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백일법문, 대종경법문, 수필법문, 금강산법문, 대종경, 수필, 금강산, 퇴옹성철, 소태산대종사]백일법문, 대종경법문, 수필법문, 금강산법문 분석(법문, 백일법문, 대종경법문, 수필법문, 금강산법문)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법문, 백일법문, 대종경법문, 수필법문, 금강산법문, 대종경, 수필, 금강산, 퇴옹성철, 소태산대종사]백일법문, 대종경법문, 수필법문, 금강산법문 분석(법문, 백일법문, 대종경법문, 수필법문, 금강산법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백일법문

Ⅲ. 대종경법문
1. 『대종경』편수과정에서 수집된 자료중 채택되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발견된다
2. 현재의 『대종경』에서 배제된 소태산의 풍부한 역사적인 예화들과 당시 상황성을 보충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3. 현재의 『대종경』에 나타난 소태산의 법설 내용이 주산의 법설내용과는 약간 변형되어 인명이 달리 표현된 부분들이 나타난다

Ⅳ. 수필법문

Ⅴ. 금강산법문

참고문헌

본문내용

낮으나 경계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더욱 묶어지고 신앙이 더욱 깊어져서 이렇듯 낙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그런즉, 그대들도 각각 신앙정도를 마음 깊이 대조하여 보라. 그 사람은 아직 타력신앙에 그치어 진리의 근본을 다 더위잡지 못하였으나 그러한 생활을 하게 되었거든 하물며 자력신과 타력신을 병진하는 그대들로서 만일 파란곡절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흘러간다면 그 어찌 바른 신앙이며 참다운 정성이라 하겠는가. 그대들은 같은 신앙 가운데에도 이 원만하고 사실다운 신앙처를 만났으니 마음을 항상 챙기고 또 챙겨서 신앙으로 모든 환경을 지배는 할지언정 환경으로 신앙이 흔들리는 용렬한 사람은 되지 말라.
그런데 이 법문들은 채록 수필법문에 의하여 당시의 설법연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자료<2>의 법문이 1928년(원기13) 음력 9월 26일, 자료<1><3>의 법문이 1930년(원기15) 5월 12일에 행해졌다.
시기적으로 먼저 행해진 자료<2>의 전망품 6장에 대한 수필법문은 월말통신 8호에 실려 있다. 송도성수필 금강산과 그 주인이 그것이다. 이 수필법문은,
<4>무진(원기13) 9월(음) 26일은 본회(당시 교단명의 불법연구회) 연중 4경절의 1일이다. 오전 10시로부터 식을 열고 예행순서를 밟은 후에, 선생주(소태산대종사)께옵서 법좌에 오르시사 선음법설을 시하옵시니 가라사대 “오날은 본회의 경절이라 하야 외처에서 여러분이 오신 모양이요, 본관(중앙총부) 모든 사람도 오날을 보통예회와는 달리 생각하고 있는 듯하나 실로 무엇으로써 경절 다웁게 유쾌히 지낼 재료가 없다 하노라.
로 시작되고 있다.
같은 책의 9월 26일 행사기록 조항에도 이와 관련한 사항이 나타난다. 즉,
<5>음 9월 26일 예회급기념
본일은 본회창립 제2회중 제18의 예회요 겸하여 추계기념이므로 본관(중앙총부)거주원은 물론 각처로부터 제원이 내집하여 상당한 성회를 이루었다. 오전 10시에 송도성군이 출석원을 점검하니 남녀합 49인이러라. 인하여 조회장(조송광불법연구회장)의 간단한 식사가 있은 후, 김광선씨 인도로 심경독창을 마치고 다음으로, 선생님(소태산대종사)께옵서 승석하시와, ‘우리의 보물 금강산’이라는 제로 2시간에 긍하도록 고상하옵신 법설을 하옵시니 청중은 일층 더 정신이 새로왔으며 무량한 뇌고에는 신성한 법보로 충만한 듯하더라.
는 내용이다. 대종경의 법문은 200자 원고지 3장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수필법문은 월말통신의 12페이지 즉 원고지 23장에 가까운 분량이다. 따라서 법문이 설해진 정황과 함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대종경에서 개교기념일로 표현되어 있어서 자칫 당시 음력 3월 26일의 공동생일기념 즉 지금 양력 4월 28일의 대각개교절에 행한 법문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그런데 자료<5>에서 예회 겸 추계기념이라 하고 있으므로 공동생일기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1926년(원기11)에는 新定儀禮의 제정 공포와 함께 교단기념일을 4大慶節로 통합 조정하는데, 이는 1월 1일의 환세기념, 3월 26일의 공동생일기념, 6월 23일의 명절기념(夏기념), 그리고 9월 26일의 共同先祖紀念日이다. 이 공동선조기념일을 당시의 기록은 秋季紀念 혹은 제사기념 등으로 전하고 있는데, 소태산대종사는 이 예회를 겸한 추계기념일인 1928년 9월 26일 오전 10시에 설한 법문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법문이 설해진 바에 인연하여 예회에서 몇차례의 講道 즉 法門解說이 행해지고 있다. 그해 10월 6일 예회의 全飮光의 金剛山은 朝鮮의 寶物 法說講義, 같은 달 26일 예회의 宋道性 金剛佛性修練論이 그것이다.
그리고 1930년에 행해진 자료<1>의 전망품 5장법문과 자료<3>의 신성품 12장법문에 대한 수필법문은 월말통신 27호에 실려 있다. 全飮光수필의 독실한 信念은 인생의 행복이다가 그것이다. 같은 수필법문이 설법내용에 따라 전망품과 신성품으로 나뉘어져 수록된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6>금강산은 세계적 명산인 만큼 그 이름은 세계적으로 廣布되어 있다. 金剛探勝은 宗師主의 다년 현안이었으나 기회가 未適하고 사정이 불허하여 종시 有意未遂하옵시드니 당시 종사주 京城住駕를 際하여 공주(李共珠) 동진화(李東震華) 愼元堯 제씨는 금강산 行啓를 누누 주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5월 1일 경성으로부터 법가를 옮기사 9일간을 區留하시며 金剛山全幅景을 일일히 관람하신 후 동 12일에 경성을 경유하사 본관에 환가하옵시니 대중은 慈母를 만난 赤子와 같이 만면에 희열로써 좌우에 侍立하였었다.때에 종사주 법설하사대 · · ·
라 시작되고 있다. 과연, 같은 책의 인사동정란에 5월 1일 종사주 경성발, 금강산탐승을 필하시고 경성경유 12일에 還本館하옵시다. 하였고, 각지상황의 익산본관조에는 (5월) 12일. 종사주 金剛山求景을 많이 말씀하시니 대중은 坐遊金剛別乾坤으로 지내드라.라는 정황이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법문은 5월 12일 소태산대종사의 총부귀환 날에 행해졌음이 분명해진다. 수필법문 끝에 시창15년(1930) 경오 5월 15일 記라 하였으나, 이는 청법내용을 정리한 날이 될 것이다.
대종경에는 원고지 1매 남짓에 불과하지만, 수필법문은 26페이지 즉 원고지 50여 매의 분량에 이른다. 그런데 이에 그치지 않고 금강산탐승을 주선하고 侍從했던 이공주의 기행문이 작성되어 월말통신에 3회에 걸쳐 실려 있다. 월말통신 27-30호의 世界的 名山 朝鮮金剛山 探勝記가 그것이다. 이들 상호내용의 대조를 통해, 전음광의 수필법문은 청법과 함께 기행문을 참고하여 정리된 것으로 사료된다.
참고문헌
1. 박광수(1998), 대종경 법문의 상황성 연구 : 주산종사의 대종사법설 수필집 중심으로, 한국원불교학회
2. 서재영(2005), 퇴옹성철의 백일법문에 대한 고찰, 한국불교학회
3. 양은용(1999), 주산종사의 소태산대종사 수필법문과 그 교의사적 의의, 한국원불교학회
4. 양은용(1997), 소태산대종사의 금강산법문과 민족관,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5. 양은용(2009), 소태산대종사의 정기훈련 중 법문연구,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6. 안성조(2009), \'\'법문의 가능한 의미\'\'의 실재론적 의의, 세창출판사
  • 가격6,5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3.07.18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196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