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미국과 영국의 TV & Film
-텔레비전의 역사
가. 텔레비전의 탄생 (1927-1945)
나. 텔레비전의 성장 (1946-1960)
다. 컬러텔레비전의 성장 (1961-1970)
라. 텔레비전의 영향력 강화 (1971-1980)
마. 케이블TV의 성장, 다채널 시대, 지상파 네트워크 체제의 소멸 (1981- 현재)
1. 미국의 TV
할리우드 인력 수입, 거대한 해외시장과 새로운 시청패턴으로 양적·질적 성장
왜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는가
미국드라마와 한국드라마차이
2. 미국의 Film
미국 영화의 황금기
할리우드란?
3. 영국의 TV
영국 TV의 미국 침공
4. 영국의 Film
5. 차이점
-텔레비전의 역사
가. 텔레비전의 탄생 (1927-1945)
나. 텔레비전의 성장 (1946-1960)
다. 컬러텔레비전의 성장 (1961-1970)
라. 텔레비전의 영향력 강화 (1971-1980)
마. 케이블TV의 성장, 다채널 시대, 지상파 네트워크 체제의 소멸 (1981- 현재)
1. 미국의 TV
할리우드 인력 수입, 거대한 해외시장과 새로운 시청패턴으로 양적·질적 성장
왜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는가
미국드라마와 한국드라마차이
2. 미국의 Film
미국 영화의 황금기
할리우드란?
3. 영국의 TV
영국 TV의 미국 침공
4. 영국의 Film
5. 차이점
본문내용
원, 그리고 창조적인 제작진의 충원에 있어서 점차 다국적 기업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첫째로 영국에서 부족했던 것은 미국 영화들처럼 대중적이며, 자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면서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장르들이었다(대단한 성공을 거둔 일련의 James Bond물은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세계 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둘째로, 언제나 보수적인 영국영화는 유럽 대륙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던 작가로서의 진정으로 개인적인 영화감독을 위한 허용 범위를 불충분하게 제공하였다.
영국 장편영화들은 구별이 될 만한 특징과 어떤 독특한 국가적 전통이 부족했고, 지식인들은 영화에 완전히 무관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록영화는 1930년대 영국에서 발전했다. 영국 기록영화운동의 기초자이며 지도자는 존 그리어슨이었다. 이들 짧은 사실영화들은 영화를 사회적이며 과학적인 조사연구의 도구로 자리잡게 하였다. 기록영화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예술의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1930년대의 이상에도 맞아 떨어졌다. 1930년대의 영국 기록영화는 대중의 욕구와 국가적인 관심의 많은 측면들이 관계된 영화들을 제작하였다. 전쟁이라는 극적 사건에 의해 불타오른 새로운 영화형식이 등장하였는데, 이 장편이면서 구조상 이야기체인 이 영화들은 세미-다큐멘터리라 불리어진다. 그 용어는 부분적으로 허구이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며 어떤 부분은 연기된 것이고 어떤 부분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력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 전시의 실제 사건의 기록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세미-다큐멘터리는 전쟁 그 자체를 그들의 소재로 삼았다. 합성된 대표적 사건들을 다시 재현함으로써 줄거리가 만들어졌다. 실제 군인들 스스로가 실제 폭격기, 전함, 탱크 속에서 연기를 하였고 그들은 독일에 대한 야간공습, 군축함의 순함, 북아프리카의 사막 전투에서 행방불명된 순찰대로 등장하였다. 국립영화제작소(Crown Film Unit)가 제작하고 해리와트가 감독한 <오늘밤 목표(1941)>는 그 원형이었다. 데이비드 린과 노엘 카워드가 공동 감독한 <우리가 복무하는 곳에서(1942)>는 상업적인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최초의 세미-다큐멘터리였다.
만약 영국 세미(다큐멘터리가 전쟁 직후 일링 코미디와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기록영화 작가들의 전시의 세미) 다큐멘터리를 거쳐 장편 영화 제작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을때 그들이 찾아간 곳을 일링 스튜디오였다. 하지만 1952년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일링은 스튜디오를 BBC-TV에 팔게 되었다. 그리고 1955년에는 회사 자체가 해체되었다.
1951년에서 1955년 사이에 유사한 종류의 코미디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극영화 제작 실험사인 '그룹3'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일링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의 주제는 국가적 생존의 특별한 단면을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이거나 또는 적어도 문화적인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스코틀랜드인의 금주, 엄격한 캘빈주의, 잉글랜드에 대한 혐오, 전후 영국인 스스로 발견한 관료적인 혼란, 영국 중산층의 예정된 성실과 신용, 경영과 노동의 공생, 영국 제도 안에서의 정부와 반대세력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웃음은 이러한 소재들이 다루어지는 부조화와 과장을 통해서만 유발된다.
영국의 영화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간 성숙했으며, 당시에 이룩한 뛰어난 영화수준이 대체로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영국이 배출한 주목할 만한 영화감독으로는 토니 리처드슨, 린지 앤더슨, 조지프 로시, 카렐 라이츠, 존 슬레진저, 켄 러셀 등을 꼽을 수 있다. 런던과 지방에서는 많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꾸준히 무대 위에 올려지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뉴욕에서 멜버른에 이르는 세계 주요도시에서도 상연되고 있다(→ 연극). 유명한 극작가로는 존 아든, 존 오즈번, 해럴드 핀터, 톰 스토파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비롯한 작가들의 정교한 뮤지컬 작품들은 전세계에서 공연되어 많은 관객을 끌고 있다. 1963년에는 국립극단이 설립되었고, 템스 강 남쪽 제방에 있는 센트럴런던에는 국립극장이 건설되었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은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인 스트랫퍼드온에이번과 런던을 중심으로 활발한 공연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 극단의 공연은 거의 매번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영국에서는 150개 이상의 전문적인 극장에서 영리 또는 비영리 극단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들 극장 중 약 60개가 런던과 그 부근에 밀집되어 있다.
< 러브액츄얼리>
911 사태 때 있었던 희생자와 가족들의 마지막 전화통화를 오프닝으로 삼은 이 영화는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이 된 이 영화는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주제로 계층 나이 성별을 불문한 다양한 케릭터들을 설정하여 그 주제를 실현시키고 있다.
미혼의 수상과 상큼한 비서의 사랑이야기, 새 아빠와 11살짜리 아들의 사랑이야기, 영국 작가와 포르투갈 여인의 사랑이야기, 짝사랑 하는 회사 동료와의 사랑이야기, 남편, 아내, 그리고 또 다른 여자의 사랑이야기, 친구의 신부를 짝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이야기 이렇게 총 7편의 독립된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각 특징적인 사랑에 대해 일깨워 주고 있다.
5. 차이점
미국와 영국 방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민영과 공영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비현실적이고, 화려하고, 자극적이다. 반면에 영국은 현실적이고 전통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TV 색감 또한 미국은 화려하고 예쁜 색감인데 반해, 영국은 드라이하고 현실적이다. 미국은 광고가 너무 나도 많은 반면, 영국은 상대적으로 광고가 제한되고 비상업적인 BBC채널이 존재하고, 국회 채널이 따로 존재한다. 미국은 다른 나라 뉴스보다는 자국의 뉴스가 위주이고 다른 나라의 중요한 뉴스라도, 자국의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고 판단되어지면 방영을 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영국은 다른 나라의, 유럽의 뉴스에 관심이 많으면 특히 프랑스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첫째로 영국에서 부족했던 것은 미국 영화들처럼 대중적이며, 자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면서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장르들이었다(대단한 성공을 거둔 일련의 James Bond물은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세계 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둘째로, 언제나 보수적인 영국영화는 유럽 대륙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던 작가로서의 진정으로 개인적인 영화감독을 위한 허용 범위를 불충분하게 제공하였다.
영국 장편영화들은 구별이 될 만한 특징과 어떤 독특한 국가적 전통이 부족했고, 지식인들은 영화에 완전히 무관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록영화는 1930년대 영국에서 발전했다. 영국 기록영화운동의 기초자이며 지도자는 존 그리어슨이었다. 이들 짧은 사실영화들은 영화를 사회적이며 과학적인 조사연구의 도구로 자리잡게 하였다. 기록영화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예술의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1930년대의 이상에도 맞아 떨어졌다. 1930년대의 영국 기록영화는 대중의 욕구와 국가적인 관심의 많은 측면들이 관계된 영화들을 제작하였다. 전쟁이라는 극적 사건에 의해 불타오른 새로운 영화형식이 등장하였는데, 이 장편이면서 구조상 이야기체인 이 영화들은 세미-다큐멘터리라 불리어진다. 그 용어는 부분적으로 허구이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며 어떤 부분은 연기된 것이고 어떤 부분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력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 전시의 실제 사건의 기록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세미-다큐멘터리는 전쟁 그 자체를 그들의 소재로 삼았다. 합성된 대표적 사건들을 다시 재현함으로써 줄거리가 만들어졌다. 실제 군인들 스스로가 실제 폭격기, 전함, 탱크 속에서 연기를 하였고 그들은 독일에 대한 야간공습, 군축함의 순함, 북아프리카의 사막 전투에서 행방불명된 순찰대로 등장하였다. 국립영화제작소(Crown Film Unit)가 제작하고 해리와트가 감독한 <오늘밤 목표(1941)>는 그 원형이었다. 데이비드 린과 노엘 카워드가 공동 감독한 <우리가 복무하는 곳에서(1942)>는 상업적인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최초의 세미-다큐멘터리였다.
만약 영국 세미(다큐멘터리가 전쟁 직후 일링 코미디와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기록영화 작가들의 전시의 세미) 다큐멘터리를 거쳐 장편 영화 제작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을때 그들이 찾아간 곳을 일링 스튜디오였다. 하지만 1952년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일링은 스튜디오를 BBC-TV에 팔게 되었다. 그리고 1955년에는 회사 자체가 해체되었다.
1951년에서 1955년 사이에 유사한 종류의 코미디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극영화 제작 실험사인 '그룹3'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일링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의 주제는 국가적 생존의 특별한 단면을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이거나 또는 적어도 문화적인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스코틀랜드인의 금주, 엄격한 캘빈주의, 잉글랜드에 대한 혐오, 전후 영국인 스스로 발견한 관료적인 혼란, 영국 중산층의 예정된 성실과 신용, 경영과 노동의 공생, 영국 제도 안에서의 정부와 반대세력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웃음은 이러한 소재들이 다루어지는 부조화와 과장을 통해서만 유발된다.
영국의 영화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간 성숙했으며, 당시에 이룩한 뛰어난 영화수준이 대체로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영국이 배출한 주목할 만한 영화감독으로는 토니 리처드슨, 린지 앤더슨, 조지프 로시, 카렐 라이츠, 존 슬레진저, 켄 러셀 등을 꼽을 수 있다. 런던과 지방에서는 많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꾸준히 무대 위에 올려지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뉴욕에서 멜버른에 이르는 세계 주요도시에서도 상연되고 있다(→ 연극). 유명한 극작가로는 존 아든, 존 오즈번, 해럴드 핀터, 톰 스토파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비롯한 작가들의 정교한 뮤지컬 작품들은 전세계에서 공연되어 많은 관객을 끌고 있다. 1963년에는 국립극단이 설립되었고, 템스 강 남쪽 제방에 있는 센트럴런던에는 국립극장이 건설되었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은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인 스트랫퍼드온에이번과 런던을 중심으로 활발한 공연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 극단의 공연은 거의 매번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영국에서는 150개 이상의 전문적인 극장에서 영리 또는 비영리 극단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들 극장 중 약 60개가 런던과 그 부근에 밀집되어 있다.
< 러브액츄얼리>
911 사태 때 있었던 희생자와 가족들의 마지막 전화통화를 오프닝으로 삼은 이 영화는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이 된 이 영화는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주제로 계층 나이 성별을 불문한 다양한 케릭터들을 설정하여 그 주제를 실현시키고 있다.
미혼의 수상과 상큼한 비서의 사랑이야기, 새 아빠와 11살짜리 아들의 사랑이야기, 영국 작가와 포르투갈 여인의 사랑이야기, 짝사랑 하는 회사 동료와의 사랑이야기, 남편, 아내, 그리고 또 다른 여자의 사랑이야기, 친구의 신부를 짝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이야기 이렇게 총 7편의 독립된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각 특징적인 사랑에 대해 일깨워 주고 있다.
5. 차이점
미국와 영국 방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민영과 공영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비현실적이고, 화려하고, 자극적이다. 반면에 영국은 현실적이고 전통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TV 색감 또한 미국은 화려하고 예쁜 색감인데 반해, 영국은 드라이하고 현실적이다. 미국은 광고가 너무 나도 많은 반면, 영국은 상대적으로 광고가 제한되고 비상업적인 BBC채널이 존재하고, 국회 채널이 따로 존재한다. 미국은 다른 나라 뉴스보다는 자국의 뉴스가 위주이고 다른 나라의 중요한 뉴스라도, 자국의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고 판단되어지면 방영을 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영국은 다른 나라의, 유럽의 뉴스에 관심이 많으면 특히 프랑스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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