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네비우스의 생애
2.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기원
3. 선교정책의 신․구 방법의 차이
1) 옛 방법(the old Methods)
2) 새로운 방법(the New Methods)
4.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채택 배경
5.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원리와 평가
1) 사경회 제도(Bible Class System)
2) 자급(Self-Supporting)
3) 자전(Self-Propagation)
4) 자치(Self-Governing)
Ⅲ. 결론
Ⅱ. 본론
1. 네비우스의 생애
2.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기원
3. 선교정책의 신․구 방법의 차이
1) 옛 방법(the old Methods)
2) 새로운 방법(the New Methods)
4.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채택 배경
5.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원리와 평가
1) 사경회 제도(Bible Class System)
2) 자급(Self-Supporting)
3) 자전(Self-Propagation)
4) 자치(Self-Governing)
Ⅲ. 결론
본문내용
있어서도 동일하다. 우리는 세례시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얼마나 전도하였는가를 물었다. 여인들도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하러 나아갔으며, 남자들도 기도회인도, 개인기도, 가정예배 등을 인도한다.
네비우스 방법이 채택된 후 교회가 급성장함에 따라 교회 재정문제, 전도사업등을 다 개체교회가 책임을 지게 되어 자연적으로 모든 일들을 자치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초기에 있어서 자립-행정제도를 수행할 만한 교회 조직이 없었으므로 선교부는 1891년에 다음과 같은 규칙과 내규를 재정하였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배정근, “한국의 초기 기독교와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대한 고찰”, p.51. “재인용”
저희는 하나님께서 안식일 예배를 지키는 신자로 구성하며 가능한 한 각 지회는 지회 회원에 의해서 선택된 지도자 혹은 담당한 선교사에 의해 임명된 지도자를 가질 것이며 이들의 의무는 조사 부재시 안식일 예배를 인도한다. 또 각 지회에는 완전한 교회 조직이 준비되어야 하며 장로와 집사는 장로 제도에 규정된 직원이며 목사는 정치제도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한국 교회의 실제적 치리기관인 노회는 1907년 9월에 선교사 33인과 한국인 장로 36인으로 처음 조직되었고, 마펫(Samuel A. Moffett) 목사가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1915년 제4회 총회 시에 비로소 김필수 목사가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한인 총회장이 뽑힘으로써 장로교는 적어도 인사적으로는 자주치리를 달성하였다.
일제에 지배당하고 있던 한국인에게 이 자주 치리적 방법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방법은 일제시에 자력유지와 자진전도를 성공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을 것이다. 참으로 네비우스 선교 방법에 함축된 근본정신인 독립정신은 교회적, 국가적 양면에서 모두 한국인에게 족히 인정될 만한 것이었다. 당시 장로교는 주한 4개 선교부가 연합하여 한안 교역자 양성을 위하여 1901년에 평양에 평양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런데 그 해의 수세자는 벌써 5,118명 이 되었고 신자수는 수세자를 합하여 21,126명이나 되었다.
이처럼 선교사들이 지도자 양성에 소홀하였기 때문에 곧 신학 교육의 부족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자주치리를 잘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하였다. 그리고 “자주치리”( Self-Governing)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교회 안에 계급조직이 생겨났는데 이 조직은 종종 교만한 임원진에 의해 좌우되었다. 교회 조직과 예배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교회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별개의 공동체가 되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으로 흐르게 된 것이 문제라 하겠다.
Ⅲ. 결론
이상에 살펴 본 네비우스 선교 방법은 한국 선교에 지대한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선교 방법의 적용에 있어서 단점도 있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장점과 단점을 김남식 박사는 이렇게 남기도 있다. 김남식, 「네비우스 선교방법」(서울: 성광문화사, 1995), pp. 172-174.
a. 장점
첫째,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역할 증대이다.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이 교회전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의 기능을 증대시키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헌신하고, 교회 밖에서도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점이다.
둘째, 성경에의 관심이다. 한국 교회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사경회 제도가 정착되고. 성경 중심의 교회(Bible Centered Church)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셋째, 독립 정신의 함양이다. 자급하는 자립교회로서의 한국 교회 정립에 네비우스의 ‘삼자원리’가 크게 작용하였다.
넷째, 한국 교회의 자존의식을 고양시켰다. 한국 교회의 존재 의의에 대한 바른 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다섯째, 토착적 선교 원리를 정립시켰다. 현지문화에의 동화로서의 토착이 아니라 성경적 원리의 적용이란 면에서 새로운 모델의 제시였다.
b. 단점
첫째, 신학자와 학자 양성에 미급하였다. 한국 교회의 학적 성장을 위하여 신학자 양성에 유의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둘째, 교회의 일치에 부족하였다. 경제적으로 자급을 강조하다 보니 개교회 주의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경제적인 면에서 너무 집착하게 하였다. 자급이라는 경제적 자립의 강조는 물질주의에 빠지는 위험을 초래케 한다. 물질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먼저 강조되는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들이 한국 교회 성장에 대한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공헌을 지워 버리거나 약화시킬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하튼 처음부터 한국 교회는 재정 자립을 이룩한 교회로 시작했고, 조직적인 성경공부가 이루어졌으며 선교사와 사역자 뿐 아니라 초신자들도 열심히 전도했다. 1904-7년에 일어난 대부흥은 성경공부와 기도 생활에서 얻게 된 선물이다.
이러한 모든 열매는 사실 선교사들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네비우스의 선교 방법을 따라 성경강조와 더불어 선교지 분담 정책이 더하여져 선교사들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위에 언급된 공과를 근거로, 그리스도의 빚진자 되어 뜨거운 선교 열정과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의 일군 양성과 일관성 있는 선교 정책, 전문화된 선교 전략을 수립하는 한국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네비우스 방법론만이 아니라 그 정신과 원리를 오늘날에 다시금 되새김으로 원리적, 본질적으로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고 감사와 찬양의 마음으로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다.
『참고문헌』
곽안련.『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 박용구김춘섭 옮김,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94.
김남식. 『네비우스 선교방법』. 서울: 성광문화사, 1995.
민경배. 『韓國基督敎會史』.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김남식. “네비우스 선교방법 연구”. 「신학지남」1985년 가을호.
김주범. “네비우스 선교방법이 한국장로교 선교정책에 미친 영향”. 안양대학교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배정근. “한국의 초기 기독교와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대한 고찰”.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강병도. 『교회사 대사전Ⅰ』. 서울: 기독지혜사, 1994.
네비우스 방법이 채택된 후 교회가 급성장함에 따라 교회 재정문제, 전도사업등을 다 개체교회가 책임을 지게 되어 자연적으로 모든 일들을 자치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초기에 있어서 자립-행정제도를 수행할 만한 교회 조직이 없었으므로 선교부는 1891년에 다음과 같은 규칙과 내규를 재정하였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배정근, “한국의 초기 기독교와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대한 고찰”, p.51. “재인용”
저희는 하나님께서 안식일 예배를 지키는 신자로 구성하며 가능한 한 각 지회는 지회 회원에 의해서 선택된 지도자 혹은 담당한 선교사에 의해 임명된 지도자를 가질 것이며 이들의 의무는 조사 부재시 안식일 예배를 인도한다. 또 각 지회에는 완전한 교회 조직이 준비되어야 하며 장로와 집사는 장로 제도에 규정된 직원이며 목사는 정치제도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한국 교회의 실제적 치리기관인 노회는 1907년 9월에 선교사 33인과 한국인 장로 36인으로 처음 조직되었고, 마펫(Samuel A. Moffett) 목사가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1915년 제4회 총회 시에 비로소 김필수 목사가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한인 총회장이 뽑힘으로써 장로교는 적어도 인사적으로는 자주치리를 달성하였다.
일제에 지배당하고 있던 한국인에게 이 자주 치리적 방법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방법은 일제시에 자력유지와 자진전도를 성공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을 것이다. 참으로 네비우스 선교 방법에 함축된 근본정신인 독립정신은 교회적, 국가적 양면에서 모두 한국인에게 족히 인정될 만한 것이었다. 당시 장로교는 주한 4개 선교부가 연합하여 한안 교역자 양성을 위하여 1901년에 평양에 평양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런데 그 해의 수세자는 벌써 5,118명 이 되었고 신자수는 수세자를 합하여 21,126명이나 되었다.
이처럼 선교사들이 지도자 양성에 소홀하였기 때문에 곧 신학 교육의 부족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자주치리를 잘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하였다. 그리고 “자주치리”( Self-Governing)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교회 안에 계급조직이 생겨났는데 이 조직은 종종 교만한 임원진에 의해 좌우되었다. 교회 조직과 예배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교회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별개의 공동체가 되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으로 흐르게 된 것이 문제라 하겠다.
Ⅲ. 결론
이상에 살펴 본 네비우스 선교 방법은 한국 선교에 지대한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선교 방법의 적용에 있어서 단점도 있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장점과 단점을 김남식 박사는 이렇게 남기도 있다. 김남식, 「네비우스 선교방법」(서울: 성광문화사, 1995), pp. 172-174.
a. 장점
첫째,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역할 증대이다.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이 교회전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의 기능을 증대시키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헌신하고, 교회 밖에서도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점이다.
둘째, 성경에의 관심이다. 한국 교회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사경회 제도가 정착되고. 성경 중심의 교회(Bible Centered Church)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셋째, 독립 정신의 함양이다. 자급하는 자립교회로서의 한국 교회 정립에 네비우스의 ‘삼자원리’가 크게 작용하였다.
넷째, 한국 교회의 자존의식을 고양시켰다. 한국 교회의 존재 의의에 대한 바른 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다섯째, 토착적 선교 원리를 정립시켰다. 현지문화에의 동화로서의 토착이 아니라 성경적 원리의 적용이란 면에서 새로운 모델의 제시였다.
b. 단점
첫째, 신학자와 학자 양성에 미급하였다. 한국 교회의 학적 성장을 위하여 신학자 양성에 유의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둘째, 교회의 일치에 부족하였다. 경제적으로 자급을 강조하다 보니 개교회 주의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경제적인 면에서 너무 집착하게 하였다. 자급이라는 경제적 자립의 강조는 물질주의에 빠지는 위험을 초래케 한다. 물질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먼저 강조되는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들이 한국 교회 성장에 대한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공헌을 지워 버리거나 약화시킬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하튼 처음부터 한국 교회는 재정 자립을 이룩한 교회로 시작했고, 조직적인 성경공부가 이루어졌으며 선교사와 사역자 뿐 아니라 초신자들도 열심히 전도했다. 1904-7년에 일어난 대부흥은 성경공부와 기도 생활에서 얻게 된 선물이다.
이러한 모든 열매는 사실 선교사들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네비우스의 선교 방법을 따라 성경강조와 더불어 선교지 분담 정책이 더하여져 선교사들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위에 언급된 공과를 근거로, 그리스도의 빚진자 되어 뜨거운 선교 열정과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의 일군 양성과 일관성 있는 선교 정책, 전문화된 선교 전략을 수립하는 한국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네비우스 방법론만이 아니라 그 정신과 원리를 오늘날에 다시금 되새김으로 원리적, 본질적으로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고 감사와 찬양의 마음으로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다.
『참고문헌』
곽안련.『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 박용구김춘섭 옮김,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94.
김남식. 『네비우스 선교방법』. 서울: 성광문화사, 1995.
민경배. 『韓國基督敎會史』.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김남식. “네비우스 선교방법 연구”. 「신학지남」1985년 가을호.
김주범. “네비우스 선교방법이 한국장로교 선교정책에 미친 영향”. 안양대학교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배정근. “한국의 초기 기독교와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대한 고찰”.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강병도. 『교회사 대사전Ⅰ』. 서울: 기독지혜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