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실내 장식 (Interior Decoration) - 극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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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6장 실내 장식
Interior Decoration
혹자는 극장이라는 건물에 대해 엄밀히 기능적인 용어로써 관객과 공연을 한데 불러 모으는 구조물이라고 간주할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실외 장식과 치장이라는 중요한 실용적 기능이 존재함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 건물과, 또 건물이 지어진 목적을 정립하며, 잠재적인 공중을 끌어 모을 수 있다. 공중이 도착하면, 특히 좌석에 앉고 나면, 공연 그 자체는 당연히 극장적 체험에 필수적인 모든 의미를 제공하도록 기대된다. 이는 왜냐하면, 확실히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란 곳이, 많은 현대 이론가들과 전문가들이 객석을 되도록 외관적으로 중립적인 모습을 띠도록 고안하고, 모든 주의가 무대로 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소한 실제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객석을 어둡게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장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실내 장식이라는 것은 건물의 가장 풍족한 의미의 원천 중 하나였다. 이와 같은 명확한 모순의 이유는, 우리가 실내와 실외 공간 배치의 연구를 통해 살펴보았던 것처럼, 물리적인 극장이라는 것이 오로지 관객과 공연의 대면을 위한 공간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극장은 거의 항상 다양한 또 다른 사회, 문화적인 기능을 제공해왔고, 그 모든 요소들이 그 극장 공간의 내적 및 외적 의미 체계 양자 모두에 복잡성을 증가시켜왔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궁정 극장에서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 있듯이, 예술적인 목적 보다는 귀공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졌고, 내부 장식은 자연스레 궁정환경의 호화로움과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사실, 과시와 환락의 중심이었던 극장은 종종 귀공의 거주지 가운데 가장 정교하게 장식되는 부분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의 최초의 공공 상업극장에서는, 이만큼의 허례허식은 아닐지라도, 단순히 공연만을 제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고상한 환경에서 몇 시간 보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중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했다. 극장은 전통적으로 그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특별한 체험의 장(場)이 되었다. 그 체험이라는 것은 실제 공연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연은 전체 사건 구성의 한 부분일 뿐이었고, 그 사건 구성이 일어나는 장소는 종종 고상함과, 즐거움, 그리고 상류 문화의 상징이 전시된 심상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초기 극장의 실내 장식은, 내부의 공간 배치와 같이, 후원자의 중요함과 장대함을 강조하도록 선정되었다. 값비싸고, 고상한 재료들은 자연스레 이 목표에 공헌했고,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장식물들의 사용을 관장하는 장식적인 양식(樣式)이었다. 이 시기에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기본 원천은 특히 로마의 고전적 고대였다. 로마는 모든 도시의 상징적인 모델로 예루살렘으로 대체했다. 영구적인 극장 구조물을 짓는다는 생각은 고대의 영화와 과시를 재현하려는 욕망에서부터 나왔다. 그래서 최초의 극장들은 고대 유적의 연구와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서』에서 나온 영감에서부터 나왔다. 르네상스 극장 건축을 위해 참고할 중심 업적은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Sebastiano Serlio)의 건축에 대한 책, 로마 극장 건물에 대한 그의 논거가 실린 제 3권을 들 수 있다. 세를리오의 책에서의 표지중 하나는 건목 친(rusticated) 벽돌의 로마 아치의 유적(遺蹟)을 보여주는데, 그 위에는 “Roma Quant Fuit Ipsa Ruina Docet”라고 되어있어, 로마의 위풍이 그 유적들을 통해 실증된다(그림 84). 이 유적들의 복제품을 지음으로써 르네상스의 귀공들은 그와 같은 위풍을 재현시키는 표식이 되기를 희망했다.
이 같은 르네상스 극장의 상징적인 중요성은 로마의 모델로부터 모방한 (그 스케일은 줄어든) 특정한 외관적인 배열보다는 그 장식적인 요소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로마 극장에서의 특정한 장식적 장치들은 거의 재생산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르네상스 관객의 정신에, 고대의 웅장함에 대한 심상을 일깨우려는 의도는 있었다. 최초의 영구적인 르네상스 극장에서의 장식은 그 당대의 후원자들에 대한 언급과 로마 모티브를 한데 뒤섞은 것이었다.
따라서 학회(a learned Academy)에 의해 후원을 받은 비첸차(Vicenza)의 테아트로 올림피코(Teatro Olimpico)는 내부 장식에 있어서 어떤 귀공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았지만, 고전적인 방식으로 그 자체 조직과 회원들을 시각적으로 찬양했다. 실내에서 가장 저명한 시각적인 요소는 팔라디오(Palladio)에 의해 고안된 거대한 영구적 무대 전면이다(그림 85).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95개의 상(像)들인데, 이들 중 대부분은 고전 건축 요소에 의해 고안되고, 지지된 것으로, 로마 제국 극장의 정교한 영구적 무대 전면에서 유사하게 발견되는 신, 영웅, 황제의 상(像)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비첸차에서 이 상(像)들은 지역 고위 성직자나, 학회의 회원들의 것이었다. 학회는 무대 전면에 기념비적 중간 공지(空地) 위를 장식함으로써 로마의 위풍과 연관시켰고, 한층 더 기념되었다. 그 곳에는 ‘Hoc Opus’라는 제명(題銘)의 아카데미 인장(印章)이 나타나있었고, 공공의 오락을 위해 건설된 로마 극장의 상징이 있었다. 그 아래로는 비첸차 도시의 문장(紋章)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극장 건립으로 표현된 아카데미의 정신을 기리는, 라틴어로 된 기념비적 명각(銘刻)이 있었다. 아카데미의 지적인 위업은 상징적으로 그 건물이 헌정된 헤라클레스(Hercules)의 물리적 공훈과 엮였다. 그리고 그 업적은, 무대 전면의 상단에서부터, 극장의 중앙 출입구, 무대의 양 측면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일련의 큰 바릴리프(bas-reliefs) <미술> 저부조(低浮彫). 얕게 만드는 부조로, 메달이나 주화 따위에 흔히 쓰인다.
를 통해 기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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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12.10.18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49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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