 경외의 존재였는데, 점차 그 편리함을 알게 되었다. 먼저 철도에서는 경인선(京仁線)이 부설되고 이어서 경부선(京釜線) ·경의선(京義線)이 개통되었고,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가 서울에 전차를 부설하여 운행하였다. 통신시설은 청나라에 의해서 서울∼인천과 서울∼의주 간에 전신선이 가설되었고, 이어서정부가 일본과 합작하여 서울∼부산 간에 전신선을 가설하고 전보총국(電報總局)을 설치하여 통신업무를기계화하였다. 전화는 처음에 궁중 안에 먼저 가설되었고 이어서 서울∼인천 간에 시외전화가 개통되었고 뒤이어 서울 시내에 일반 전화가 가설되었다. 독립협회에 의해 계몽운동이 전개되면서 일반 국민들은 근대문물에 대한 각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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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10.11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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