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권필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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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5. 권필(權韠)의 시와 비판의식

1)삶의 특징

2)시에 나타나 비판의식

3) 비관적 세계관의 투영

본문내용

현실의 문제를 시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시인의 사명을 실천한 것이다.
3) 비관적 세계관의 투영
권필은 현실을 주목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시를 여러 편 썼다. 그러나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고 권력자들은 그의 시를 싫어하고 배척했으며 결국 시로 인하여 그를 죽였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그는 한편으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작품도 썼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그는 한편으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작품도 썼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비관적이고 체념적인 서정이 바탕에 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체관이 깊이 스며들어 있고, 세계를 보는 시각이 대체로 비관적이다.
그는 강화에서 10년 동안 서당을 열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성리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는 ‘道學正脈’‘을 저술하고 제자에게 ’太極圖說‘, ’西銘‘’ 등을 가르쳤고, ‘雜述’‘에서 主氣論的인 견해를 밝혔으며, ’請誅賊子梁澤疏‘에는 나라의 기강과 예의가 무너지면 이런 나라에 살지 않겠다는 강경한 道學者的 言明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靜中吟‘(意實群邪退 心虛一理明 靜時觀萬物 春氣自然生)같은 도학적 경지의 시도 몇 편 썼다.
현실을 떠나 전원생활이나 신선을 지향하기도 했지만, 전원 지향의 시로 ‘幽居漫興’ 등이 있고, 신선 지향의 작품으로 ‘記夢’‘ 등이 있다.
그의 시에는 평담한 심경이나 도학적 관조에 이은 작품은 흔치 않고,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절망적 현실에 대한 비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미 든 작품 외에도 인생을 똥물에 비유한 ‘寓言’, 세도가와 외척이 판을 치는 정치현실을 풍자한 ‘行路難’, ‘詠史’, ‘記異 效白樂天’, 탐관오리을 미워한 ‘捕蠅飼鷄兒 作’ 등 많다.
그러면 내면을 응시하거나 비관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작품을 살펴보자.
해직 후에 지음(解職後題)
평생을 쓸모없이 살아서 귀밑털만 실처럼 희어졌고
낮은 벼슬 처량하여 굶주림도 면하지 못하네.
묻노니, 술에 취하여 官長에게 욕을 먹느니보다
돌아가서 야인이 되는 것이 어떠한지.
술독 열기를 재촉하여 새 술을 맛보고
다시 맑게 갠 날 처마 밑에서 옛날에 지은 시를 살펴본다.
생도들을 사절해서 돌려보내고 문을 닫고 깊이 들어앉아
병중에는 오직 잠자는 것이 마땅하리라.
平生樗散如絲 薄官凄未救飢 爲問醉遭官長罵 何如歸赴野人期 開臘甕嘗新 更向晴閱舊詩 謝遣諸生深閉戶 病中唯有睡相宜。(石洲集, 卷4, 49쪽)
이 작품은 35살 되던 해 윤근수(尹根壽) 등이 추천해서 동몽교관에 제수되었는데, 예조에 배례하기가 싫어서 그만둘 때 지은 것이다. 홍만종은 “글뜻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당나라 시인에게 양보할 게 없다” 洪萬宗, 小華詩評, 앞의 책,130쪽. 詞意極其天然 无讓正唐諸人.
고 했다.
수련에는 야인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회한과 굶주림도 해결하지 못하는 낮은 벼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함련에는 이런 벼슬보다는 차라리 그전대로 야인으로 사는 게 낫다는 자기 판단을 설의로 드러냈다. 경련에는 야인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술을 마음껏 마시고 맑게 갠 날 처마 밑에서 시를 쓰는 자유로운 시인으로 살아갈 소망을 말했다. 미련에서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생도를 돌려보내고 문을 닫아걸고 병을 핑계하고 잠자는 일이라고 자신의 결심을 단호하게 드러내었다.
이처럼 그는 현실에 구속되기를 싫어하였다. 특히 벼슬로 말미암아 현실에 매이기를 거부하였다. 현실에 구속되면 현실에 대한 비판이 무디어 질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현실에 적응하여 시인의 임무를 저버리게 된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자각은 현실과 자신에 대한 응시와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
권필은 임진정유의 왜란과 혼탁한 정치현실로 얼룩진 조선 중기에 살았던 저항시인이었다. 일생을 야인으로 살았지만 그의 천부적인 시적 재능은 당대 제일로 인정되었고, 명나라 사신을 시로 상대하는 자리에 추천되기도 했다. 그는 동서분당으로 정쟁을 일삼는 혼란스러운 정치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이었고, 그로 인해 권력자의 미움을 샀다. 결국 광해군의 난정을 풍자하는 시를 썼다가 고문을 당한 끝에 죽었다.
그는 포의로 민중 속에 있었고, 민중과 함께 전란의 고통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강화에 은거하며 민중과 고락을 같이했다. 그리하여 그는 민중의 현실을 시로 증언하였다. 그의 시는 당시 특히 두보를 바탕으로 하면서 송시 특히 진여의를 이어받았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는데, 사실 그의 시에는 두보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백거이의 현실 고발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는 부조리에 찬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고, 전원지향이나 신선지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앞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해 보자.
첫째, 그의 시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일생을 야인으로 지낸 처지와 벼슬길을 비판적으로 본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정치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은 당쟁과 모략이 판을 치는 정치 현실과 권세를 잡아 전횡을 일삼는 권귀들을 풍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셋째, 그는 전란에 처한 민중의 고난을 시로써 증언하였는데,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백성의 고통과 참혹한 상황에서 헤어날 길 없는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시로 표현하였다.
넷째, 그는 현실의 문제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시인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그는 현실의 부조리를 거침없는 어조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서정이나 수사적 세련에 있어서도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은 성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다섯째,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은 대체로 비관적인 색깔을 띠고 있다. 암울한 시대에 저항적인 몸짓으로 살아간 그에게 있어 현실의 부조리와 절망적 상황은 한적한 전원생활이나 환상적인 신선에 대한 지향보다 비관적인 체관을 더욱 짙게 했을 것이다.
여섯째, 권필의 시는 이른바 관인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사장파의 세련성과 야인적인 비판정신을 중시하는 방외인의 시각을 결합하고 있고, 여기에 도학적 이념을 승화시키려는 도학파의 정신자세를 가미하여 종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게다가 당송의 영향을 아우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서 그의 시는 전시대의 성과를 결산하고 새로운 한국 한시의 길을 여는 초석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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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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