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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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고려청자의 역사
• 11세기 전반
• 11세기 후반, 12세기 초
2. 고려청자의 특징
3. 고려청자의 문양
• 모란문
• 당초문
• 장식기법
• 고려청자의 제작과정
4. 고려청자의 종류
• 순청자
• 상감청자(象嵌靑磁)
• 퇴화무늬청자[堆花紋靑磁(퇴화문청자)
• 화청자(畵靑磁)
• 진사청자(辰砂靑磁)
• 화금청자(畵金靑磁)
• 명문청자(銘文靑磁)
5. 고려청자의 쇠퇴
6. 중국청자와의 차이점

Ⅲ. 結論

<참고문헌>

본문내용

택(色澤)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였다. 이때의 비색은 반실투성의 빙렬(氷裂)이 거의 없는 우수한 비색유약이며 태토도 밝은 회색으로 치밀하게 자화(磁化)된 우수한 상태였다. 이어 기형, 문양, 변조수법 등도 중국의 영향이 거의 고려적으로 변형·발전되어 독특한 세련을 보여 순청자로서 청자 발달사상 첫 번째 정점에 도달한다.
고려청자는 12세기 중엽까지 또 다른 면으로 진전하여 유약은 조금씩 더 밝아지고, 새롭게 정제된 음각 양각분양이 발전을 거듭하여 보다 완숙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미 10세기경부터 시도되기 시작한 상감기법이 12세기 전반 경부터 고려자기에 문양을 나타내는 새롭고 본격적인 기법으로 등장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12세기 중엽에 가까워 갈수록 유약이 맑고 투명해진 위에, 상감의 기법과 문양, 문양의 포치 등이 최고로 발달되어, 독특하게 세련된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1159년에 죽은 '문공유(文公裕)'의 지석(誌石)과 함께 출토된 청자상감보상당초문대접(靑磁象嵌寶相唐草文大 )은 상감 최성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당시의 상감청자는 상감되는 부위에 따라 여러 가지 문양이 새롭게 고안되고 이들 문양이 적절히 포치되어 하나의 일정하고 통일된 구도로 기형과 문양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상감청자의 세련은 고려청자 발달사상 두 번째의 정점을 이룩한 것이다.
11세기말∼12세기에는 순청자와 상감청자류 외에도 10세기경부터 나타난 철화(鐵畵)청자가 더욱 세련을 보였고 퇴화문(堆花文)청자, 철채(鐵彩), 철채백퇴화(鐵彩白堆花), 철채백상감, 철유(鐵釉), 철유백상감, 백자, 백자상감, 백자철화문, 화금청자(畵金靑磁), 진사설채(辰砂設彩), 연리문(練理文)자기 등 다종다양한 지기들이 화려한 꽃을 피웠다.
고려 인종(仁宗), 의종대(毅宗代)를 정점으로 발전된 고려자기문화는 13세기 초 몽고의 침입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타락하기 시작하였으며 충렬왕(忠烈王) 이후 원(元)을 통한 중동, 서방문화의 유입으로 일부 기형과 문양, 번조수법 등에 조금씩 변화를 보인 것도 있다.
그러나 13새기 말경부터는, 12세기에 많은 종류의 도자기가 화려한 꽃을 피웠던 상태에서 그 중 많은 꽃이 모두 시들고 주로 상감청자와 순청자류만이 생산되었으며 14세기 후반부터 질과 기형, 문양, 번조수법이 극도로 퇴보된 상태에서 조선왕조 분청사기의 모체가 되면서 조선왕조로 이월된다.
고려자기는 한국의 전통적인 토속신앙과 불교, 노장(老莊), 풍수도참사상 등을 배경으로 청자가 주로 생산되고 세련되었다.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 맑고 명랑한 비색, 조각도의 힘찬 선을 지닌 기물과 일치된 상감문양, 우아하고 유려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세계 최초로 도자기에 산화동(酸化銅)으로 선홍(鮮紅)의 발색을 성공시킨 기술적 우수성 등이 그 특색이자 아름다움이며 자연의 향취를 언제나 지니고 있다
Ⅲ. 結論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결과 고려의 청자는 초기의 햇무리굽계 청자와 綠靑磁를 거쳐 본격적으로 11세기 전반에 생산이 활발해지고 12세기에는 그 절정기를 지나쳐온 것까지 알아보았으면 청자상감의 문양을 특히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짧게 요약해보면 10세기부터 12세기 초기까지의 陰陽刻紋樣에서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12세기 전반기와 같은 세련된 청자상각문양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12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寫實的 문양이 樣式的인 문양으로 바뀌며 문양의 구성양식은 단순한 배치에서 여러 문양을 복합적으로 구성하여 배치하는 양상으로 바뀐다. 13세기로 넘어가면 面 중심의 상감이문양식에서 線 중심의 더욱 복잡한 구성을 가진 양식이 된다. 14세기에 이르러 문양은 아주 간결화되거나 없어지기 시작한다. 대접의 紋樣帶도 斜線이나 雙線으로 바뀐다. 문양의 표현이 대담해지고 간결화되어 드디어 다음의 도자양식인 조선시대 粉靑의 脫俗한 표현양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모든 표현양식을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우리 民施의 조형적 표현용구를 하나의 계통으로 이끌어 온 傳統的 美意識의 背景이 좌우함을 알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檀君崇拜의 전통적인 토속신앙과 불교노장풍수도참사상 등을 배경으로 청자를 주로 생산하고 세련시켰다. 12세기 전반에 비색순청자로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특색을 나타냈으며, 12세기 중엽에는 유약을 맑게 발전시켜 청자상감으로서 다시 한번 꽃을 피웠다.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고 명랑한 비색, 조각도의 힘찬 선을 지니고 기물과 일체가 된 시적인 운치가 있는 상감문양, 유연하고 유려한 선 등 우리나라 도자기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언제인가 박물관 가서 봤을때도 우리나라 도자기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고려청자였다. 위에서 언급한 문양들도 물론 모두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이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푸르른 그 빛깔이다. 고려청자의 翡色이라고 불리는 그 색은 마치 비취옥과 같은 빛깔로 완전히 푸르지도 않고 풀색도 아닌 청록색 계통으로 보는 이를 집중시키게 한다. 중국의 두껍고 짙푸른 색의 청자와는 달리 맑고 명쾌한 색이 사람의 감탄을 자아낸다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많이 들어왔던 소리였다. 그 색에는 마치 도공의 영혼이 담겨 있어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청명한 색깔을 지켜주는 것 같다. 고려 시대의 청자의 빛깔은 지금 현대의 기술로는 만들수 없다고 한다. 그 만큼 그 옛날 도공들의 도자기 공예기술은 그야말로 세계최고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듯 싶다. 고려시대때 왕실과 같은 특정 계층의 특수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도자기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 일상적인 생활용구로 제작한 도자기까지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도자공예 문화유산은 한국인의 미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림과학원, 『韓國美術史의 현황』, 도서출판예경, 1992
김영원안승모한정희 외 지음, 『박물관 밖의 문화유산 산책 2』, 녹두, 1998
송석상, 이강승 편저, 『그림으로 배우는 우리의 문화유산』, 학연문화사, 1996
윤용이유홍준이태호, 『韓國美術史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학고재, 1997
윤용이,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학고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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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5.05
  • 저작시기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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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6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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