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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앙아시아][한인][중앙아시아 한인][한인이주정책][한인이주경로]중앙아시아의 범위와 자연, 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 한인이주정책, 한인이주경로와 과정, 중앙아시아 한인의 생활과 토착문화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중앙아시아의 범위

Ⅲ. 중앙아시아의 자연

Ⅳ. 중앙아시아의 한인 역사

Ⅴ. 중앙아시아의 한인이주와 정책

Ⅵ. 구 소련의 민족정책과 언어정책

Ⅶ. 중앙아시아의 한인 이주경로와 과정

Ⅷ. 중앙아시아의 한인 생활과 토착문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는 될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18만이라는 이주민 수를 감안하면 이 희생자수의 비중이 얼마나 높은 지 짐작할 수 있다. 한인들의 희생은 단지 생명과 재산의 손상에만 그친 것이 아니고 한인들의 심리에 뿌리깊은 상처를 남겨놓았다. 1937년 강제이주는 한인들의 외상(trauma)이 되어서 한인들을 짓누르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한인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서로와 친해지려는 노력도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 공연한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도적으로 민족적인 언어, 풍속, 사고를 부정하면서 살아야 했던 한인들의 존재는 자기정체성에 말할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하였다.
Ⅷ. 중앙아시아의 한인 생활과 토착문화
하차의 명령을 받고 내린 곳이 중앙아시아의 허허 벌판이었다. 우즈벡 공화국과 카자흐 공화국에 속하는 이곳은 반 사막지대이고 유라시아 대륙의 복판이라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지대였다. 여름에는 몹시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운 곳이다. 강우량이 적어 잡초가 자라면 그것을 양 때가 먹고 가면 그만인 곳이고 풀마저 드물게 나는 곳이다. 허허 벌판에 내려진 한인들은 마치 두더지와 같이 땅을 파고 땅굴에서 생화를 하였고 다행이 강가에 내려진 사람들은 갈대로 움집을 짓고 겨울을 나야 했다. 기후가 바뀌고 물이 바뀌어 설사를 하면 그 사람은 죽는 것이었으니 특히 2세 이하의 어린이는 모두 죽었다고 한다. 다행이 원주민 마을에 가까운 곳에 하차한 사람들은 원주민이 내어준 방에서 잠자리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주는 말 젓을 먹고 설사를 하여 또 죽었다고 한다. 다음해 봄이 되자 한인들은 강을 찾아 운하를 파고 눈을 만들어 가져간 쌀을 심었다. 더운 기후는 햇빛이 많고 이러한 곳에 물만 있으면 벼농사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된다. 운하로 물을 댄 논에서 쌀 농사가 잘되어 풍년을 맞는다. 다음해에도 풍년이 들어 3년만에 한인들은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인들은 유목지대인 중앙아시아에 농경기술을 전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쌀을 재배하여 다른 민족들에게 공급하였으니 중앙아시아와 소련 일대에서 쌀이라 하면 그것은 한인, 한인 하면 쌀을 연상하게 하였다.
중앙아시아의 원주민은 유목민의 대표적인 민족들이다. 특히 카자흐 공화국의 카자흐인은 최근까지도 양을 몰고 들을 헤매는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다. 카자흐인과는 달리 우즈벡 공화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우즈벡인은 유목민이면서도 정주생활을 하고 고급문화를 가진 유목민이었다. 유목민의 특성은 가축을 상대로 하고 이동을 하는 생활이기에 물질문화가 단순하고 단조롭다. 유목민은 율트라는 천막에서 살고 있어 카자흐 공화국에서 이들에게 농지를 주고 가옥을 주었으나 도시에서 마저 이들은 마당에 율트를 치고 집에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율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은 주식이 양고기이다. 이들은 양고기를 먹기 위해 집에서 빵을 만들어 먹고 양젖, 말젖 등을 마시며 그것도 칼과 손으로 뜯어먹는 것이 고작이다. 우즈벡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식생활은 집 앞 평상에 4명의 남자가 비스듬히 앉아 양 한 마리를 통째로 구어다 놓고 누었다 앉았다 하면서 하루 종일 양을 뜯어먹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은 자기들의 고유한 민족을 표시하는 모자가 있다. 이것은 모자의 모양이 아니라 모자의 문양으로 민족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복의 문양으로 민족의 특성을 표시한다. 이와 같이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은 의식주를 포함하는 일상생활이 우리 동양의 농경민과 너무나 다르기에 모방하고 배울 것이 없다. 일상생활만이 아니라 1년을 주기로 하는 세시풍속이 우리와 너무 다르고 일생을 주기로 하는 통과의례 또한 우리와 달라 비록 한인들이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 속에 섞여 살지만 모방할 것이 없고 모방할 수도 없었다.
원주민들과 섞여 사는 콜호스를 보아도 비록 건물 외형은 같으나 텃밭의 사용이 달라 집주인의 민족을 바로 식별할 수 있다. 한인들은 텃밭에 고추 상추, 마늘 등 채소를 심어 먹고, 러시아인은 꽃을 심으며, 중앙아시아인들은 그곳에 당나귀나 양을 기른다. 뒤꼍에 있는 별채에도 한인은 큰 가마솥을 걸어놓았고, 러시아인은 사우나 욕실을 마련하였으며 중앙아시아인은 빵을 굽는 페치카를 설치하여 놓았다. 중앙아시아에 이주한 한인들은 쌀로도 유명하지만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인들만이 아니라 러시아인이나 중앙아시아인들도 한인들의 식당에 와서 개고기를 청하여 먹는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개고기를 한국식 양고기라 한다. 한인들이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흘렙\"이라 하는 비빔밥이다. 양고기를 솥바닥에 깔고 그 위에 쌀과 양념을 넣고 밥을 지어먹는 것을 흘렙이라 한다. 우리 나라의 비빔밥과 유사하고 기름기가 많은 것이 다르다. 이것이 한인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한인들은 더러 기름진 비빔밥을 하여 이것을 흘렙이라 하여 먹는다. 한인들의 동양식 농경문화가 중앙아시아의 유목문화와 워낙 이질적인 것이기에 상호 모방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중앙아시아인과 한인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 마을에 같이 이웃하고 살면서 한인과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며 결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권희영(1998), 한민족의 중앙아시아 이주의 배경과 과정, 중앙아시아 거주 한민족 관련연구를 위한 Workshop, Pp, 8-14, 서울: 중앙대학교 민족발전연구원 해외민족연구소
○ 김필동(1996), 구소련 해체 후 중앙아시아 농촌 사회의 변화와 농민생활, 중앙아시아 한인의 의식과 생활, 문학과 지성사,
○ 박명규(1996), 중앙아시아 한인의 집합적 정체성과 그 변화, 중앙아시아 한인의 의식과 생활, 문학과 지성사,
○ 백태현(1997), 고려인 중앙아시아 이주의 역사적 배경, 미간행 학술회의 발표논문
○ 유가이(1997), 중앙아시아 한인의 언어, 미간행 학술회의 발표논문, 재러시아 한인 강제이주 60주년 기념 학술회의
○ 정성호(1997), 중앙아시아 한인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과제, 한국인구학20권 161-180,
○ 카자흐스탄, 알마타(1997.7.17-23), 중앙아시아 고려인 역사, 문화, 언어 국제학술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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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13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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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84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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