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주체사관 확립기(1960년대 후반~1980년대 전반)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
3. ‘조선민족제일주의’ 제창기(1980년대 후반~현재)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
4. 맺음말
2. 주체사관 확립기(1960년대 후반~1980년대 전반)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
3. ‘조선민족제일주의’ 제창기(1980년대 후반~현재)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
4. 맺음말
본문내용
반침략·반봉건투쟁을 강조하는 반면 문호개방과 그 후의 상황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서술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 조선통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조선전사·근대조선역사와 달리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주 등장했던 미국에 관한 원색적이고 경별적인 표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판 조선력사의 서술에 적지 않게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 강화도조약 이후 어떻게 반식민지적 상황이 전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임오군인폭동’의 배경을 설명하는 가운데 “부산항, 원산항이 련이어 개항되었으며 일본침략자들의 firxkf적인 상업행위에 의하여 조선의 국내시장과 농민경리는 파국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거나 “개항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책동으로 말미암아 민족경제가 파탄”되었다고 간단히 서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 후의 조약들 중에서 “미국침략자들은 1882년에 리조봉건정부에 불평등적인 <조미조약>을 강요한 데 뒤이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조선에서 침략의 지반을 넓혀 나갔다”고 서술했을 뿐이다.
4. 맺음말
① 기대효과 : 문호개방에 관한 북한의 역사인식과 그 특징을 올바로 분석하는 시도는 분단 이후 형성된 남북한의 상이한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각국의 보편적인 역사인식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② 연구내용 요약
- 1960년대 후반 이후 북한사회에서는 주체사상이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확립되고 주체사상화가 진행 → 근대사는 반침략·반봉건의 부르주아민족운동의 역사로 규정되고, 그 기점도 문호개방이 아니라 1860년대 반침략투쟁의 시작으로 삼았다.
- 1980년대 후반 북한에서는 대내외적으로 고양된 체제 존립의 위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등장 → 역사교육의 목적이 지도자의 역할과 그에 따른 충성과 효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위대한 민족’이란 전제 아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애국심을 배양하는 데 역점을 두는 쪽으로 변해갔다. 그 결과 여전히 인민들의 투쟁에 초점을 맞춰져 있지만,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이에 대한 반미투쟁의 역사가 더욱 강조되었고, 제국주의 침략에 앞서 개화사상이 자발적·자주적으로 발생·발전했던 측면이 부각되었다.
③ 주장 : 문호개방을 포함한 북한의 근대사 인식은 제국주의의 침략성에 대한 적대의식을 고양하거나 인민대중의 투쟁에 대한 정당성을 주지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시기는 분명 제국주의 침략의 시대였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인민의 투쟁을 중시하는 관점은 나름대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제국주의 질서가 일정하게 변동되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특히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조망하려는 노력도 절실히 필요하다. 앞으로 남북한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공통된 역사인식을 체계적으로 확대시켜 나감으로서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주적인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조선통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조선전사·근대조선역사와 달리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주 등장했던 미국에 관한 원색적이고 경별적인 표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판 조선력사의 서술에 적지 않게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 강화도조약 이후 어떻게 반식민지적 상황이 전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임오군인폭동’의 배경을 설명하는 가운데 “부산항, 원산항이 련이어 개항되었으며 일본침략자들의 firxkf적인 상업행위에 의하여 조선의 국내시장과 농민경리는 파국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거나 “개항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책동으로 말미암아 민족경제가 파탄”되었다고 간단히 서술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 후의 조약들 중에서 “미국침략자들은 1882년에 리조봉건정부에 불평등적인 <조미조약>을 강요한 데 뒤이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조선에서 침략의 지반을 넓혀 나갔다”고 서술했을 뿐이다.
4. 맺음말
① 기대효과 : 문호개방에 관한 북한의 역사인식과 그 특징을 올바로 분석하는 시도는 분단 이후 형성된 남북한의 상이한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각국의 보편적인 역사인식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② 연구내용 요약
- 1960년대 후반 이후 북한사회에서는 주체사상이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확립되고 주체사상화가 진행 → 근대사는 반침략·반봉건의 부르주아민족운동의 역사로 규정되고, 그 기점도 문호개방이 아니라 1860년대 반침략투쟁의 시작으로 삼았다.
- 1980년대 후반 북한에서는 대내외적으로 고양된 체제 존립의 위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등장 → 역사교육의 목적이 지도자의 역할과 그에 따른 충성과 효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위대한 민족’이란 전제 아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애국심을 배양하는 데 역점을 두는 쪽으로 변해갔다. 그 결과 여전히 인민들의 투쟁에 초점을 맞춰져 있지만,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이에 대한 반미투쟁의 역사가 더욱 강조되었고, 제국주의 침략에 앞서 개화사상이 자발적·자주적으로 발생·발전했던 측면이 부각되었다.
③ 주장 : 문호개방을 포함한 북한의 근대사 인식은 제국주의의 침략성에 대한 적대의식을 고양하거나 인민대중의 투쟁에 대한 정당성을 주지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시기는 분명 제국주의 침략의 시대였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인민의 투쟁을 중시하는 관점은 나름대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제국주의 질서가 일정하게 변동되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특히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조망하려는 노력도 절실히 필요하다. 앞으로 남북한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공통된 역사인식을 체계적으로 확대시켜 나감으로서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주적인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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