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권위주의의 탄생: 신군부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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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신 권위주의 등장의 신호탄: 12·12쿠데타
1) 무엇이 신 군부를 움직이게 하였는가?
2) 12·12의 성공은 예견된 것이었는가?

3. 권력의 공고화 전개과정
1) ‘12·12쿠데타’와 군부로의 권력집중
2) ‘5·17쿠데타’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통한 집권의 완성단계
3) 신 군부의 집권, 그리고 신 권위주의 체제의 탄생

4. 신군부 쿠데타의 특징은 무엇인가?: 5·16쿠데타와의 비교
1) 주도 세력의 구성
2) 쿠데타의 성격
3) 이익의 문제
4) 전개방식의 차이

5. 결론에 대신하여: 신 군부의 등장은 방지할 수 없었는가?

※ 참고문헌

본문내용

쿠데타의 성공에 있어서 큰 장애요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구 군부와는 달리 기타 세력과의 이념의 충돌과 같은 문제점이 크게 존재하지 않았다.
2) 쿠데타의 성격
구 군부의 쿠데타의 경우,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차별, 즉 비주류 세력들이 입는 불이익을 해소하고자 진행된 이른바 ‘현상 타파적’인 의도에서 출발한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신 군부를 쿠데타로 이끈 요인은 구 군부와 같은 ‘현상 타파적’인 성격이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을 비호하던 ‘선장’의 부재로 발생할 수 있는 권력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현상 유지’차원에서 발생한 일종의 정치화된 군부세력의 권력욕의 분출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3) 이익의 문제
구 군부는 장면정부의 감군정책과 지속적인 군사비 감축으로 인해 그 이익이 침해되고 있었다. 이는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하급장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소멸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신 군부의 경우는 이와는 정 반대였다. 한국의 군사비는 증가추세에 있었고, 1974년 이후 군의 근대화 프로그램과 대규모의 국방산업이 추진되는 등 그들의 이익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신 군부에게 있어 이익의 문제는 군 조직 차원에서의 이익이 아닌, 개인적인 권력욕 차원에서의 이익의 문제가 결정적인 발동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4) 전개방식의 차이
구 군부 쿠데타의 경우,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 차례의 쿠데타를 통해 직접적으로 정부를 장악했다. 또한, 쿠데타 자체에 대한 계획만 가지고 있었을 뿐, 정권장악 이후에 대한 어떠한 명확한 계획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때문에 비교적 긴 군정기간 동안 그 이후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는 체계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신 군부의 쿠데타는 12·12쿠데타를 통해 우선적으로 군부 내의 권력을 장악한 후, 정부에 대한 권력행사의 기반을 마련해놓은 상태에서 본격적인 정치개입의 노선을 진행해 나갔다. 이후 5·17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을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명확하고 견고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대체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전개방식을 보였고, 이는 상대적으로 이전에 비해 단기간에 걸쳐 정권을 성공적으로 쟁취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5. 결론에 대신하여: 신 군부의 등장은 방지할 수 없었는가?
신 군부의 집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것은 군부 내의 특성도 있었지만, 그러한 군의 견제를 제공할 만한 어떠한 요인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인들을 생성하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10·26사건을 통해 권력의 정점인 박정희의 부재로 유신체제가 완전히 붕괴된 듯 보였지만, 사실 이는 유신체제의 완전 붕괴를 의미 한다 기 보다는 유신체제의 속성은 그대로 존재한 채, 그 체제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부재, 즉 일종의 권력의 공백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박정희의 시해 사건 이후, 한국의 정치구조는 찬 유신-반 유신의 구도로 확립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유신의 속성이 잔존하는 구조 하에서 물리적인 역량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신 군부세력들을 중심으로 한 ‘찬 유신’으로 세력의 집중이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예견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반 유신’의 세력들이 분열되지 않고, 초반부터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면, 물론 많은 희생을 담보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상반된 결과가 도출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고 판단된다.
그렇지 않아도 ‘찬 유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던 ‘반 유신’의 세력들은 단결을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던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 결국 분열의 양상을 심화시켜나갔고, 양측이 ‘힘의 균형’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출된 힘의 불균형 구조는 결국 18년의 권위주의체제의 완전한 종식을 얻어내지 못한 채, 또 다시 군부의 재집권을 등장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유산’, ‘민주주의의 실패’, ‘정치적 공백의 충전’, ‘중산계층의 대행자’, ‘분열된 체제’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는 정권의 취약성 펄뮤터 외 著.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회 譯「군부정치」인간사랑. 1985.
은 정치 엘리트가 할 수 없는 경제·사회·정치적 불안정에 대한 군부개입의 정당성을 제공 Fred Riggs「Bureaucrate and Poltical Development: A Paradoxical View」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3.
하게 되었고, 이는 반드시 필연적인 결과로 도출되지 않아도 될 신 군부의 재집권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만 것이다.
※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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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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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1980년대 한국사회 연구』백산서당.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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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원『한국의 군부정치』대왕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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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1.03
  • 저작시기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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