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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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한제국기연대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한국 근대사-대한제국기 Matrix

<지배 -피지배>

<정치 변동>

<사회 경제>

<생활 문화>

<사상 이념>

<한국 : 외국>

<외국:외국>

본문내용

신 이완용과 일본의 2대 통감인 소네 아라스케사이에 맺어졌다.
1910.6 경찰권이양
▶ 경찰권이양 - 1910년(융희 4) 대한제국이 일본에 경찰권을 이양한 일.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되자, 일본은 한국 병탄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국권피탈에 반대하는 한국민의 항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한국의 경찰권을 일본 통감부가 완전히 장악하게 하였다. 이토의 후임으로 부임한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은 통감부 참여관 이시즈카를 시켜 한국의 총리대신 서리 박제순과 협의하여 1910년 6월 24일 한국경찰권 위탁각서를 체결, 한국의 경찰권을 일본에 이양하게 하였다.
1910.8.22 합방조약
▶ 합방조약 -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자고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합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 대신 이완용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인 자작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 위원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 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1910.10.22 안명근 사건
▶ 안명근사건 - 서간도로 이주한 안명근이 무관학교 설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권총을 휴대하고 황해도에 잠입하였다가 모금요구를 거부했던 자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때마침 일제는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려던 데라우치 총독에 대한 암살미수사건으로 날조함으로써, 당시 김구 등의 주도하에 안악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황해도의 민족운동가 160여명을 체포하여 탄압한 사건이다.
1910.12 105인 사건
▶ 105인사건 - 안명근의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을 날조한 일제가 1910년 12월, 또 다시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배일기독교세력과 신민회의 항일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총독암살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하여 수백 명의 민족지도자를 투옥하고, 이중 중심인물 105인을 재판에 회부한 최대규모의 한민족 탄압사건이다.
<외국:외국>
1899 러시아, 마산 목포 조차 시도
▶ 마산 목포 조차시도 - 러시아의 마산 밤구미와 목포 고하고 조차 시도가 일본의 방해로 실패.
1900 의화단 사건
▶ 의화단사건 - 청조 말기인 1900년 중국 화베이] 일대에서 일어난 배외적 농민투쟁.
산둥성 부근에는 청나라 중기부터 백련교의 한 분파인 의화권이라는 비밀결사가 있어 한국의 태권도와 같은 권술을 전수하고, 주문을 외면 신통력이 생겨 칼이나 철포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믿었다. 1894년의 청일전쟁 후 열강(列强)의 침략은 중국을 분할의 위기에 몰고, 또한 값싼 상품의 유입 등으로 농민의 경제생활은 파괴되었다. 특히 특권을 지닌 그리스도교의 포교는 중국인의 반감을 사 배외적인 기운이 높아갔다. 의화권은 그리스도교회를 불태우고 그 신도들을 살해하는 반그리스도교 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파산한 많은 농민들과 함께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1902.1 영일동맹 체결
▶ 영일동맹 - 1902년 영국과 일본이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하여 러시아의 동진(東進)을 방어하고 동시에 동아시아의 이권을 함께 분할하려고 체결한 조약.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며, 일본이 청에서의 영국의 이권을 승인하는 대신 영국은 한국에서의 일본의 특수 권익을 상호 승인하였다(러시아군의 만주철병요구는 좌절됨).
1903.7 용암포 사건
▶ 용암포사건 - 1903년(광무 7) 러시아가 한국의 용암포를 강제점령하고 조차를 요구한 사건.
1899년의 의화단사건 이래 만주를 점령하고 있던 러시아는 1903년 4월 앞서 획득한 압록강 상류에서의 삼림벌채권과 그 종업원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약 100명의 군대로 용암포를 점령하였다. 이어 5월에는 러시아인 40명을 거주하게 하였고, 포대를 시설하여 주롄청과 봉황선을 거쳐 안둥에서 용암포에 이르는 지역에 1개 여단 병력을 배치한 다음 7월에는 러시아 삼림회사에 용암포를 조차하도록 강요하여 이를 획득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각축을 벌이던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은 더욱 첨예화하여 1904년의 러 ·일 전쟁을 유발하게 되었다.
1904.2 러일전쟁
▶ 러일전쟁 - 1904년 2월 8일에 일본함대가 뤼순군항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어, 1905년 9월 5일에 강화를 하게 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다. 한국과 만주(중국 동북지방)의 분할을 둘러싸고 싸운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동맹과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러시아는 패배의 결과로 혁명운동이 진행되었고, 일본은 전승으로 한국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만주 진출이 확정되었으나 미국과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1905.7 가쓰라 태프트 밀약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이다. 이 비밀협약은,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으며, 극동의 평화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하고, 미국은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을 승인하는 내용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협약은 미국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하는 약속이었다.
1905.8 제2차 영일동맹
▶ 제2차 영일동맹 - 인도에서의 영국의 독점적 권익과 한국에서의 일본의 독점적 지배권을 상호 묵인하였다.
1905.9 포츠머스조약
▶ 포츠머스조약 - 러일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1905년 일본과 러시아가 맺은 강화조약.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전권대사를 미국의 포츠머스(Portsmouth)로 불러 양국 직접회담의 형식으로 협상토록 하였으며, 미국은 알선국으로서 입회와 발언도 가능토록 하였다. 약 1개월의 협상 끝에, 일본의 전권외상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와 러시아의 전권 재무장관 비테와의 사이에 전문 15개조의 강화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를 포츠머스조약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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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7.08
  • 저작시기2008.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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