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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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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조선시대화가 인제 강희안
1. 시대
2. 작가
3. 재질 및 기법
4. 크기
5. 소장

Ⅱ. 조선시대화가 겸재 정선

Ⅲ. 조선시대화가 표암 강세황

Ⅳ. 조선시대화가 단원 김홍도
1. 벼타작
2. 대장간
3. 자리짜기
4. 서당
5. 길쌈
6. 씨름

Ⅴ. 조선시대화가 혜원 신윤복

Ⅵ. 조선시대화가 추사 김정희

Ⅶ. 조선시대화가 오원 장승업

참고문헌

본문내용

지 않고 여기로 즐겨 그리는 그림을 일컫는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남종문인화란 어느 수준 이상의 학문과 교양을 쌓은 선비계급의 그림으로 그들의 내면의 품격과 철학이 깊게 반영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선비나 화원이 큰 구별 없이 남종화풍을 따라 그리게 되었고, 말기에 와서는 김정희를 중심으로 중인계층에 이르기까지 그림으로써 본래의 뜻에서 벗어난 모순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조선 말기의 시대적 특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대내적인 정치적 불안 즉,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고 동학운동, 내인양요, 신주양요, 운양호 사건 등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개화사상이 싹터 종래의 엄격했던 사회적 신분의 격차가 완화되어 중인계층의 예술활동이 두드러져 더욱 활기를 띠었던 듯하다. 또한 추사는 학문 지식과 예술을 거의 중인 제자들에게 물려주었다. 이것은 추사가 중인을 새로운 현실세력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성리학적 이념에 기반을 둔 양반 사대부들에 한계를 느끼고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를 접촉하고 새로운 에너지원인 중인계층을 중요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흉중의 문기를 제일로 여겼던 그의 예술세계와 견주어 볼 때, 그의 사상적 내면세계를 소화할 수 없는 중인계층을 중시하였다는 것은 일견 모순된 것 같으나 사대부에 대하여 느낀 절실한 한계성과 제한된 유배생활의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조선 말기의 회화는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김정희 일파가 형성되어 남종화풍이 더욱 큰 세력을 굳혀 문기(文氣), 서권기(書卷氣)를 중시하는 남종 문인화를 발전시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이상 살펴본 바로 조선왕조 말기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더불어 이 시대의 회화수준도 전반적으로 저하되는 추세를 보이지만 중국 청대(淸代) 후반기 영향을 받으면서도 18세기 조선후기 회화의 전통을 이어 전 시대에 못지않게 뚜렷한 성격의 화풍을 형성하여 근대회화의 모체가 되었다.
Ⅶ. 조선시대화가 오원 장승업
장승업은 1843년 중인가문으로 생각되는 대원 장씨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이응헌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응헌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이상적의 사위이며, 중국 청나라를 왕래하던 역관으로서 그림을 좋아하여 많은 그림을 수집하였다.
장승업은 그림이 가득 찬 이응헌의 집에서 어깨 너머로 화가나 수장가들의 그림 감상을 눈여겨보다 어느 날 우연히 붓으로 흉내를 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저절로 그림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장승업의 그림에 대한 재능은 주인 이응헌의 눈에 띄었고, 그로부터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에 전념한 장승업은 놀라운 기량과 넘치는 신운, 그리고 왕성한 창작력 때문에 금새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장승업은 마치 전생에 화가였던 듯 샘솟듯 넘쳐나는 영감을 기운 넘치는 필력으로 쏟아내었으며 당시 화단의 총아(寵兒)가 되었다. 그의 명성은 궁중에까지 알려져 고종의 어명에 의해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승업은 일체의 세속적인 관습에 구애받지 않으려 했다. 그에게는 오직 예술과 예술의 영감을 북돋아주는 술뿐이었다. 그는 그림을 구하는 사람들의 사랑방과 술집을 전전하며 뜬구름 같은 일생을 보내다 1897년 광무 원년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장승업이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모른다. 그의 뜬구름 같은 생애와 수수께끼 같은 죽음은 일체의 세속적인 것을 거부했던 진정한 예술가의 삶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승업은 술과 여자 없이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고, 그런 술 또한 예쁜 여자가 따라주는 걸 마셔야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장승업에 대해 그려낸 영화 ‘취화선’을 보면 세 여인이 등장한다. 기품 있고 아름다웠으나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승업의 첫사랑 소운, 기이한 인연으로 만나 승업이 일생을 걸쳐 사랑한 여인 매향, 승업과 가장 오랫동안 살을 맞대고 지낸 기생 출신의 억척스러운 동거녀 진홍. 임권택 감독은 ‘여자’를 통해 장승업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있어서, 장승업을 스쳐간 여인들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 여자가 장승업의 곁에 들어왔다 가지만 이 여자들이 장승업의 환쟁이 생활에 크게 자극을 준 일이 별로 없었던 걸로 해 가는 거요. 장승업, 이 사람은 온통 그림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다 쓱 지나간 여자가 그리워지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작품에 영향을 받는 건 아니요. 떠돌이 시절을 살다보면 한때 정 붙이고 사는 여자도 있을 거고 쉽게 만나 이뤄지는 연도 있을 거지만 별게 아니라 스쳐지나간 인연이거니 생각했는데, 나이 먹고 외로워지면 문득 많은 스쳐지나간 여자 중에 그 여자는 다시 한번 보고 싶네, 라는 마음이 드는 거요. 크게 보면 삶에 눈떠간다는 측면에서 지나간 여자들도 나이를 살면서 그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세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처음에는 화사한 아름다움이나 청순함에 빠졌다면, 3, 40대가 되면 여자를 보는 눈도 달라지고 외관이 주는 느낌,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것, 외모를 떠나 정 같은 것을 느끼는 거지. 그게 드러나는 삶이 장승업의 삶이요. 말년으로 가면서 오는 외로움도 젊었을 때의 감상적인 외로움이 아니고 생이 뉘엿뉘엿해지면서 오는 허전함. 그게 단계적으로 오는 거지.”
장승업의 삶과 그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자세한 자료가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 영화 ‘취화선’에서의 세 여인은 모두 실존 인물일수도 있고, 어쩌면 임권택 감독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일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장승업에게 있어 그림은 이상의 세계였고 여인들은 현실 속에서 의지할 데 없는 승업의 안식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ⅰ. 김환기, 수화 김환기화집, 일지사, 1975
ⅱ. 김순영 외 4명, 조선미술사
ⅲ. 서상훤, 추사 김정희의 회화세계, 홍익대 대학원, 1983
ⅳ. 성선미, 조선시대 회화의 사상적 배경, 홍익대 대학원, 1984
ⅴ. 최석태 저, 조선시대 풍속을 그린 천재화가 김홍도, 아이제움, 2001
ⅵ. 황효순, 혜원 신윤복의 연구, 성신여대 대학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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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2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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