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기독교 선교정책(네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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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교회를 위하여 모두 바치고 이웃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애쓰게 된다. 따라서 자기 공급과 자기 전파는 성경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은 생명의 자연적인 성장과 같은 것이다. 그 다음 단계에 자기 치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따라서 성경 중심적인 네비우스 정책이 바로 한국에서의 선교의 성공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불릴 만하다. 1907년의 사경회의 부흥운동이 좋은 실례가 된다. 이것은 네비우스 방법을 따른 성경공부의 귀결로 나타난 성령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운동은 한국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윤철호(2001),『하나님 나라와 선교』,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pp.127-130.
하지만 약점이 없는 정책도 없고, 채택과 실행의 과정에 얘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원리나 방법도 없다. 한국 교회는 자기 공급의 정신으로 성장했지만 성만찬 시행을 통한 자기 결정권으로부터는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었다. 즉 한국인 목사 안수가 뒤늦게 이루어졌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사들과 동역자로서 교회의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따라서 네비우스 원리의 실행은 물질적인 문제에서는 외국의 원조로부터의 독립을 가져다주었지만 영적인 분제에서는 선교부에서 한국인 목사의 안수를 허락할 때까지는 외국의 지배와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아울러 한국 교회의 자기 치리를 위한 교회 지도자의 지적인면에서의 지도력 향상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선교지 교회 지도자들과 일반 교인의 지적 수준 사이에 최소의 간격만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적어도 선교사역 초기 단계에는 미국에 보내 교육을 받게 하지 말 것이며, 그가 함께 살고 일해야 할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릴 우려가 있는 훈련을 시키지 말아야 할 것"을 제시한 버트 레이놀즈의 교역자 양성 원칙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만역(1993),『한국기독교사 특강』, (서울 : 성경읽기사), p.58.
5. 결론
한국의 선교사들은 선교 경험을 보유한 중국 선교사 네비우스를 초청해서 그 경험을 공유했다. 여기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모였다. 그의 선교 방법을 네비우스 선교방법으로 말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방법은 네비우스가 중국에서 실패한 것을 반면삼아 제안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즉, 중국에서는 실제로 적용되지 않았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 중심은 삼자 원칙이었다. 자전, 자력, 자치이다. 한국인 전도자를 양성하여 한국인 스스로가 전도하게 하는 것, 한국인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운영하게 하는 것이다. 재정적인 부분의 독립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방법은 지금의 한국교회 선교방법에도 유의미하다. 이 방법은 한국 선교 초기 발전의 큰 원동력이라고 평가된다.
- 참고문헌 -
윤철호(2001),『하나님 나라와 선교』,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이만역(1993),『한국기독교사 특강』, (서울 : 성경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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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3.28
  • 저작시기20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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