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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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 기능주의
2. 기계미학의 확산에 대해서 - 초고층건물을 중심으로
3. 기계적 복제시대의 예술, 대량생산시대의 디자인

결론

본문내용

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주택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나중에 국제주의 건축(internationalism)이라는 사조를 타고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나라에 항상 적용할 수 있는 건축을 표방한 국제주의 건축은 가히 건축의 에스페란토어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주택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나라에 이러한 경향이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주택들이 만들어져 나갔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주택들은 좁게는 서울과 대전, 광주, 부산 어디를 가도 지역적 특성을 볼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고, 넓게는 다른 나라의 주택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동일한 감각으로 대할 수 있는 주택들이 흔히 발견되는 연유이다.
3. 기계적 복제시대의 예술, 대량생산시대의 디자인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만화영화가 한 편 있다.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겠지만 <플란다스의 개>라는 제목의 만화영화는 그 주제가와 더불어, 특히 슬픈 마지막 장면은 많은 어린이들과 가족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화가의 꿈을 꾸는 주인공 소년 네로가 가난으로 인하여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는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의 공간 배경인 벨기에 플란다스 지방의 ‘성모대성당’에 있는 두 작품은 모두 이야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것은 줄거리 내내 주인공 네로가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그림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튼 속에 감춰 놓아 ‘금화 한 닢’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강림>은 네로에게는 언제나 이룰 수 없는 소원으로 남아 있다가 죽기 직전 마음씨 좋은 성당지기 아저씨의 도움으로 드디어 소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소원을 이룬 네로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이 성당 안에서 천장의 <성모승천>을 바라보며 조용히 죽어가게 된다. 기계적 복제가 불가능했던 그 시절, 화가의 그림은 이처럼 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오리지널’이었으며, 이는 ‘금화 한 닢’이 있는 자들에게만 향유될 수 있는 ‘상위 문화(high culture)’였다. 주로 왕가나 귀족의 초상화나 성화 등이 주가 되었던 그 시대의 그림들은 왕궁이나 성당 안에 신비스럽게 감추어져 있었으며, <플란다스의 개>의 <그리스도의 강림>처럼 ‘금화 한 닢’이 있는 선택받은 자들 앞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하였다. 그럼으로써 그 그림들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오리지낼리티’를 자랑하고, 그 대상에 깃든 작가의 혼(魂)을 뿜어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이제 약 400년이 지난 현재, 17세기 천재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루벤스의 두 그림은 주변의 책을 통하여, 혹은 인터넷을 통하여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저명한 독일의 미학자인 벤야민이 지적한 대로, 19세기 중반 사진기의 발명과 그 이후 발전을 지속한 복사술의 발달로 회화 작품의 유일무이성, 그리고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대신, 커튼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작품들은 방안에서, 도서관에서, 심지어는 지하철에서도 감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동시에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이들에 의해 감상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지의 사진복사술은 이처럼 상위 문화를 무일푼 대중에게까지 전파하여 ‘예술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디자인의 경우는 그 존재 이유부터가 ‘민주적’이다. 그것은 즉, ‘원작’과 ‘복사판’이 존재하는 순수미술과는 달리 디자인은 처음부터 ‘원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기계적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분야의 탄생은 18세기 말 기계의 등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초기 디자이너의 역할은 기계생산을 해내는 데에 적합한 형태를 고안해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기계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장식들은 제거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무장식의 미가 합리주의와 결합하여 당대의 지배적 미학, 즉 소위 ‘기계미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단시간에 정확히 똑같은 물건들을 쏟아내는 기계에 대한 20세기 초반의 환상은 거의 종교적 믿음에 가까웠다. 르 코르뷔제의 그 유명한 경구인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표현은 당대 기계에 대한 믿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초기의 제품 디자이너들이 장식을 제거하고 기하학적 선들로 정리함으로써 기계생산에 적합하도록 노력한 것처럼, 모더니즘의 건축가들은 건축 또한 대량생산의 논리에 적합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르 코르뷔제의 ‘도미노 시스템’은 그 대표적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즉 ‘나만을 위한 주택’이 아니라 기계로 대량생산 가능한 시장의 제품 같은 주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처럼 대량생산의 미학은 초기 제품 디자인에서 출발하여 건축으로 그리고 도시로 확장해 나아갔다.
결론
기능주의는 건축의 모든 부분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공업시대에 적합하도록 많은 장식들을 제거하여 대량생산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게 되었고, 많은 하늘로 닿고자 하는 욕망에 점차 더욱더 높은 건물들을 지으려고 노력하였다. 기능주의의 다른 면들보다 기계적인 면이 많이 부곽 되어 지고 있다. 디자인이 다양하지 못하고 획일하다는 면에서 이 부분을 비판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계적인 면에서의 기능주의의 발달로 인해 현재의 초고층 건물이 세워 질수 있게 되었고, 주택도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럼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집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늘에 닿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하였을 진 몰라도 초고층 건물과 주택의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다는 점에서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설계되어야 한다는 기능주의의 이념에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근대 건축사의 한 부분으로 기능주의를 평가한다면 실패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성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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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8.01.04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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