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채근담’ - 논의에 앞서......................1
2. 논의의 구성 ................................1
Ⅱ 본론
1. 시대 배경 ..............................1
2. 판본 및 목차 분석 ......................2
3. 주요 논의 요약.........................3
4. 해석..........................4
Ⅲ 결론
1. 현대 사회에서의 함의점.............................8
Ⅳ 참고문헌 ..........................9
1. ‘채근담’ - 논의에 앞서......................1
2. 논의의 구성 ................................1
Ⅱ 본론
1. 시대 배경 ..............................1
2. 판본 및 목차 분석 ......................2
3. 주요 논의 요약.........................3
4. 해석..........................4
Ⅲ 결론
1. 현대 사회에서의 함의점.............................8
Ⅳ 참고문헌 ..........................9
본문내용
. 그 결과 누군가는 포퓰리즘에 휩싸여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사용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치나 현실 따위의 문제를 아예 잊어버린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사회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사회화’를 나쁘게만 말할 수는 없다. 단 문제는 개인의 주체적인 성찰과정이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회의 대중적인 가치를 받아들일 때 사람은 사회화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돼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을 유지하게 만드는 하나의 연료로 소비될 뿐 그 사회의 주체적인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가 사람들을 스스로에게 부터 소외시키는 대가로 선사한 물질적인 풍요도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는 곧 끊임없이 소비에 기반하고 있고 이 소비 활동은 결핍의 감정을 조장한다. 사람들은 소비의 시대 스스로 궁색해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소비하고 또 소비하지만 마치 짠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많이 갈급하고 초조해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채근담이 주장한대로 외부 지향적인 가치에서 벗어서 스스로의 내적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덕적 수양의 결과 얻을 수 있는 성찰적 눈으로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비판적 인식이 가능할 때 우리는 사회에 의해 소비되는 존재가 아니라 시스템을 주도하는 존재가 되고 이때야 비로소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희망의 인문학>/얼 쇼리스 저/고병현 역/이매진/2006
사회 비평가인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민주주의 사회였던 고대 아테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찰적 사고와 자율성을 몸에 익히고 공적 세계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우리가 수백년 전의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채근담이 말했던 것처럼 성찰 능력을 가진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이고, 따라서 채근담의 격언들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욱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는 현대사회의 또 다른 특징으로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점을 든다. 그는 현대를 복제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미지와 정보의 유독성을 지적한다. 그는 이미지가 오고 감으로써 현실 세계에 거대한 무관심이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경계할 것을 강조한다. 채근담 역시 화려한 기교와 들어나는 아름다움을 경계하고 있다. ‘내가 귀함에, 사람들이 나를 떠받드는 것은 사람들이 내 몸에 걸친 이 높은 관과 큰 띠를 떠받드는 것이며, 내가 비천함에,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내 몸에 걸친 이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내 참모습을 떠받들지도 업신여기지도 않았는데 기뻐하고 화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채근담 속 격언은 화려한 이미지가 그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대신하는 산업 사회의 단면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보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그것에 덮여진 이미지일 뿐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현대 사회의 진정한 주체로 서기 원한다면 우리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고전을 통해서, 그리고 도덕적인 성찰을 통해서 길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찰과 자기완성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자본주의 사회가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말했던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 되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세속의 명예와 이익, 화려함과 사치에 골몰하지 말고 채소의 뿌리를 곱씹을수록 담박하고 소박한 맛이 우러나듯이 공명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만족할 줄 아는 지족의 경지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채근담의 주제를 채소 뿌리 곱씹듯 다시금 씹어볼 필요가 있다.
Ⅳ 참고문헌
<菜根譚>/홍자성 저/김성중 역/홍익출판사/2005
<유교로 보는 채근담>/홍자성 저/ 영함 편/장연 역/들녘/2003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한용운 저/이성원 이민섭 현대어 역/필맥/2005
<에밀>/루소 저/민희식 역 / 육문사 /2006
<미래는 없다>/아널드 토인비 저/최혁순 역/문예출판사/ 2001
<희망의 인문학>/얼 쇼리스 저/고병현 역/이매진/2006
<예언자>/칼릴 지브란 저/정창영 역/물병자리/2007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사회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사회화’를 나쁘게만 말할 수는 없다. 단 문제는 개인의 주체적인 성찰과정이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회의 대중적인 가치를 받아들일 때 사람은 사회화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돼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을 유지하게 만드는 하나의 연료로 소비될 뿐 그 사회의 주체적인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가 사람들을 스스로에게 부터 소외시키는 대가로 선사한 물질적인 풍요도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는 곧 끊임없이 소비에 기반하고 있고 이 소비 활동은 결핍의 감정을 조장한다. 사람들은 소비의 시대 스스로 궁색해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소비하고 또 소비하지만 마치 짠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많이 갈급하고 초조해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채근담이 주장한대로 외부 지향적인 가치에서 벗어서 스스로의 내적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덕적 수양의 결과 얻을 수 있는 성찰적 눈으로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비판적 인식이 가능할 때 우리는 사회에 의해 소비되는 존재가 아니라 시스템을 주도하는 존재가 되고 이때야 비로소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희망의 인문학>/얼 쇼리스 저/고병현 역/이매진/2006
사회 비평가인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민주주의 사회였던 고대 아테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찰적 사고와 자율성을 몸에 익히고 공적 세계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우리가 수백년 전의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채근담이 말했던 것처럼 성찰 능력을 가진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이고, 따라서 채근담의 격언들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욱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는 현대사회의 또 다른 특징으로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점을 든다. 그는 현대를 복제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미지와 정보의 유독성을 지적한다. 그는 이미지가 오고 감으로써 현실 세계에 거대한 무관심이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경계할 것을 강조한다. 채근담 역시 화려한 기교와 들어나는 아름다움을 경계하고 있다. ‘내가 귀함에, 사람들이 나를 떠받드는 것은 사람들이 내 몸에 걸친 이 높은 관과 큰 띠를 떠받드는 것이며, 내가 비천함에,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내 몸에 걸친 이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내 참모습을 떠받들지도 업신여기지도 않았는데 기뻐하고 화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채근담 속 격언은 화려한 이미지가 그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대신하는 산업 사회의 단면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보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그것에 덮여진 이미지일 뿐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현대 사회의 진정한 주체로 서기 원한다면 우리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고전을 통해서, 그리고 도덕적인 성찰을 통해서 길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찰과 자기완성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자본주의 사회가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말했던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 되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세속의 명예와 이익, 화려함과 사치에 골몰하지 말고 채소의 뿌리를 곱씹을수록 담박하고 소박한 맛이 우러나듯이 공명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만족할 줄 아는 지족의 경지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채근담의 주제를 채소 뿌리 곱씹듯 다시금 씹어볼 필요가 있다.
Ⅳ 참고문헌
<菜根譚>/홍자성 저/김성중 역/홍익출판사/2005
<유교로 보는 채근담>/홍자성 저/ 영함 편/장연 역/들녘/2003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한용운 저/이성원 이민섭 현대어 역/필맥/2005
<에밀>/루소 저/민희식 역 / 육문사 /2006
<미래는 없다>/아널드 토인비 저/최혁순 역/문예출판사/ 2001
<희망의 인문학>/얼 쇼리스 저/고병현 역/이매진/2006
<예언자>/칼릴 지브란 저/정창영 역/물병자리/2007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