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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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자백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진나라의 발전을 꾀한 책략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언동은《전국책(戰國策)》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13.잡가(雜家)
1)《여씨춘추(呂氏春秋)》
전국시대 말기, 점차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중국의 사상계는 크게 두가지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하나는 일체의 불순한 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통일의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거꾸로 불순한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 다양한 요소를 한데 합하여 목적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 제자백가를 과감하게 절충하고자 하는 이러한 경향은 각 학파 모두에서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며 잡가(雜家)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여씨춘추(呂氏春秋)》이다.
진(秦)의 여불위(呂不韋)에 의해 감수·편집된《여씨춘추》에서는 도가·음양오행가·소설가·묵가·법가·유가·명가·종횡가·농가 등의 사상을 각기 별개로 주장하면서도, 잡가 특유의 절충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각 유파의 사상을 절충함으로써 여불위가 얻고자 했던 것은, 천하를 통일할 군주의 독본(讀本)이었던 것 같다. 여러 사상들에서 필요한 부분을 뽑아 서로 융합시킴으로써 전국통일 및 정치에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의도는, 진시황(秦始皇)에 의해 정계에서 축출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2)《회남자(淮南子》
《여씨춘추》와 같은 잡가 계열의 저서인《회남자(淮南子)》는 소위 '우주와 인생의 백과전서'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전한 시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여러 빈객들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여씨춘추》와 마찬가지로 제자백가의 주장을 다양한 비율로 교차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통합하여 핵심을 이루는 것은 도가사상으로서, 황노(黃老)보다는 노장(老莊)에 가깝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노장사상이 상세히 설명되고 심화된 한편, 새로운 해석을 더하여 종래에 볼 수 없는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도가는 무위(無爲)라는 부정의 논리로써 기성문화를 거부하였지만,《회남자》는 무위(無爲)를 정치술로써 보았기 때문이다.
14.농가(農家)
농가는 농업을 중시하고 농경에 힘써서 의식(衣食)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농업경제와 농업기술에 대해서도 연구한 학파이다. 본래 농업은 인류사회에 있어 기본적인 산업이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그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예컨대 고대 중국의 문헌을 처음으로 정리하여 기록한《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의 제자략(諸子略)에는 농가에 대해서《신농(神農)》,《야로(野老)》등 농가 아홉 사람의 서(書) 114편을 기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음양가(陰陽家)·복서가(卜筮家)의 서(書)인〈수술(數術)〉중에도《신농교전상토경종(神農敎田相土耕種)》,《소명자조종생어별(昭明子釣種生魚鼈)》,《종수장과상잠(種樹臧果相蠶)》등과 같이 농업기술을 기록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농가(農家)'란 단순한 농업기술을 해설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상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맹자(孟子)》에서 "신농(神農)의 말을 이룬 자"라고 소개한 허행이 있다. 그러나 이 사상 역시 진(秦)·한(漢)의 제국통일 이후로는 쇠퇴하였다.
15.동양사상에서의 제자백가의 중요성
제자백가는 중국사상사에서는 물론이고 동양사상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즉, 동양사상의 뿌리는 중국의 제자백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중국사상사의 시대구분에서 진(秦)을 분기점으로 하여 선진(先秦)시대인 춘추전국시대를 특히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제자백가에 의한 사상의 황금시대가 바로 이 때 이룩되었기 때문이다. 한대(漢代) 이후 중국의 사상은 불교사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유가(儒家)사상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전한(前漢)시대에 유학이 관학(官學)으로 정착된 후 발달한 훈고학(訓 學)이나 당대(唐代)의《오경정의(五經正義》에 의한 유학사상의 획일적인 해석, 그리고 송대(宋代) 이후의 성리학(性理學)과 명대(明代)의 양명학(陽明學), 그리고 청대(淸代)의 고증학 등도 춘추전국시대의 유가(儒家)에 모두 그 학문적 근거를 두고 있고, 여기서 발전하여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장사상에서 발전한 도교(道敎)와,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에 의한 이원론적(二元論的) 자연관과 음양오행적 인식론도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에 근거하여 발전한 것임을 감안할 때, 제자백가의 사상적 의미가 동아시아 문화상에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상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점 외에도, 제자백가의 사상은 최초의 체계적인 학문의 성립을 가져왔으며, 그것도 국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적(私的)인 학문집단을 통해 발전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제자백가의 사상은 각기 관점을 달리 하고 자파의 학설을 명백하게 내세우고는 있으나, 대체로 인간의 내세문제에 대한 관심은 희박한 편이다. 이 부분은 이후의 중국사상사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제자백가는 한결같이 현세의 인간문제와 물질세계를 사색의 근본으로 삼아 이를 위해 인간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 뿐, 결코 내세(來世)에 대해 강한 관심을 보이거나 혹은 혼란한 현실세계를 초탈하여 사후(死後)세계에서 위안을 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공자의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未知生 焉能死]'라는 그 한마디는 내세 즉 미래를 탐구하고 추구하는 목표지향적인 서구사상과는 다른, '지금 현재', 그리고 과정을 중시하는 동양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현재주의·과정중심주의란 흔히들 말하는 제자백가의 기본적인 성격, 즉 인간중심주의와 합리주의 와도 연관된다. 개인의 가치가 전체적인 목표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속에 함몰되어 버리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백가가 중국사상 전체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것은 유교·도교 등 각 유파의 학문적 기원이라는 점과 집단적인 사학(私學)의 시초라는 점 외에도, 그 이후 동양사상이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겠다.
  • 가격3,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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