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딸루냐의 민족주의 - 그리고 축구(레알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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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까딸루냐의 민족주의 - 그리고 축구(레알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렷이 분극화 시킨 바스크 지방과는 달리 카탈루냐의 민주 반대파는 스페인 역사에서 전례 없던 협조와 단결의 강도를 섭취했다. 1971년 11월에 정부는 300여
명에 달하는 카탈루냐 지방의 모든 비밀 정치
세력의 대표자들이 모여, 1932년 자치체제의
재수립을 포함한 기본적 공통 문제를 승인한
카탈루냐 총회의 개최를 저지하지 못했다. 스페인 현대사 -강석영- (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
1975년 프랑코 사후 스페인은 1978년 결정된
법에 의해 자치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였다.
1977년 임시로 카탈루냐 자치 협의회가 다시
세워지고 추방되었던 의장인 Josep Tarradellas
가 그해 10월 돌아왔다. 1979년 카탈루냐 자치
주가 허용되어, 그들만의 자치 정부가 재건
되었다. <그림 34: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재건을
기뻐하는 카탈루냐 사람들 >
- 제 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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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카탈루냐의 동향
1. 카탈루냐 ‘국가’ 선포
2005년 10월 1일, 카탈루냐 지방의회가 카탈
루냐를 '국가'로 규정하는 헌장을 가결해 선포
했다. 카탈루냐 의회는 1장에서 '카탈루냐는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는 헌장을 찬성 120 대
반대 15의 압도적 지지로 가결했다. 카탈루냐
지도자인 파스칼 마라갈은 바스크 지방과 카탈루냐
지방의 평화는 오늘날 스페인에서 중요한 2개의
이슈라며 독립을 달성해 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탈루냐 헌장이 발효되려면 중앙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일부 헌법학자들은 이 헌장의 위헌 소지를
지적하고 있고 보수 야당은 국가 분열을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페르난데스 델 라 베가 부총리는 < 그림 35: 카탈루냐 자치 협회
지방의회의 충분한 지지 아래 통과된 헌장은 존중돼야 의장인 파스칼 마라갈 >
한다고 말해 국회에서 카탈루냐 헌장을 승인할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2. 개혁안의 스페인 의회 통과
11월 3일 스페인 의회는 카탈루냐 주 의회를 통과한
개혁안을 카탈루냐 의회의 대표자가 제출했다 . 결국
제1 독회에서 12시간여의 밤샘 격론 끝에 찬성 197,
반대 146으로 카탈루냐의 자율권을 대폭 확대한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독회는 의회에서 법률안을
신중히 다루기 위해 단계적으로 심의하는 제도로,
앞으로 여섯 달 동안의 논의를 거쳐 최종 확정 되면
카탈루냐는 사실상 독립 국가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법안이 카탈루냐 지방에 대해 국가란 명칭을 사용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 제 1 야당인 민중당(PP)
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개혁안이 스페인의 국가적
단일성을 해치고,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야당뿐 아니라 집권 스페인사회주의노동자당(PSOE) < 그림 36: 악수를 하고 있는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이런 민감한 법안이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와 마라갈
스페인 의회에 제출된 것은 사파테로 총리의 공약 때문 카탈루냐 자치 협회 의장 >
이다. 지난해 3월 총선에서 승리하기 몇 달 전,
사파테로는 카탈루냐 당원들에게 자신이 총리가 되면
카탈루냐 지방에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개혁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사파테로는 개혁안을 순화
시키기 위해 그동안 카탈루냐 의원들과 물밑 접촉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혁안은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스페인 헌법을 거스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호세 메나 아과도 육군참모총장은 [카탈루냐가
지금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원한다면 군을 투입해서
라도 막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아과도 총장은
즉각 가택 연금 되었지만 그 파장은 간단치 않다.
카탈루냐의 개혁안이 스페인 의회를 최종 통과하여 < 그림 37: 호세 메나 아과도
카탈루냐가 실질적인 ‘국가’의 지위를 갖게 될지 앞으로 육군 참모 총장 >
계속 지켜볼 일이다.
- 제 7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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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 더비’는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다. 카타루냐인들이 마드리드의 중앙 정부에게 받았던 역사적인 억압과 설움, 그리고 그들의 자치에 대한 열정이 FC 바르셀로나에 깃들어 있고, 그것이 엘 클라시코 더비를 통해서 분출하고 폭발하는 것이다. 마드리드의 폭정에 고난을 겪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들은 스페인 내란으로 목숨을 잃었고, 조국의 언어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이제 민주주의가 실현되면거 카탈루냐인들에게는 불만을 터트릴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 FC 바르셀로나가 그들의 기분을 대신해주고, 풀어주는 구심점이 되었다. 카탈루냐인들은 자신들이 수백년 동안 지속된 마드리드와 카스티야의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 그림 38: 2006년 5월 18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FC Barcelona >
2006년 5월 18일, FC 바르셀로나는 아스날을 2-1로 제압하고 통산 2번째로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우승에 감격한 선수들은 하나둘씩 자기 국가의 국기를 몸에 두르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FC 바르셀로나라는 팀을 위해 싸웠던 만큼, 우승을 하고 난 이후에는 국기를 몸에 두름으로서 자신의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르케스는 멕시코의 국기를, 에투는 카메룬의 국기를 두르고 나타나는 등 여러 선수들이 국기를 망토 두르듯이 걸쳤다. 하지만 스페인 팀인 FC 바르셀로나 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스페인 국기를 걸친 선수는 없었다. 그들은 카탈루냐의 국기를 두르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관중석에도 마찬가지였다. 관중석에서 휘날리는 깃발 그 어디에도 스페인 국기는 없었다. 오직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들어간 카탈루냐 국기만이 챔피언스 경기가 열린 생드니 구장에 나부끼고 있었다. 적어도 2006년 5월 18일의 생드니 구장엔 ‘스페인’ 이라는 국가는 없었다. 그곳에는 오로지 그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카탈루냐’라는 국가만이 있을 뿐이었다.
  • 가격3,000
  • 페이지수32페이지
  • 등록일2007.06.02
  • 저작시기2006.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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