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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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종교 그리고 철학

2. 종교의 출발점으로서의 인간의 유한성

3. ‘신’은 존재하는가?

4. 왜 ‘악’이 존재하는가?

5. 현대 사회의 종교

본문내용

다.
어떤 철학자들은 악을 인간의 자유 의지(自由 意志)의 소산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즉 신은 자유 의지가 없는 인형이나 로봇 같은 인간보다도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인간을 더 바람직한 인간으로 보았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할 때에 그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하였는데 인간이 그것을 남용함으로써 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 전능한 신이 인간이 자유 의지를 남용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신의 전지 전능함과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양립하기 어렵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수탉이 울기 전까지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했다. 베드로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이것은 신의 전지 전능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베드로가 무엇을 할지 예수가 미리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과연 베드로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유 의지가 신에 의하여 주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방도는 없다.
5. 현대 사회의 종교
: 한 종교의 신봉자가 다른 종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 혹은 Nabuchodonosor)을 아는가? 역사적 인물이자 성서에 기록된 인물인 그는 기원전 604년에서 562년에 걸쳐 바빌로니아를 통치한 인물로 바빌로니아 역사에서 보자면, 함무라비 이래 가장 뛰어난 임금이자 전략가였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정복했으며 반란을 꾀한 예루살렘마저 손 안에 넣는다. 그리고는 수많은 예루살렘 사람들을 바빌로니아로 끌로 가서 강제 노역에 내몬다. 이것이 ‘바빌론 유수(幽囚)’라는 사건이다. 구약성서의 곳곳에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열 왕기 하 24~25, 다니엘서 1~4, 에스라서 1~2, 역대기 하 36).
한편 걸프 전쟁에서 우리는 마치 전자 오락을 하듯 공격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들의 경연을 보았다. 무엇을 때려 부쉈는가? 겉으로는 모래밭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모래밭 아래에는 고대 문명이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선 부시 대통령은 기자들이 묻기도 전에 스스로 나서서 이 전쟁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한 응징, 곧 불의에 대한 정의의 응징으로 보아야 하지,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의 전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전쟁이 다름 아닌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의 전쟁이라는 것을 자백하는 셈이 된다. 작전 ‘사막의 폭풍’이 겨냥한 사담 후세인의 그림자는 느브갓네살이다.
그런데 성서에서 보면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의 원조가 공교롭게도 형제 사이로 되어 있다. 지금의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원수 사이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한 뿌리에서 갈려져 나온 가지들인 것이다. 신앙의 원조 아브라함이 사라에게서 얻은 아들 이사악이 기독교도의 뿌리라면, 아브라함이 천한 신분인 하가에게서 얻은 이스마일이 이슬람교도들의 뿌리이다. 그러니 사실인즉,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적자와 서자 사이의 동족 상쟁인 셈이며, 역사적으로 확인되듯 처참함이 더하는 경우가 바로 골육 상쟁이 아니던가?
우리는 종교인들이 그들의 종교를 명분으로 해서 저지른 많은 잘못들을 알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있고, 그것들 사이에는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한 종교의 신봉자가 다른 종교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를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 한 가지는 배타주의인데, 이 입장은 구원이라든지 해방, 인간성의 완성과 같은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의 특정한 종교에서만 발견될 수 있으며, 다른 종교들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비록 경건하고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본다.
둘째로 다원주의를 들 수 있다. 이 입장은 서로 다른 종교들이 신에 대해서 상이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각자 구원이나 해방, 자기 성취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다원주의자들은 종교의 중심은 교리가 아니라 인격의 변화하고 주장한다.
셋째로 포괄주의가 있다. 이 입장은 구원이 오직 하나의 특정한 종교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점에서는 배타주의와 일치하지만, 다양한 종교들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신을 만나게 되고 신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다원주의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한 종교의 절대적인 진리가 있지만 다른 종교들의 신봉자들도 바로 그 참된 종교가 규정한 것들로 인하여 구원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카톨릭 신학자 라너(Karl Rahner, 1904~1984)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 용어로 신의 활동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신의 정신은 그들의 삶 속에서도 작용한다고 보고, 이들을 ‘익명의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베이컨은 인간이 빠지기 쉬운 네 가지 편견 또는 선입관을 말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동굴을 가지고 있어서 이 동굴 안에 자연의 빛이 들어와도 변색되고 만다는 것이다. 인간 각자는 자라는 환경, 성격, 교육받은 것, 교제하는 사람, 읽은 책 등을 달리 한다. 이런 데에서 편견이 생겨나는데, 이 편견에서 벗어나자면 타인의 경험을 잘 관찰하고 검토해야 한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 존엄성의 기초를 신이 인간을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했다는 데에서 찾는다. 그 신이 기독교도들만 신의 형상(imago dei)에 따라 창조하고 그 밖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신이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견고한 울타리가 무너진다. 새뮤얼 헌팅턴(S. P. Huntington)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에 있어서 현재 진행형이며, 가까운 미래에 더욱 가열될 가능성을 너무도 분명하게 안고 있는 것이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요, 우리 사회에서도 종교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이강서, 종교와 철학, 『문화와 철학』(서울:1999), 동녘, 82-102쪽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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