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을 전후한 한중일 삼국의 사회경제와 대응전략의 비교
본 자료는 7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해당 자료는 7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7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서론 : 동아시아에 도래한 변화의 시대 --------------- 1
2. 청·일본·조선의 개항기 전후의 상황 ---------------- 2
(1) 청 ------------------------------------2
(2) 일본 ----------------------------------5
(3) 조선 ----------------------------------7
3. 청·일본·조선의 대응 --------------------------11
(1) 청의 대응 -------------------------------11
(2) 일본의 대응 -----------------------------13
(3) 조선의 대응 -----------------------------15
4. 대응전략의 결과 ------------------------------ 17
(1) 청 ------------------------------------17
(2) 일본 ----------------------------------17
(3) 조선 ----------------------------------18
5. 결론 : 선택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 ----------------- 19

본문내용

락하는 이른바 삼극분해과정(三極分解過程)을 밟게 되었다.
이처럼 청·일본·조선 3국이 서로 상반된 역사과정을 밟게 된 것은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요인이 상호작용 한 결과라 할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항기를 통한 3국 정권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개항기의 정권이 혁신적·자주적 성격의 정권이었느냐 혹은 보수적, 종속적 성격의 정권이었느냐에 다라 근대화의 정책과 그 모습 등이 규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항기를 통한 3국의 정권의 성격은 각국의 사회적 의식구조 여하에 의해서 규정되었으며 또 각국의 사회적 의식구조는 당시의 선진문화를 어떤 자세로 수용했느냐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16~17세기경부터 청·일본·조선 3국은 각각 직간접으로 서양의 선진문화와 접촉하게 되었으나 청국과 조선은 이를 시종일관 소극적이며 비판적인 자세로 수용함으로써 개항기를 통하여 근대지향적인 사회적 의식구조가 양국사회에서는 널리 배양되지 못하였다. 이에 반하여 일본은 서양의 선진문화를 적극적인 자세로 수용함으로써 근대지향적인 사회적 의식구조가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일본 사회 내부에 널리 배양되어 가고 있었다. 따라서 개항기에 전개된 일본의 반봉건운동은 그것이 곧 근대적 부르주아 혁명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또 그 결과로서 일본은 근대적 혁신정권인 메이지 정권을 창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은 조청 양국에 앞서 근대지향적인 사회적 의식 구조 하에서 신속한 체제변환을 실현함으로써 근대화에 성공하고 급기야는 후발제국주의국가로 아시아에 군림하였다. 그러나 청국과 조선은 선진문화의 수용에 소극적이며 비판적인 자세로 일관하게 되어 결국에는 근대지향적인 사회적 의식 구조 하에 신속한 체제변환을 실현하지 못함으로써 청국은 반식민지,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한 굴욕적인 역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崔泰鎬,「開港期 韓·淸·日의 3極分解 小考」, 國民大學校經濟硏究所,『國民經濟硏究 20』, 1998, pp.163~164
결론 : 선택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
19세기에 찾아온 서양의 충격은, 자신들의 안방 문을 꼭 잠그고 안정을 누리던 동아시아 3국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어렴풋이 바다 저 건너편, 대륙 저 건너편에 자신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도 당시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그들을 미개하고 사람답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어찌되었거나 세계의 중심은 바로 이곳, 중화(中華)이니 먼 변방에 괴이한 오랑캐가 있든 사람모습을 한 금수가 살든, 뭐 애초에 그런게 있든 없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게 되는 때를 눈앞에 가져다 놓고 말았다.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먼 바다를 건너 동아시아의 해변까지 도달하고 만 것이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강하고 세련된 무기들을 가득 싣고서, 수 백 년 동안 바꿔본 적이 없는 것들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예도 모르는 괴이하게 생긴 자들을 바라보며 동아시아인들은 공포와 적개심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와 낯선 것은 언제나 그러하다. 공포와, 현상의 극심한 관성으로 인한 적개심을 동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과 마주하게 된 이상, 외면한 채 피해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적당한 유예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리고 감정적으로만 빠져 무조건 적대시하고 거부하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중요하고 격렬한 변화기 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이번, 개항기의 동아시아를 살펴봄으로써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변화를 인지했다면 그 변화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된 것임을 알아야 하고, 상황이 자신이 불리할수록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거대한 변환기의 역사적 상황들은 다정하게도(?), 언제나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이는 비단 19세기, 격동의 개항기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해당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고도로 발전함으로 인해 매일 매일이 빠르게 변화하고, 그 매일 매일이 크고 작은 충격들의 연속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우리의 ‘일상적’측면은 물론이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큰 변화의 물결 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여전히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복잡한 세계정세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하는 국가적 측면 역시 아직 유효한 것이다. 변화를 감지하고 앞으로를 준비하며 올바른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앞길의 흥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정신없는 변화의 시대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선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서서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생각할 때 편견 없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재고 따져보는 것을 꼽고 싶다. 새로 맞이하는 것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판단해봤자 결코 좋은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교훈은 근대기, 중화사상·화이사상에 젖어있던 조선의 위정척사파들과 청 정부가 범했던 실수와 독선으로부터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기득권층이었던) 그들의 비논리적인 판단이 결국 조선과 청의 근대화를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덫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새롭게 다가온 것들의 이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 일본과는 대조적이었다.
물론. 개항기 전후의 동아시아 3국이, 지리적으로는 가깝게 붙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상이한 형태의 사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그들의 대처능력에 큰 영향을 주기는 하였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변화에 소극적이고 몸을 사리는 기득권층이 그 중요한 시기에 많은 것을 결정할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던 많지 않은 사람들의 능력이 한정되어있고 분산되어 있어, 그들의 힘보다 보수적 세력의 힘이 국내정치적으로 더 강했다는 점이 청과 조선에 있어서의 가장 큰 불행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 가격3,000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11.08.05
  • 저작시기2011.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9346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