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우리 금속활자' 직지심경'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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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1. 구텐베르크란?
2. 인쇄기의 발명
3.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영향
4. 구텐베르크가 직지심경보다 더 인정받는 이유
5. 구텐베르크 측의 결론

Ⅲ. 우리 금속활자(직지심경)
1. 고려의 금속활자와 역사
2. 우리의 금속활자의 제작방법과 영향력
3. 직지심경의 저자
4. 직지심경의 제목
5. 직지심경의 내용
6.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찍혔다는 증거
7. 현재의 직지심경
8. 우리의 금속활자는 우수하지 않은가

Ⅳ. 최종결론

본문내용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학자들의 억지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1440년에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세계심판》보다도 63년 앞섰다
7. 현재의 직지심경
2001년 6월 승정원일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8. 우리의 금속활자는 우수하지 않은가?(결론)
우리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에게 영광을 뺏기었다. 그 이유는 '사회적 영향력' 내지는 파급효과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그걸 충분히 이용해 먹지 못하면 큰 의미가 없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이유는, 우선 그걸 통해 루터의 성경이 인쇄됨으로써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사회변혁의 원동력이 되었고, 책을 손쉽게 보급할 수 있게 되어 지식의 보급,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사회발전을 추동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이후 유럽사회의 변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간주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사용범위가 제한된 사치품의 성격이 있었다. 고려의 금속활자도 불경이나 중요 서적을 국가가 간행하는 경우에나 사용되었고, 조선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금속활자는 '대량출판'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중들의 수요를 위한 책을 편찬하는 데에 금속활자가 사용되지는 않았고, 보존하기 위한 책을 출판하는 데에 주로 쓰였다. 이는 금속활자를 통한 인쇄가 대중들에게 큰 파급효과를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는데 한국의 금속활자는 이후 한국의 사회변혁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이것이 최초의 금속활자가 한국에서 발명되었음에도 그 공로는 구텐베르크에게 빼앗긴 이유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구텐베르크가 사회에 한 공헌이 작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고려의 금속활자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과학의 우수성을 논하고 싶다는 것이다.
첫째, 고려시대에 금속활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수요에 의한 필요조건과 관련 기술의 발달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목활자의 단점을 대체하기 위해 다른 활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것을 금속활자로 대체하는 창의성을 얕보아 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금속 주조기술, 종이 생산, 인쇄용 잉크(먹)의 발달이 수반되어야지만 금속활자가 완성될 수 있었다. 해동통보(1102), 주전도감(1097) 등의 사례는 고려 때에 금속 주조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는 종이의 원료가 되었던 닥나무 또한 튼튼하고 질기며 먹을 잘 받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종이 생산에 있어서 선진국이었다. 또한 기름 성분이 들어가야 하는 금속활자에 대해 당시 고려의 먹이 잘 어울렸다는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과학을 발달시켜왔으며 최고의 금속활자로 직지심경을 제작하였다. 우리는 현재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창의성과 과학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Ⅳ. 최종결론
구텐베르크와 금속활자를 두고 어느 것이 뛰어 나느냐 대한 본 재판관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어쩌면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구텐베르크와 직지심경 모두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본 재판관은 한국인이다. 그래서 직지심경을 뛰어나다고 감히 결론을 내리지는 않겠다.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직지심경에 손을 들어주고자 하는 게 본 재판관의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는 직지심경이 더 빠른 시기에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가 더 인정받는 느낌이 드는 게 현실인 것 같다. 본 재판관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여 우리 직지심경의 위대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바이다. 구텐베르크가 더 뛰어나다는 것에 한국인들이 말하기를 어찌 1455년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서가 1377년 간행된 금속 활자본(직지)보다 더 뛰어나겠는가? 예로부터 고려의 금속활자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주조되어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재 세계문화사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공인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겠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 모두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제 본 재판관은 직지심경이 우수하다는 본격적인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 활자본 직지는 서구 문명사적 관점이 아니라 정신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금속활자는 산업과는 별개로 정신적인 차원에서 주조된 정신문화적인 측면이 강하다. 직지는 지극한 정성, 욕망의 절제로서의 보시, 경건함, 기원, 자비 그리고 깨달음 등의 정신문화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량생산이라는 근현대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직지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직지는 금속활자라는 진품성과 불교문화의 분위기(aura)가 그 정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문명사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고려의 금속활자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려의 금속활자의 정신은 다량생산의 상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량생산과 정신문화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고려의 금속활자가 정신문화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은 “직지”의 뜻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곧바로 가르쳐 주고 정확하게 깨닫도록 한다.’라는 주제가 곧 직지의 정신이다.
이러한 근거로서 본 재판관은 한국인으로가 아닌 객관적인 입장에서 구텐베르크와 직지심경 두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두고서 우리의 금속활자인 직지심경이 더 우수하다고 판시하는 바이다.
*목 차
Ⅰ. 서론
Ⅱ.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1. 구텐베르크란?
2. 인쇄기의 발명
3.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영향
4. 구텐베르크가 직지심경보다 더 인정받는 이유
5. 구텐베르크 측의 결론
Ⅲ. 우리 금속활자(직지심경)
1. 고려의 금속활자와 역사
2. 우리의 금속활자의 제작방법과 영향력
3. 직지심경의 저자
4. 직지심경의 제목
5. 직지심경의 내용
6.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찍혔다는 증거
7. 현재의 직지심경
8. 우리의 금속활자는 우수하지 않은가
Ⅳ. 최종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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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13
  • 저작시기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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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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