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박태준 <인물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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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강왕 박태준 <인물 탐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문
2. 약력
3. 포스코의 연혁
4. 제철건설이 그 당시 우리나라에 필요했던 이유
4.1 제철소의 효용
4.2 제철소 건설에의 부단한 노력
5. 왜 박태준이 지목되었을까?
5.1 박태준의 성장
5.2. 박정희와 박태준
5.3. 박태준의 경영철학
6. 에피소드
6.1. 실패하면 우향우
6.2. 하와이 구상(構想)
7. 박태준에 대한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했음을 시인하고 있다. 만약 포철이 그의 사유물이었다면 이러한 방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기의 재산관리를 위해 인격마저 버린다는 건 수전노에게나 있음직한 행위일테니까.....그러나 그는 포철의 주주조차도 아니었다.
▷운이 좋은 경영자
포철은 20년간 계속 설비를 증설했는데 한번의 예외도 없이 신통하게도 경기순환과 맞물려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건 박태준의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그처럼 운이 따르는 지도자를 만난 것 자체가 조직으로서 또한 커다란 행운이었을 것이다.
▷연구하는 경영자
그는 항상 “최고 경영자는 적어도 10년 앞을 내다보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공부했다. 그는 철강에 관한 책이면 빠짐없이 읽었다. 경기변동이나 미래학에 관한 서적들에도 그는 탐닉했다. 그는 세계적인 철강 전문가나 경제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얻는 일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포철 내에 경제조사와 경기예측을 담당하는 방대한 경영조사부를 설치하고 항상 자문을 구했다. 박태준 시절, 포철의 엘리트 치고 이 부서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를 따라다닌 ‘운’이란 실인즉 이처럼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가 빚어낸 통찰력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그는 박 대통령의 명을 받아 포철을 맡은이래 오지 철에 미쳐서 살았다. 그리고 세계 제일의 철강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쫓아 야생마처럼 뛰었다. 포철은 바로 이러한 박태준의 통찰력과 카리스마, 사명감과 인간사랑, 그리고 집념과 소신의 열매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6. 에피소드
6.1. 실패하면 우향우
1968년 1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 해병부대의 경계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고 가는 길에 포항 건설현자에 들러 진척상황을 보고 싶어 불시에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진척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었다. KISA회원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금조달 문제를 지연시키고 있었고, 세계은행은 제철소 건설을 연기하라고 촉구하고 있었으며, 인프라 건설을 위한 내자 또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박태준의 브리핑이 끝난 후, 박 대통령은 건설현장을 쳐다보았지만, 이제 막 부지를 정리하는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황량한 벌판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탄식하시기를
“이거 남의 집 다 헐어놓고 제철소가 정말로 되기는 되는 거야? 제철소가 그만한 희생과 불행을 치를 만한 값어치가 있는거야? ”
박 대통령의 이 말은 박태준을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긴장하게 했으며, 마음 속 깊이 새겨졌다. 무언가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가 브리핑을 했던 그 롬멜하우스 앞에서 우향우를 하면 바로 앞이 바다였던 것이다.
‘ 목숨을 걸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사무소에서 똑바로 걸어나와 우향우 한 다음 동해바다에 몸을 던지는 거다.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
직원들 또한 우향우 정신을 마음속에 깊에 새겼으며, 이 정신은 모든 건설 요원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을 주는 의지로 변했던 것이다. 결국 이 구호는 포철의 전통과 정신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6.2. 하와이 구상(構想)
KISA에서 차관을 지원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왜냐하면 세계은행에서 한국이 이러한 거대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하고 운영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유솜(USOM)측의 견해를 토대로 보고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1968년도 한국경제 평가보고>에 따르면 한국이 종합제철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건설비용에 비추어서 경제성이 의심되며, 따라서 한국은 종합제철의 건설을 연기하고 노동 및 기술집약적인 기계공업을 우선적으로 개발해야한다고 되어있다. 이것을 근거로 서독과 미국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 때 우리측 차관 교섭단과 박태준 사장은 발로 뛰며 설득하려 하였으나,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박사장은 포이회장의 제안에 따라 하와이에 있는 콘도에 쉬면서 묘안들을 떠올리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으니....
‘대일 청구권 자금’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KISA로부터 어떠한 차관을 얻어 오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비록 자금용도가 정해져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것을 가지고 하와이 구상이라고 한다.
7. 박태준에 대한 평가
철강 인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을 박태준은 “적어도 포철의 울타리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도 내켜하지 않았던 정치에 몸을 담았다. 이 나라에 군대의 힘이 필요했던 시기에는 ‘군인’으로서, 그리고 경제발전이 지상의 과제로 등장했던 시기에는 탁월한 ‘경제인’으로서 그는 조국에 봉사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이 선정한 20세기 한국경제를 빛낸 기업인 2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은 1일자 신년 특집호를 통해 박태준 초대회장을 철의 사나이로 표현하면서, 허허벌판에 말뚝을 박고 고로를 세워 세계적인 철강회사를 키워낸 주역으로서 박태준 초대회장을 20세기 한국경제를 빛낸 2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카네기가 20세기 초 연산 1,000만톤 규모의 회사로 철강왕이 됐다면, 박태준 초대회장은 20여년만에 2,100만톤의 철강회사를 만든 새로운 철강왕으로 불릴 만하다며, 오늘날 한국경제의 초석을 닦은 박태준 초대회장을 높이 평가했다. 포스코 신문 99.1.7
또한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선정된 대한민국 50년의 분야별 50대 인물에서 경제부분 10걸에 들었다.
박태준(박태준자민련총재)은 전 포철회장으로, 이명박(이명박전 국회의원)은 전 현대건설회장으로 각각 경제인 10걸에 올라 정치보다는 경제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보다는 경영인으로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평가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에 대한 사랑과 철에 대한 놀라운 집념과 끊임없는 노력을 매우 높이 사고 싶다.
<참고 문헌>
각하! 마쳤습니다. (한송, 조용경 엮음)
누가 새벽을 태우는가(자유시대사, 이호)
최고 기준을 고집하라(한국 언론 자료 간행회, 서갑경 집필. 윤동진 역)
박태준 회갑문집(박태준 著)
인터넷 웹 서핑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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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20
  • 저작시기2009.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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