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와 한국의 근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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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야나기와 한국의 근대 미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고유섭 이전의 한국 미술사학
 2-1. 일제 관학자들의 미술사학
 2-2. 야나기와 기타 외국인들의 미술사학

3. 又玄 高裕燮(1905-1944)의 미술사학
 3-1. 고유섭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3-2. 고유섭과 그의 학문적 배경
 3-3. 고유섭의 한국미론

4. 야나기와 고유섭의 미론의 비교
 4-1. 고유섭의 한국 미론의 변화
 4-2. 야나기와 고유섭의 미론의 연관성

5. 나오는 말

본문내용

그러나 야나기는 삼국의 예술적 구분을 「조선과 그 예술」에서 중국(형태), 일본(색채), 한국(선)에서 그 특징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유섭은 이에 대해 야나기의 조선 예술에 대한 선적인 설명의 특징을 ‘시적’인 구별에 불과하다고 비판을 하면서도 이후 자신의 고려 자기의 예술적 가치 부여에 중요한 곡선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③ 선에 관한 비교분석
고유섭의 경우 조형 요소로써 선의 조형적 특징을 여러 미술 시기를 통해 중점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또 그의 선의 정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소위 미술의 생동적 운동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선의 원시 시대와 삼국 시대의 미의식에는 비정태적비동태적 특징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이었으며, 운동태는 생물비생물에 공히 생명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현실적우주적신비적인 특색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의 원인으로는 원시의 애니미즘 사상에 있는 것이며, 이런 일련의 운동태, 생동적 운동성은 바로 자연의 율동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반면 야나기의 경우는 조선의 서민적 공예에서 비애의 미를 띄는 선의 특질로서 조선의 특질을 발견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유섭은 야나기가 피력하고 있는 공예 개념, 선, 비애의 미와 같이 일련의 개념들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 확실시된다. 박래경, 「야나기와 고유섭 논지의 비교 분석, 한국 미술 조형관의 예술 철학적 연구」(고유섭과 야나기의 사관비교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p.55-57.
그러나 이들의 조선의 미에 대한 관점은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고유섭의 경우 우리나라의 원시적 애니미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적이고 생명적인 미술의 특징이 신라 시대에 이르면 명랑성을 보이며 삼국 시대는 공통적으로 생동적인 운동성을 보이던 시대적 미술의 전개 과정이 고려시대에 오면서 외침과 맞물려 일종의 寂照美를 고려의 공예에서 찾고 있다. 심지어는 고려 시대 문화를 위축된 것으로 공예적 특징을 규정짓고 哀調 내지 禪味를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야나기는 조선의 미론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주로 조선의 공예를 든다. 그 가운데서도 조선의 항아리는 그의 높은 취미와 감식안으로 상찬하면서 그의 유명한 ‘비애의 미’의 근거를 삼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유섭은 적조의 미, 애조의 미를 고려 시대 조형미술 전반에서 보고 있는 반면에, 야나기는 비애의 미를 조선조 도자기에서 보고 그것을 한국 미술의 전체의 특질로 보고 있다.
5. 나오는 말
한국 근대미술의 형성과정에서 한국 고유의 미의식과 본질 문제를 규명하는 것은 방법론적인 문제에서 한국미술의 다양한 측면에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미술의 본질을 최초로 규정한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였으며, 이후 한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의 미를 정립한 고유섭은 서로 다른 각도와 시각으로 한국미의 본질에 접근하였다.
야나기는 시대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감상적인 면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가 남긴 공적은 한국미술에 대한 미학적 논의를 가능케 했다는 점이며, 그의 대표적인 민예론을 통해 ‘수수함’ ‘차분함’ ‘평범함’ 등의 새로운 미학적 가치의 개념을 이끌어 낸 점이다. 즉 그가 발견한 미적 체험은 한국미술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것이었다. 이병진, 「텍스트로서의 야나기 무네요시 다시 읽기」(서평, 이인범, 『조선예술과 야나기 무네요시』한양일본학(한양일본학회)2000.2. p208
고유섭은 한국미술사의 비조로서 야나기와 동시대에 활동한 사람으로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정정도는 야나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유섭의 민예개념 형성에 자연과 예술이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결합이라고 주장한 점이나 ‘寂照美’ ‘平常의 美’ ‘無事의 美’와 등과 관련해서도 야나기와 고유섭의 이론은 유사한 점이 있다.
고유섭은 1940년대 이후 그가 이전까지 주장해온 사회경제사적 미술사학의 입장에서 급선회하여 정신사적 입장에서 야나기의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고유섭이 주장한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성’ ‘비정제성’ 등에서 그의 견해가 집약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고유섭의 견해는 미의식의 전제와 비로소 우리 고유의 주체적인 시각에 의해 한국미술의 특질을 현상적인 근본에서 규명하고자 함으로써 시각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김임수, 「한국미술의 본질규정과 미학적 접근의 문제(고유섭과 유종열을 중심으로)」, 동서문화 20, 계명대학교 동서문화 연구소 1988.12. p202.
한국미술의 특질을 규명하기 위한 많은 대한 명제와 논의는 있어왔지만 한국미학과 미술사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원시시대부터 내려오는 고유의 원시신앙과 종교사상, 그리고 다양한 미의식 등의 사상적인 측면과 양식적인 측면에서 보완되어야 한다. 또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극복하고 모색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고유섭, 『조선 미술문화의 몇 낱 성격』, 고유섭전집, 권2. 통문관, 1993.
고유섭, 『조선 고대 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 문제』, 고유섭전집, 권3. 통문관, 1993.
김명숙, 「고유섭과 한국 미술사가들의 한국미론」, 미술세계, 2005.7.
김임수, 「한국 미술의 본질 규명과 미학적 접근의 문제」(야나기와 고유섭을 중심으로), 동서문화, 계명대학교 동서문화연구소, 1988.12.
김창수, 「1920년대 인천 문화운동의 지형과 우현」, 제5회 인천학 세미나 우현 학술제
문명대, 「日帝時代의 한국미술사학」 『한국미술사학의 이론과 방법』, 열화당, 1978.
박노현, 「조선을 제도하는 미술」, 한국문학평론 제7권 제2호 통권 제25호(2003, 여름)
박래경, 「야나기와 고유섭 논지의 비교 분석, 한국 미술 조형관의 예술 철학적 연구」(고유섭과 야나기의 사관비교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정현희, 「우현 고유섭 연구」, 상명여자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1994.2.
조선미, 「야나기의 한국미술관」, 한국미술사학연구회 공개강좌,1987.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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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04
  • 저작시기2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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