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대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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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_일본이 택한 식민지 도구, 패션

1. 본론_백의, 몸뻬 그리고 국민복
1.1. 백의
1.1. 몸뻬 ; 여성들의 패션
1.1. 국민복
1.1.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식민지시대 패션

1. 결론_급진적 근대화속의 멋
1. 출처

본문내용

입게하지않고 양복을 사게 될 때 양복대신에 국민복을 사도록 강요하는 식으로 국민복을 파급하였다.<그림 14, 15, 16>
국민복은 군복과 유사했기 때문에 주머니가 많아지고 천이 실용적이며 움직이기 쉬웠다. 국방색을 띄고 있었으며 튼튼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일명 밀리터리화 된 것이다. 세계2차 대전 당시 국민복을 강요당한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밀리터리 바람이 불었다. 유럽이나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밀리터리한 형태가 전쟁과 함께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주고 어깨는 넓어지고 움직이기 편한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 <그림17, 18>
하지만 이러한 국민복이나 밀리터리화 된 의복들은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사라진다. 조선의 남성들은 다시 한복이나 양장을 주로착용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남성들의 양장이 이전보다 많이 증가하게 된다.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식민지시대 패션
한일 합방으로 일본의 직접적인 정치아래 영향을 받은지 10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시대의 패션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거나 새로운 패션의 길을 열어주었다.
백의는 식민지 시대를 지낸 이후로 백의민족이라는 한국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상징하게 되었다. 길에서 먹물을 뿌려대고, 생활의 많은 부분을 금지당하면서도 강하게 반발하면서 백의를 지켜왔다. 흰색의 맑고도 완고한 이미지와 일제 식민지에도 불구하고 하얗게 지켜낸 조선인의 굳은 심지가 합쳐져 한국을 상징한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도 생전에 이러한 상징을 가진 한국의 백색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몸뻬의 경우에는 과거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정서에 깊이 스며들어있다. 해방이후에도 자연스럽게 농촌사회에 자리 잡은 몸뻬는 일하는 여성들의 기본 복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 옷이 우리 역사의 아픔이 있는 의복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이 없다. 오늘날에도 과거와 거의 동일한 형태로 우리 삶에 있지만 오히려 농촌의 정겨운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나게 하는 상징적인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또, 개그코너에 단골로 등장하여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간간히 생활복의 한 형태로나 아이들의 옷, 노동복으로 다양하게 사용 되고 있다. 같은 형태이지만 민족의 정서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복은 한국의복의 근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정부에서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조선의복의 양장화는 더디게 진행되었고, 조선인들은 한복에만 익숙해져있었다. 의복의 양장화는 그들의 모습뿐 만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근대화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결론_급진적 근대화속의 멋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은 한국의 의복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강제적 이였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치욕적이기까지 했다. 민중을 제압하기위해 백의를 금지하고 여성들을 노동시키기 위해 몸뻬를 입혔으며, 엘리트층을 통치하기 위해 제복형태의 국민복을 입혔다. 일본은 비록 강제적 이였지만 당시 한발 느리게 진행되고 있던 한국의 근대화에 불을 지폈다. 몸뻬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상승되고, 남성의복의 양장 화는 현대화를 가져왔다. 짧은 기간이래 정신없이 근대화가 진행되었지만 조선인들은 자신의 자아를 잃지 않았으며, 식민지 치하에서 한국인들의 구부려지지 않는 강한 정신력은 빛을 발했다. 그리고 마치 유럽의 사람들이 중국의 도자기나 문양을 받아들이면서 그대로를 쓰지 않고, 그들 특유의 미를 반영하여 하나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만들어낸 것 같이 조선인들은 저고리의 길이를 조절하여 몸뻬와 어울리게 한다든지 다양한 문양을 집어넣어 몸뻬이지만 ‘한국의 몸뻬’로 창조적 수용하였다. 조선인들의 멋은 숨길 수 없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해방이후 조선인들은 치욕에서 벗어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민족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정신력이 반영되었다. 그러한 노력은 100년 전 일본의 아래에 있던 작고 치욕적이던 한 국가를 오늘날 성장률 G20 5위, 수출 세계9위라는 경제대국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때의 의복을 우리역사의 일부로 생각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조선인들처럼 쏟아지는 많은 해외 문화들을 우리의 정체성을 갖고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출처
[01] 백영자, 『한국의 복식문화』,경춘사, 2000, pp. 503~516
[02] 공제욱,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 문화과학사, 2006, pp. 135~192
[03] 미즈노나오키,『생활 속의 식민지주의』, 산처럼, 2007, pp. 29~34
[04] 김수정, 『한국미용 100년』, 동서교류, 2005, pp. 66~80
[05]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8, pp. 119~136
[06] 이이화,『한국사이야기22, 빼앗긴 들에부는 근대화바람』, 한길사, 2004, p.43
[07] 강준만,『한국근현대사산책4, 러일전쟁에서 한국군해산까지, 국판』, 인물과사상사, 2007, pp. 203~205
[08] 이진민, 「戰時체제(1937~1945)하의 일본 복식의 양장화에 대한 연구」,한국복식학회, 복식 제54권 제2호 통권83호 (2004. 3) pp.121-133
[09] 매일신문, 일제 강점기 상징 몸뻬…태평양전쟁 전시 여성복
[10] 매일신문, [國恥百年] (20)의생활의 변화
[11] 역개루카페, 일제시대로 들어오면서 변한 복식
[12] 위키피디아
[13] 구글
[14] Woosam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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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0.11.16
  • 저작시기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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