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전 이미 부산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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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개항 전까지의 부산의 역사
-일본과의 교류기구
→왜관
-부산포왜관
-절영도임시왜관
-두모포왜관
-초량왜관
→기타
-연항대청
-초량객사
-영가대
-표민수수소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니까.… 정성을 깨끗이 하여 술잔을 올리오니 신은 우리의 원을 들어주소서. 흠향(欽饗)하여 주소서. 1655년 통신사 종사관 남용익이 쓴『부상록(扶桑錄)』中
뿐만 아니라 영가대는 경치가 빼어나 시인, 묵객(墨客)은 물론 이곳을 거쳐간 통신사행들이 많은 시를 남겼다.
高臺蕭瑟出雲端 높은 대가 소슬하게 구름 끝에 솟았는데
陂水千尋石色磻 언덕 밑 천길 물에는 돌 그림자 서려 있네.
艦穩如藏大壑 배들이 평온히 큰 구렁에 숨겨져 있는 듯
海中終日自波瀾 바다 가운데에는 온종일 물결이 치는구나. 1643년 신유 영가대
영가대는 1906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양분되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상인 오이카와(及川民次郞)의 별장인 능풍장으로 옮겨졌다가 그 후 도시화 과정에서 건물이 헐리면서 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부산광역시에서는 동구 좌천동 지하철역 출구 부근 도로공원에「부산포왜관·영가대터」의 표석을 세워 역사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산시 동구청에서는 2004년 부산진지성 부근에 영가대를 복원하였다.
-표민수수소(漂民授受所)
1678년 용두산 부근으로 이건한 초량왜관이 있을 때 지금의 남구 우암동에는 바다에서 표류하던 외국 사람들을 수용하였던 표민수수소가 있었다. 이 표민은 일본인이 일본 본토 또는 대마도 가까이 바다에서 항해를 하거나 고기잡이를 하다가 표류하여 조선근해에 표착하거나 우리선박에 의해 구조된 사람을 말한다. 그러한 일본인은 표왜(漂倭)라고도 했는데 그 같은 표왜 중 대마도 표왜는 표착 또는 구조된 자리에서 조선 관리의 검문을 받은 뒤 부산왜관에 인계되었다. 이들이 왜관에 인계되지만 먹고 입는 식량과 음식은 동래부에서 규정에 따라 지급되었다. 경상우도(慶尙右道)에 표왜가 있을 때는 거제에 있는 옥포만호(玉浦萬戶)에 소속된 통역관이 현지에 나가서 검문한 뒤에 다대포첨사영까지 데리고 오면 초량왜관에 거류하는 일본인 통역이 다대포로 나와 만나본 뒤 그 표왜를 해로를 거쳐 우암포에 인도 수용하였다. 그리고 전라도·강원도 지방의 표왜는 중앙에서 문정관(問情官)을 보내어 검문하거나, 해당 도의 통역관이 검문한 뒤 동래의 우암포까지 압송하여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수용하였다.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근해나 대마도에 표도(漂到)하였을 때는 대마도를 거쳐 초량왜관으로 오고, 초량왜관에서 우암포의 표민수수소에 인계되었다고 한다.
■결론
수탈의 역사는 언제나 비슷한 과정을 밟는 것 같다. 먼저 땅을 빼앗고, 자기편을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인력을 착취하게 하고, 문화를 말살하고...그렇게 아이티는 크레올 돼지를 잃었고, 농토를 잃고, 물을 잃고, 종속되었다.
아이티의 꼬마 플로랑스는 술이 좋으냐 콜라가 좋으냐는 어른들의 짓궂은 질문에 쥬스가 좋다고 대답한다. 기브 미 워터라고 말하면 초콜릿을 주는 미군병사에게 베르토니는 기브 미 초콜릿 이라고 말한다. 아이티의 정치적 안정은 요원해 보이고, 부의 편중은 더 심해져만 가지만 아리스티드는 ‘제3의 창조적 길’을 찾아내는 아이들 속에서, 뜨거운 햇볕 아래서 구두를 닦고 밤에 재래식 변소를 청소하는 광활하고 활기 찬 ‘비공식 경제’를 구성하는 사람들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찾는다. 이 아이들이 부디 지진 속에서 살아남아 아이티를 구하고 지구를 구해주길...
가난해도 존엄하고, 부자여도 존엄하고, 브라질의 원주민도 존엄하고, 남극의 펭귄도 존엄하다. 하지만 당당하게 거짓말 하는 개인에게, 폭력적인 거대자본에게는 이제 그만 친절하고 싶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일류 국가가 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땅 자체도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인구수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복지에 신경을 쓰고, 발전적인 사고를 한다면 지금보다 더 긍정적으로 나가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어 버리듯, 대의 정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쭉 그래왔듯이 역사는 반복되어 버리고 우리는 또다시 식민지화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셋째, 관문적 위치로는 우리나라 제1의 국제무역항이자 국제공항을 갖고 있어 가까운 일본은 물론 멀리 서부유럽의 여러 나라와 연결하는 관문역할을 다하고 있다. 부산의 국제항로를 보면, 일본의 도쿄를 비롯하여 오사카 및 시모노세키· 후쿠오카·나고야와 중국의 상해·북경과 연결되어 있고, 해상항로인 여객선의 경우 오사카와 시모노세키와 중국의 엔타이와 연결되어 있으며, 무역항로는 세계를 총망라하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최근에는 러시아·중국과 정기항로가 개설되었다.
한편, 역사적으로 보면 부산은 반도국으로서의 지정학적 관계 때문에 대륙과 해양 세력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해 온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국력의 신장과 세계의 국제경제권이 대서양 연안 국가에서 태평양 연안국가로 전환되면서 부산은 태평양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홈페이지DinamicBusan-해양수도부산-부산의 현재-기본현황
위 글은 부산광역시 홈페이지(http://www.busan.go.kr)에서 발췌한 글이다. 정말 자랑스럽게 적혀있다. 물론 공개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인지라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아무튼 상당히 대내외적으로 중요한 곳임에는 분명하다. 우리 스스로가 부산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고, 대대로 좋은 이미지와 올바른 역사를 일깨워 주는 것 이야 말로 부이 계속 발전하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최고의 지름길일 것이다.
■Reference
-가난한 휴머니즘(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 장 베르트랑 아리스트디 저, 이두부 역 / 이후 / 2007
-재일동포3세, 부산에 '초량왜관' 복원 추진 / 부산일보 뉴스 / 2010.08.22 (일) PM 18:28:00
-학문의 변방에서 글로벌 지역학으로 활짝 / 동아일보 기사 / 윤완준 기자 / 2008-04-16 03:01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부산광역시 홈페이지DinamicBusan-해양수도부산-부산의 현재-기본현황

키워드

개항,   부산,   식민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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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10.20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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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9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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