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대제(Yekaterina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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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카테리나 대제(Yekaterina 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예카테리나 대제의 생애

Ⅲ. 예카테리나 대제의 주변인물
1. 예카테리나의 애인
2. 예카테리나의 가족

Ⅳ. 예카테리나 대제의 업적
1. 예카테리나 대제 이전의 러시아 상황
2. 대외적 측면
3. 대내적 측면

Ⅴ. 실책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이 반란이 있은 후에 지방 귀족들의 행정력을 강화했으며 변방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권을 늘렸다. 결과적으로 농노제를 더욱 확고하게 구축하려 한 것이다(데보라 G.펠더, 1998: 191).
이에 대해 에리히 뵈메는 『예카테리나 대제 회고록』에서 ‘1796년 11월 6일에 일어난 뇌졸중발작이 예카테리나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때 사람들은 그녀의 통치기간동안 휘황찬란한 광채에 마음을 뺏겨서 러시아가 광포한 무질서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 농노들의 노예화가 이 시절에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을 잊었다.’라고 말했다(바르바라 지히터만, 2002: 102).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예카테리나 2세의 다른 실책은 그녀의 남성편력이다. 사실 예카테리나 2세는 복잡한 애정생활로 잘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연인들에게 막대한 재화를 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연인들에게 제공한 금액은 현금만 1억 루블에 이르렀고, 그 밖에 그들에게 나누어준 저택과 농지, 금은보화 따위를 모두 따지면 꽤 방탕한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막대한 재화 중 절반 정도를 포템킨 공작에게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김남석, 1997, 115-116).
예카테리나 2세를 보는 부정적 관점은 대부분 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재정의 낭비 외에도 세인들의 관심을 그녀의 애정생활에 집중시킴으로써 그녀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예카테리나 2세는 음탕한 여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Ⅵ. 결론
예카테리나 2세는 정치적 수완이 능란한 여인이었다. 군부와 동맹하고 러시아 정교회와 연합해 남편을 축출하고 러시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유도했다. 그리고 남다른 열정으로 러시아를 서구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러시아의 서구화를 통해 퇴폐하고 고루한 러시아를 근대 러시아로 변모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야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워낙 뒤떨어진 러시아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또한 그녀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군주였다. 러시아 농민을 위해 개혁을 시도했으나 농민들이 봉기하자 이들을 몰살시키고 무수한 농민들의 봉기를 억압했다. 결국 농민봉기를 억압하다가 전통적인 러시아 귀족의 이익에 손을 들어주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그녀는 재임 후기에 대중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임용순, 2001: 71-72).
또한 어떤 이는 색을 탐한 여왕에 예카테리나 2세의 이름을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의 공공연히 알려진 애인만 약 20명에 달하고 세 명의 자녀도 모두 애인의 아이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황제’다운 애정생활을 했음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색을 탐한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되며, 그녀의 적극적 애정생활은 그녀가 ‘대제’가 될 수 있었던 업적들을 가리고 있다. 김남석의 『세계를 움직인 악녀들의 신화』에서 예카테리나 2세는 침실을 지배한 여황제이며 전 생애를 음모와 살인, 애욕으로 탕진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녀에 대한 설명 내내 애정생활만을 들먹이고 있다.
그녀는 너무나 ‘황제’다운 사람이다. 권력에의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다만, 너무나 황제다웠던 탓에 농민들을 탄압하고 그들의 비참한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농노들의 생활상이 비참하다고 생각 정도는 했을 것이라 추측되지만 그녀는 황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농민을 더 강하게 짓누르는 선택을 하고 만다.
결국 그녀를 악녀다. 여자이면서 많은 남성들을 연인으로 삼았고 남자들을 제치고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가장 그녀를 악녀이게 하는 것은 그녀가 남성들을 제친 승자였다는 점이다. 그녀는 여성이면서 패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대제임에도 과소평가되고 음탕함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예카테리나 2세는 강력한 절대군주이며, 후대에 변화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대제이다. 근본적으로 1825년 12월 봉기와 1917년 러시아혁명의 씨앗은 그녀가 농부들을 홀대하고 귀족계급에 실용적인 지원을 하며 새로운 러시아 지식계급을 출현시키려고 노력하던 그때에 이미 심어진 것이다. 그녀의 통치형태인 ‘개화된 전제정치’는 지속적 영향력을 갖는 세계적 강국을 만들어 냈다(데보라 G.펠더, 1998: 191-192).
농노의 삶의 힘겨움을 덜어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했다는 점은 그녀의 실정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예카테리나 1세, 안나 여제, 엘리자베타 여제 등 이전의 여제들과는 달리 실권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임 초기에 계획했던 내정 개혁이 실패했어도 그녀는 죽을 때까지 러시아의 차르 차르는 로마노프왕조시절,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황제, 여제 등으로 최고 권력자를 지칭하였다.
였다. 예카테리나 2세는 대제이며 그녀의 재임기 동안 러시아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했고 빛나는 나라였다. 그것이 농노의 눈물을 짓밟고 이룬 것이라 하더라도 재임기 동안이 러시아의 번영기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현재의 세계 주요국으로서의 러시아가 있는 것은 예카테리나 2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남석. (1997). 「세계를 움직인 악녀들의 신화」. 서울: 선녀와나무꾼.
임용순. (2001). 「역사를 바꾼 여성 통치자들」. 서울: 나무와숲.
데보라 G.펠더; 송정희 옮김. (1998). 「세계사를 바꾼 여성들」. 서울: 에디터.
레슬리 멕기어; 박순황 옮김. (1993). 「인물로 읽는 세계사10 예카테리나」. 서울: 대현출판사.
바르바라 지히터만; 안인희 옮김. (2002). 「클라시커50 여성」. 서울: 해냄.
비전21세기. (1997). 「다이애나에서 황진이까지」. 서울: 숨은책.
인터넷자료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6&dir_id=60101&docid=116840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3&dir_id=307&docid=667355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do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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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14
  • 저작시기2007.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4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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