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명장론, 원균옹호론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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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원균명장론, 원균옹호론에 대한 반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선조실록의 기록?

2. 작전상후퇴?

3. 이순신은 지장, 원균은 용장?

4. 통제사가 되자마자?

5. 장계에 원균 이름이?

6. 당시 사람들의 의견은?

본문내용

균은 마땅히 저자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야 한다. 그리고 수군 장병들이 모두 죄가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균은 성질이 조포(粗暴)한 일개 무지한이다. 처음에 이순신과 더불어 공을 다투어 백방으로 무함, 순신을 몰아내고 스스로 대신 통제사가 되었으며, 밖으로는 큰소리치면서 단번에 적을 섬멸할 것같이 말했다.
지혜가 궁색하여 패전하자 배를 버리고 상륙 도주하여 수군 장병들을 모두 참살당하게 했다. 이와 같은 원균의 죄를 누가 책망해야 하는가? 한산에서 패전하자 호남이 이어 무너졌으며 호남이 무너지자 나라에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일을 목격하니 뇌가 터질 것 같고 뼈가 녹아나는 것 같다." (선조실록 선조 31년 4월 병진)
"통제사 원균은 탐학하기가 그 유례가 없는 자이며 크게 군심을 잃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이반하여 드디어 정유년에 한산 싸움에서 패하였다. ... 애석하구나, 조정이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케 하지 못한 것이. 만일 정유년에 순신을 통제사에서 면직시키지 않았다면 어찌 한산의 패전이 있었을 것이며, 호남과 호서를 적굴로 만들었을 것이냐. 아아, 애석하도다." (선조실록 선조 31년 11월 무신)
참고로 이 선조실록의 총재관은 유성룡과 반대되는 서인 이항복이었으나 후에는 북인 기자헌이었다.
"원균은 성질이 음흉하고 간교했으며 중앙과 지방의 많은 사람들과 연결을 지어 힘써 순신을 모함했다. 그는 언제나 말하기를 "처음에 순신이 오지 않으려 한 것을 내가 굳이 청병을 해서 왔으니 적을 무찌른 공은 내가 으뜸이다."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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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28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4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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